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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747년 기록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7+KSM-WZ.1747.4723-20150630.Y151050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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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신녕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작성시기 1747
형태사항 크기: 28 X 19
수량: 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천 신녕향교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 『고왕록(考往錄)』 수록 1747년 기록
경상도(慶尙道) 신녕현(新寧縣) 신녕향교(新寧鄕校)고왕록(考往錄)』의 1747년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기록된 것인데, 1744년 이전 기록은 흩어져 있는 유문(遺文)과 간략한 사적만 정리해서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에는 1747년에 있었던 노인회(老人會) 개최, 향교 건물 보수, 별판전(別辦錢) 운영, 토지 방매 사실을 기록해 놓았다. 이중 신녕향교에서 개최한 노인회는 1746년부터 정례화 된 것인데, 일종의 기로연(耆老宴)으로 고을의 노인을 모시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별판전 운영이다. 별판전은 『『고왕록』』에 수록된 1746년 기록에서 상세히 확인 할 수 있다. 이 자금은 장기적으로 신녕향교 이건(移建)을 위해 마련된 것인데, 본 자료에서처럼 전답 소출과 식리(殖利) 활동으로 얻은 이자로 증식되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747년 老人會 개최, 향교 건물 보수, 別辦錢 운영, 토지 방매 기록
考往錄
자료의 내용
慶尙道 新寧縣 新寧鄕校考往錄』에 수록된 1747년의 기록이다. 신녕향교고왕록』은 1744년부터 1914년 고을이 慶尙北道 永川郡에 편입될 때까지 작성되었다. 다만 1744년 이전의 향교 이력은 종전의 『고왕록』이 유실된 까닭에, 당시까지 남겨져 있던 각종 遺文과 간략한 사적만을 수록해 놓았다.
본 자료에는 먼저 1747년 봄에 신녕향교에서 老人會, 즉 耆老宴이 개최되었음을 기록해 놓았다. 『고왕록』의 1746년 기록에는 향교·서원·향청이 50세 이상의 노인을 모시고 번갈아가며 노인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이어 향교 바깥 담장의 밭을 韓國貞이라는 인물이 새롭게 논으로 일구었는데, 이것 때문에 물이 차 東齋房舍의 기둥이 기울고 담장 벽이 무너지게 되었다며, 관아에 文報해 다시 밭으로 바꾸게 했음을 기록해 놓았다. 다음은 1747년 봄에 있었던 別辦錢 집행 기록이다. 별판전의 형성은 『고왕록』에 수록된 1746년 제정 完議와 節目에 상세히 나타나는데, 이 자금은 장기적으로 신녕향교 이건 비용을 위해 형성되었다. 1747년 별판전은 185냥 5전 5푼인데, 이 돈은 식리한 돈 164냥 3전 5푼과 打租作錢 21냥 2전을 합한 것이다. 이 중 10냥은 典祀廳 중수 때의 기와 구입비로, 123냥 6전은 논 1石 3斗落只 구입비로, 1냥 2전은 日用과 傳與 때의 비용으로 집행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50냥 7전 5푼이 남았고, 남은 돈은 丁萬厚에게 傳與되었다. 봄에 시행되는 별판전 傳與와 식리 및 전답 소출 증식은 모두 앞서 제정된 완의와 절목의 규정을 따른 것이며, 정만후는 별판전을 관리하는 別辦有司이다. 향교 건물 보수와 관련해서는 두 건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기울어가는 庫舍·마구간·측간 보수 기록이다. 이중 庫舍와 마구간은 예전 건물을 보수하였으나, 측간은 수보 앞에 새로 지었는데, 이때의 기와 값은 모두 관아에서 제공해 주었다. 나머지 하나는 西上房과 명륜당 보수 기록이다. 두 건물의 벽지가 오래된 까닭에, 別所에서 돈 1냥을 내어 종이를 사서 새롭게 도배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향교가 보유한 豆也谷의 밭이 水衝으로 陳廢한 까닭에 6냥 값으로 放賣해서, 鳴泉의 논 3豆落只를 구입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의 경제적 기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 別辦錢이나 別所와 같이 향교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재정이 주목된다. 이렇게 형성된 재정은 주로 殖利와 전답 移買 등의 방식으로 증식되어 갔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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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丁卯冬老人會設於本校而以酒禁停止
一東墻外韓國貞作新反畓水氣漫?致令東齋房舍

漏濕棟宇?傾墻壁堆落故自校中文報禁斷而依舊反田
校長曹聖徵
丁卯春別辦息於錢一百六十四兩三?五分加入打租作錢卄一兩二?
都合一百八十五兩五?五分以
十兩典祠廳重修時瓦價下
一百卄三兩六?畓一石三斗落價下
一兩二?日用及傳與下
實五十兩七?五分傳與丁萬厚
一庫舍馬廐及?間傾頹改庫舍及馬廐仍舊修補厠間則稍
進數步許移建而燔瓦一納自官家上下
一西上房及倫堂塗補年久盡弊故自別所出錢一兩貿紙塗之
豆也谷麗字田三斗落只爲水衝破年年陳廢故從公放賣受

錢六兩以勿限年賭地移買鳴泉畓三斗落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