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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884년 기록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WZ.1884.4723-20150630.Y15105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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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신녕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작성시기 1884
형태사항 크기: 28 X 19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천 신녕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884년 기록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고왕록(考往錄)』의 1884년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기록된 것인데, 1744년 이전 기록은 흩어져 있는 유문(遺文)과 간략한 사적만 정리해서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에는 1884년에 있었던 문묘(文廟) 배향, 별소(別所) 창설, 전직(殿直) 지공(支供)과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조헌(趙憲)김집(金集)이 문묘에 배향된 까닭에, 춘향(春享) 때 신녕향교의 동무(東?)와 서무(西?)에 두 사람의 위판이 봉안되었다. 이어 향교의 재정이 열악하였는데, 마침 신태표(申泰彪)라는 인물이 전답을 기부하여, 그것으로 향교 재정을 지원하는 별소(別所)를 창설하였음이 나타난다. 신태표는 그 대가로 향교 재임(齋任)인 장의(掌議)에 임명되었다. 기부를 통한 향교 재임 임명은 조선후기 열악한 재정을 확충하려는 향교의 의도와 재임 역임을 통해 사회적 지위 상승을 도모하는 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전직에게 지급할 자금을 신녕향교 재정 지원을 위해 운영되고 있던 본소(本所)·별소(別所)·접소(接所)에서 각각 거두어들이기로 했음이 나타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884년 文廟 配享, 別所 창설, 殿直 支供 기록
考往錄
자료의 내용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884년의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慶尙北道 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작성되었다. 다만 1744년 이전의 향교 이력은 종전의 『고왕록』이 유실된 까닭에, 당시까지 남겨져 있던 각종 遺文과 간략한 사적만을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884년 2월 초1일 趙憲金集 兩先生을 東?와 西?에 배향하였으며, 春享 때 奉安이 이루어졌다. 당시 造主監役은 丁哲昊權弼洛, 東? 題板은 丁泰夏, 西? 題板은 韓琦鎭, 執禮는 權圭賢이 맡았다. 이때 향교의 지출이 多端하여 매년 빛이 늘어나고 있었다. 교체되어 오는 齋任도 항상 是非가 있으니, 一鄕이 근심하는 바였다. 鄕人 申泰彪가 마침 향교를 숭상하는 뜻이 있어 畓 15斗落을 기부하여, 別所가 創設되었다. 이것으로 향교의 지출을 보충하기로 했으며, 鄕中에서 그를 掌議로 薦出하였다. 이때 新寧縣監宋益老, 都有司는 丁哲昊, 장의는 권필락신태표가 맡았다. 같은 해 가을, 殿直을 科幣할 방도가 매번 부족하다는 문제로 鄕中에서 公議가 있었다. 이에 本所 4냥, 別所 1냥, 接所 5냥을 내어, 합계 10냥의 돈으로 지급하되, 이것을 節目으로 만들어 영구히 遵行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신녕현감송익로, 도유사는 權致?, 장의는 曹秉文이 맡고 있었다. 한편, 자료 중간에는 조헌김집의 위패를 봉안한다는 祝文이 수록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의 운영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본 자료에 따르면 신태표라는 인물이 돈을 기부하였고, 그 대가로 掌議를 맡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기부의 대가로 재임에 임명되는 사례는 본 『고왕록』 의 19세기 후반 기록에서 자주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향교 재임을 맡음으로써 사회적 지위 상승을 도모하는 세력과 열악한 재정을 확충하려는 향교의 의도가 맞물려서 나타난 현상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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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甲申二月初一日丁未趙文烈公金文敬公兩先生陞配東西?而因春享
奉安造主監役丁哲昊權弼洛題板東?丁泰夏西?韓琦鎭
權圭賢時校用多端每年積債遞入齋任常有是非一鄕愁悶
鄕人申泰彪有志崇校納畓十五斗落創設別所以補校用自鄕
中薦出掌議自此以後許參鄕員之意有完文是爲之記
主?宋益老都有司丁哲昊
掌議權弼洛
申泰彪
光緖十年歲次甲申二月朔丁未
朝鮮國王
謹遣臣右奉安兼禮成祝

敢昭告于
先聖大成至聖文宣伏以道冠百王萬世之師玆値上丁精?是宜
聖廟翼翼爰?縣治眞儒繼作配食明?兩賢道德我東宗師
今因春享載擧縟儀謹以牲幣醴?齊盛庶品式陳明薦
以先師配
甲申秋科殿直科贄每以區劃無方故更以鄕中公議本所肆
兩接所壹兩別所五兩合爲拾兩成節目永爲遵行焉
主?宋益老都有司權致?
掌議曹秉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