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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833년 기록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WZ.1833.4723-20150630.Y151050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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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신녕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작성시기 1833
형태사항 크기: 28 X 19
수량: 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천 신녕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833년 기록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고왕록(考往錄)』의 1833년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기록된 것인데, 1744년 이전 기록은 흩어져 있는 유문(遺文)과 간략한 사적만 정리해서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에는 1833년 향교에서 제기(祭器)를 새롭게 마련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불우(不虞)의 변괴로 제기를 잃어버렸는데, 이덕수(李德秀)라는 고을 사람이 돈을 내어 새롭게 제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신녕향교 측에서는 기부의 대가로 이덕수를 오는 추향(秋享) 때, 재유사(齋有司)를 맡기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향교에 기부를 하고, 재임(齋任)이나 집사(執事)를 맡는 현상은 조선후기 향교 운영의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833년의 祭器 마련 기록
考往錄
자료의 내용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833년의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慶尙北道 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작성되었다. 다만 1744년 이전의 향교 이력은 종전의 『고왕록』이 유실된 까닭에, 당시까지 남겨져 있던 각종 遺文과 간략한 사적만을 수록해 놓았다.
1833년의 기록은 대략 다음과 같다. 1833년 봄, 典祀廳 重建으로 明倫堂의 房으로 祭器가 든 櫃를 옮겼다. 그리고 나머지 제기는 殿直의 庫舍에 보관하였다. 春享 때가 되어 所用한 제기는 전과 같이 고사의 虛疎한 곳에 두었다. 그런데 3월 望後 생각지도 못한 변을 당해, 燭臺 5雙, 香爐 4座, 方圓器 각 1座, ?伊 2柄을 함께 잃어버렸다. 이렇게 망측한 變怪를 당하니, 고을의 수령이 놀라 탄식하며, 鄕儒가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더구나 향교의 勢가 凋殘하여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복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본 고을에 거주하는 李德秀가 慕聖하는 정성으로 제기를 마련해주고자, 140緡銅을 향교에 기부하였다. 그 돈으로 한 달 만에 제기를 예전과 같이 마련 할 수 있었다. 그 공이 매우 훌륭하니, 오는 秋享 때 齋有司에 許通할 것이며, 卷末에 이를 써서 훗날 觀感이 되게 할 것이다.
당시 新寧縣監徐碩輔였으며, 齋任은 丁甲祖權碩秉이 맡고 있었다. 한편, 자료 말미에는 張以度·曹克承·丁興敎·權致和·韓進書·申錫球의 과거 응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의 운영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본 자료에서와 같이 기부는 조선후기 향교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덕수는 기부의 대가로 齋任인 齋有司를 맡게 되었다. 이덕수의 사회적 지위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주로 寒微한 사족이나 新鄕, 富豪들은 願納과 같은 기부를 통해 향교의 재임을 맡음으로써,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癸巳春因典祀廳之重建大同櫃移置于倫堂房而祭器藏之于櫃中
其餘祭器又置于殿直庫舍矣適値春享所用祭器依前藏置
餘在器嫌其庫舍之虛疎仍置于殿內三月望後偶逢不虞之變燭臺
五雙香爐四座香盒四座方圓器各一座甕樽一座?伊二柄同時

見失莫重尊嚴之地遭此罔測之變?邑宰之驚嘆鄕儒之
憂懼其將何哉侮所以依樣辦脩而校勢凋殘拖至旬月矣本
李德秀以慕聖蓄積之誠曾有祭器添助之功又出一百四十
緡銅一月之內如數新脩此等樹功前古罕有之事故因秋享
齋席之論以勸成才之心許通齋有司之任仍書錄卷之末以
爲日後觀感之資焉
都有司主?徐碩輔
丁甲祖
權碩秉
張以度己卯式漢城試初場
幼學曹克承辛卯式文科【道光】

幼學丁興敎甲午式進士一等二人【道光】
幼學權致和乙未增廣文科正言【上同】
幼學韓進書乙未增廣生員
幼學申錫球同榜進士一等二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