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5년 유생(儒生) 손길(孫佶) 등 상서(上書)
1645년 11월에 유생 손길 등이 병마절도사에게 소속 선부의 신역을 면제해 주길 요청하는 상서이다.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옥산서원이 건립될 초기에 약간의 선박을 매입하고, 호조에 청원서를 보내 완문을 받아 현인을 양성하는 자산으로 삼은 것이 그 유래가 아직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오래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선박을 운영하는 자들에게 병영에서 무역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그들은 한 몸에 두 가지 신역을 담당하게 되어 그 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워한다고 했다. 나아가 그들은 허둥지둥 멍하게 눈물을 흘리며 항소할 바를 몰라 하였는데, 이렇게 선박에 대하여 청원한 자가 장기에 거주하는 덕산, 진금 등이라는 것이다. 이에 서원에서는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병마절도사에게 특별히 신역을 면제해 주길 청원하였다. 즉 이들이 서원의 배를 운영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여 선비를 양성하는 자산으로 삼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병마절도사는 판결문에서 무역을 하는 어물은 자신이 사사롭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장병들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부득이한 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상서의 말과 같다면 진금 등을 지금 이후에는 무역을 하지 말도록 하되 상세히 사실을 서로 살펴서 실행하라고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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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