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나이준(羅以俊), 정신국(鄭信國), 박산미(朴潸美)의 행적을 초록한 책
내용 및 특징
『梅陰羅先生丙子亂護聖行蹟』은 羅以俊과 鄭信國, 朴潸美의 행적을 抄錄한 것이다. 작성연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으나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18세기 말기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자료명에 나타난 梅陰 羅先生은 조선시대 학자인 羅以俊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본관은 壽城, 字는 宅于, 號는 梅軒이며 祖父는 世謙, 父는 瑢이다. 1635년(仁祖 13) 司馬試에 합격하고 1646년(인조 24) 式年文科에 丙科로 及第한 바 있다. 그리고 자료의 내용 중에 확인되는 정신국과 박산미는 成均館의 守僕이었다. 『매음나선생병자난호성행적』은 『榮川郡誌』, 『泗溪地誌』, 泗溪書堂 기록, 『國朝寶鑑』, 『太學成典』 등에 나타난 그들의 행적을 초록한 것으로 특히 丙子胡亂 당시의 공적을 기록하고 있다.
행적에 나타난 그들의 공적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636년(인조 14) 丙子胡亂이 발발하자 太學의 諸生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으나, 나이준은 당시 聖廟를 지키던 守僕인 鄭信國과 朴潸美와 함께 큰 자루를 만들어 聖賢의 位牌와 祭器 등을 모두 담아 도성을 나왔다. 이후 南漢山城에 당도하자 인조는 크게 기뻐하고 米布를 하사하여 그들의 공적을 치하하였다. 그들이 수호한 위판은 開元寺에 모셨으며 丁丑年(1637) 還都 후 다시 위판을 받들고 귀환하였다. 이후 정신국의 경우 旌閭가 내려졌지만 나이준에 대한 포상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羅直洙(나이준의 5대손)와 지방 유생들의 건의에 따라 1774년(영조 50) 贈職되었으며 그를 배향하던 泗溪書堂은 書院으로 승격되었다. 그와 함께 위판을 수호한 정신국은 낮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들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하여 胡亂 후 품계가 내려졌으며 사후에는 旌閭가 세워졌다. 그의 후손 또한 계속 守僕의 임무를 맡았다.
『매음나선생병자난호성행적』은 이상과 같이 병자호란 당시의 나이준, 정신국, 박산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 나이준은 榮川(현재의 榮州) 출신이며 그를 제향한 사계서원 역시 영주에 위치하고 있다. 榮川 출신으로 상주와의 인연이 확인되지 않는 그의 행적이 상주향교에 현전하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향교의 상징과도 같은 孔子와 先賢의 위패를 이들이 수호했다는 점을 널리 본받기 위해 이러한 기록이 전해진 것이라 생각된다.
자료적 가치
『매음나선생병자난호성행적』을 통해 병자호란 당시 나이준을 비롯한 정신국, 박산미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단편적이지만 나이준을 배향한 사계서원의 변천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開元寺
자료에서와 같이 나이준 등이 난리를 피해 수호한 위패를 옮겨 모신 곳이다. 開元寺는 현재의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의 남한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확인 할 수 없으나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무르며 왕실의 안녕을 비는 五糾正所의 한 사찰이었다. 개원사 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승군 본영이 있었던 곳으로 碧巖 覺性 禪師가 南漢總攝이 되어 승려들을 지휘, 남한산성을 축성하였다. 이후 軍器·화약·僧兵이 집결한 승군의 본영이 되었으며 수도를 방어하는 호국사찰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1907년 일제의 산성내 무기수거와 화약 폭파 사건으로 인해 부속건물들이 모두 전소되어 폐사되었다. 1976년 대각전, 요사 등의 건물을 신축한 후 면모가 일신되었다.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泗溪書院
사계서원의 전신은 사계서당으로 1654년(효종 5) 榮川郡(현재의 榮州) 望闕里에 건립되었다. 1720년(숙종 46) 유림의 公議로 조선 중기의 학자인 黃孝恭을 배향하였고 이후 나이준을 함께 배향하였다. 1774년(영조 50) 나이준에 대한 贈職과 함께 사계서당도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景賢祠·興敬堂·東齋·西齋·神門·廚所 등이 있었으나 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고 복원되지 못하였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Ⅲ),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國朝寶鑑』,
1차 작성자 : 유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