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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885년 기록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WZ.1885.4723-20150630.Y1510502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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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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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신녕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작성시기 1885
형태사항 크기: 28 X 19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천 신녕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885년 기록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고왕록(考往錄)』의 1885년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기록된 것인데, 1744년 이전 기록은 흩어져 있는 유문(遺文)과 간략한 사적만 정리해서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에는 1885년 재복(齋服)·변두(?豆)·예석(禮席)을 개수(改修)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신녕현감(新寧縣監) 송익로(宋益老)가 향교에서 분향례(焚香禮)를 거행한 후, 향교의 재복·변두 등이 훼손되어 있음을 보고, 재임(齋任)에게 개수를 지시하였으며, 이에 재복 등이 새롭게 마련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을 사람들은 성인을 추숭(追崇)하는 신녕현감 송익로의 덕(德)을 기리고자, 그 공덕을 기록한 현판을 제작하여, 신녕향교 벽에다 걸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향교가 지방 관학(官學)을 대표했던 만큼, 이와 같이 지방관의 적극적인 관심 하에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885년의 齋服·籩豆·禮席 改修 기록
考往錄
자료의 내용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885년의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慶尙北道 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작성되었다. 다만 1744년 이전의 향교 이력은 종전의 『고왕록』이 유실된 까닭에, 당시까지 남겨져 있던 각종 遺文과 간략한 사적만을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885년 年間에 新寧縣監 宋益老가 향교의 朔望焚香 때 致誠을 올렸다. 이때 향교에 비가 새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신녕현감이 齋任에게 大成殿 안 鋪席이 오래되어 썩고 훼손되었으며, 齋服 또한 남루하니 새롭게 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齋服 5件, 대성전 내의 ?豆, 禮席 하나를 새롭게 마련하였다. 이는 새로 부임한 신녕현감의 德이니,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그 慕聖에 감동하여, 현판에 신녕현감 송익로의 공덕을 써서 벽에다 걸어두었다. 당시 都有司는 韓弼殷, 掌議는 丁周祐金世河, 齋有司는 李應圭鄭夏佾이 맡고 있었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 운영의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官學을 대표하는 기관이었기에 守令의 큰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특히 향교 진흥은 수령 考課 중 하나인 ‘興學’과 관련된 사안이었다. 따라서 ‘興學’에 관심을 가진 수령은 본 자료에서처럼 향교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乙酉年間主?宋益老致誠於校宮朔望焚香一不漏闕因謂齋任
曰殿內鋪席歲久朽弊不可不唯成齋服年深濫累不可不改舊

齋服五件殿內鋪陳?豆與禮席一倂改舊唯新侯之德?歟盛哉鄕
之多士感其慕聖仍揭板于壁以爲永慕之地
都有司韓弼殷
掌議丁周祐
金世河
齋有司李應圭
鄭夏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