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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이기(李圻) 등 상서(上書)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XB.1668.4713-20150630.Y155012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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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이기, 오소, 흥해군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작성시기 1668
형태사항 크기: 28 X 22.4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24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안내정보

1668년 이기(李圻) 등 상서(上書)
1668년 12월 옥산서원 유생 이기 등이 흥해군수에게 격군들의 신역을 면제해달라고 요청한 상서이다. 옥산서원은 설립 초기에 약간의 선박을 매입하여 호조에 청원서를 보내 완문을 받아 선비를 양성하는 기구로 삼았는데 그 유래가 이때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서원에서는 흥해 뿐만 아니라 연일, 장기 등지에 선박과 염분을 마련하여 어부와 격군, 염간 등을 선발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서원측은 이들 원속에 대한 신역을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서원에 필요한 어염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면역은 지방관의 소관이기에 매번 지방관이 체임될 때마다 신임 수령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본문에서 전임 순찰사경주부로부터 받은 완문이 거듭 쌓여 있지만 살고 있는 곳의 완문이 아니면 함부로 침범당하는 폐단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영해현감의 치하에 있는 화음만의 배와 격군으로 하여금 서원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별히 완문을 발급해 주길 요청하고 있었다. 신임 영해군수 오소는 판결문에서 학궁의 일은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 없으니, 특별히 완문을 발급하고 소속된 격군을 함부로 침범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승정원일기』,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여주이씨족보』, 문원공회재선생숭모사업회, 회상사, 1984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668년 12월 玉山書院 儒生 李圻 등이 興海郡守에게 格軍들의 身役을 免除해달라고 요청한 上書
내용 및 특징
1668년 12월 玉山書院 儒生 李圻 등이 興海郡守에게 格軍들의 身役을 免除해달라고 요청한 上書이다. 본문에는 한 글자도 가감함이 없이 위의 글과 같다는 기록과 판결문만이 나온다. 위의 글이란 1664ᅟᅧᆫ 권훈이 흥해현감에게 올렸던 상서를 일컫는 것인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옥산서원은 설립 초기에 약간의 선박을 매입하여 戶曹에 청원서를 보내 完文을 받아 선비를 양성하는 기구로 삼았는데 그 유래가 이때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서원에서는 興海 뿐만 아니라 延日, 長鬐 등지에 선박과 鹽盆을 마련하여 海夫와 格軍, 鹽干 등을 선발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서원측은 이들 院屬에 대한 신역을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서원에 필요한 魚鹽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면역은 지방관의 소관이기에 매번 지방관이 遞任될 때마다 신임 수령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前任 巡察使와 本郡[慶州府]으로부터 받은 完文이 거듭 쌓여 있지만 살고 있는 곳의 완문이 아니면 함부로 침범당하는 폐단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후 영해현감의 치하에 있는 禾音萬의 배와 格軍으로 하여금 서원의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특별히 完文을 발급해 주길 요청하고 있었다. 新任 寧海郡守 吳熽는 판결문에서 學宮의 일은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수 없으니, 특별히 完文을 발급하고 소속된 格軍을 함부로 침범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상서는 옥산서원 『정서등록』에 수록된 것이다. 『정서등록』은 監營과 兵營, 그리고 慶州府와 列邑에 呈書한 것들이 쌓여 책을 이루고 두루마리가 뒤섞여 간직할 수 없게 되자, 呈書와 題音을 별도의 한 책으로 엮어서 추후에 참고할 典據로 삼고자 만든 것이라고 서문에서 소개하고 있다. 즉, 呈書가 너무 많아서 보관이 어려워지자 이를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자료들은 1588년 이전부터 1683년까지 약 100년 동안 작성된 상서 46건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 자료는 대부분 서원 경제와 관련된 것들로서 免稅, 分給, 免役 등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연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일부 있지만 대체로 옥산서원 초창기의 경제적 규모와 재산 형성과정과 운영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呈書登錄』은 감영병영, 그리고 경주부와 列邑에 呈書한 것들이 쌓여 책을 이루고 두루마리가 뒤섞여 간직할 수 없게 되자, 呈書와 題音을 별도의 한 책으로 엮어서 추후에 참고할 典據로 삼고자 만든 것이다. 즉, 呈書가 너무 많아서 보관이 어려워지자 이를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실제 『정서등록』에는 1588년 이전부터 1683년까지 약 100년 동안 작성된 上書 46건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서원 田畓, 除役村 및 奴婢, 屬寺, 屬店 등 서원 경제와 관련된 것들로서 이들 전답과 인력들에 대한 免稅, 分給, 免役 등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옥산서원의 경제적 기반 형성과정에는 지방관의 협조가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서등록』에 있는 문서들은 대체로 연도순으로 되어 있지만 일부 문서는 시기가 섞여 있고, 1612년 6월 6일 문서의 경우 내용이 없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승정원일기』,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여주이씨족보』, 문원공회재선생숭모사업회, 회상사, 1984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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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戊申十二月日李圻等上書于 興海閤下無一字加減
與上文同 題音學宮之事不可歇看各別完文成給
所屬格軍切無橫侵之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