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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1851년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향청(鄕廳) 향록(鄕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XG.1814.2771-20140630.Y14110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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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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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향안
작성주체 향청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작성시기 1814
형태사항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현풍향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1814~1851년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향청(鄕廳) 향록(鄕錄)
1814년부터 1851년까지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의 향청(鄕廳)에서 만든 향록(鄕錄)이다. 향청은 조선후기 고을의 향풍 교화를 표방하며 수령의 지방통치를 보좌했던 재지사족의 자치 행정기구였다. 그런 향청의 구성원 명부를 향록이라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향안(鄕案)이라 불렸다. 본 향록은 현재 현풍향교(玄風鄕校)에 전해지고 있는데, 현풍향교에는 1621년부터 1851년까지의 향청 향원(鄕員) 명단을 수록한 향록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본 향록은 1621~1851년 향안과 비교했을 때, 19세기 기록이 동일하다. 어떠한 필요에 따라 현풍현에서 별도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재지사족들은 향안에 이름을 등재시킴으로써 향론(鄕論)을 주도해 나갔다. 따라서 향안 입록(入錄)의 현황을 통해 당시 지역 여론을 주도했던 세력을 파악 할 수 있다. 본 향록에는 모두 78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을 성씨별로 나열하면 곽씨(郭氏) 47명, 김씨(金氏) 11명, 박씨(朴氏) 7명, 엄씨(嚴氏) 6명, 성씨(成氏) 3명, 배씨(裵氏) 2명, 채씨(蔡氏) 2명 순이다. 곽씨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김씨와 박씨도 일정 부분 향원을 점유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들의 성관(姓貫)은 현풍곽씨(玄風郭氏), 서흥김씨(瑞興金氏), 순천박씨(順天朴氏)로, 조선시대 이래 현풍현의 향론을 주도했던 가문들이다.
「朝鮮時代 鄕約硏究」, 申正熙, 嶺南大學校 大學院,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14년부터 1851년까지 慶尙道 玄風縣 鄕廳에 入錄된 鄕員 78명의 명단을 기재한 鄕錄
자료의 내용
1814년부터 1851년까지 慶尙道 玄風縣 鄕廳의 입록자 명부로, 鄕錄은 鄕廳의 鄕員 명부인 鄕案을 뜻한다. 본 향록은 玄風鄕校에 전해지고 있던 것인데, 韓末 향청 혁파 이후 향교로 이관된 듯하다. 본 향록의 입록은 모두 세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 1814년 3월 29일에 35명, 1829년 10월 11일에 37명, 1851년 3월 12일에 6명을 入錄하여, 모두 78명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 향록과 동일한 내용이 수록된 향록이 현풍향교에 전해진다. 다른 향록은 1621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향안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7세기에 15회, 18세기에 8회, 19세기에는 3회의 입록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중 19세기의 입록 기록은 본 향록의 입록 기록과 동일하다. 어느 시점 필요에 의해 향청에서 19세기의 입록 기록만 따로 筆寫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 향록에 입록된 鄕員 78명을 성씨별로 나열하면 郭氏 47명, 金氏 11명, 朴氏 7명, 嚴氏 6명, 成氏 3명, 裵氏 2명, 蔡氏 2명 순이다. 이를 다시 연도별로 나열하면 1814년 座目은 郭氏 23명, 金氏 5명, 朴氏 3명, 裵氏 1명, 成氏 1명, 嚴氏 1명, 蔡氏 1명 순이며, 1829년 좌목은 郭氏 21명, 金氏 5명, 嚴氏 5명, 朴氏 3명, 成氏 2명, 裵氏 1명 순이고, 1851년 좌목은 郭氏 3명, 金氏 1명, 朴氏 1명, 蔡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경상도 현풍현 재지사족들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鄕案은 鄕風을 개선하고 수령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지사족들의 지방자치 기구인 留鄕所 또는 鄕廳의 鄕員 명부를 뜻한다. 따라서 향안에 입록된 자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재지사족이었으며, 재지사족들은 향안 입록을 통해 향촌사회를 주도하기 위해 고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7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京在所 혁파, 鄕廳의 권위 약화, 新鄕의 향안 입록 시도, 정권의 벌열화에 따른 재지사족의 중앙 진출 둔화 등 복잡다기한 사회적 변화가 맞물려 향안의 권위도 약화되고, 그 입록이 파행되는 경우가 나타났다. 본 향록에서 확인되는 입록 현황과 17~18세기의 입록 현황과 비교했을 경우, 향원의 향안 입록 회수가 크게 줄어들며 입록도 대규모화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던 향안의 권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향록의 입록 성씨를 살펴보면 郭氏가 단연 압도적으로 비중이 높다. 이들은 현풍현의 토성인 玄風郭氏로, 향청의 향안뿐만 아니라 현풍향교 校任의 점유 비율도 매우 높게 나타난다. 즉 현풍곽씨가 조선시대 현풍현을 대표하며, 현풍현의 鄕論을 주도했던 것이다. 그 외 현풍곽씨 보다 비중은 낮으나 瑞興金氏, 順天朴氏도 현풍현의 향론을 주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朝鮮時代 鄕約硏究」, 申正熙, 嶺南大學校 大學院,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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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14~1851년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향청(鄕廳) 향록(鄕錄)

甲戌三月二十九日
郭東一
金萬輝
郭師尹
蔡時成
郭師尙
成㵓
朴泰信
金夏珩
郭處完
郭最垕
郭基玄
郭海朝
郭景憲
郭師閔
郭景栢
郭景梓
郭處定
郭東翰
郭在心
郭師惇
金孝曾

郭龜朝
朴堡
郭潤瑞
裵尙祿
朴之欽
郭慶一
郭慶國
金萬光
郭存勗
郭處大
金夏九
郭鼎九
郭興朝
嚴孝光

己丑十月十一日
郭在七
金繼遠
嚴景光
朴之錝
郭景龜
郭在東
郭景卨

郭龍朝
郭濂
郭弼世
嚴再光
郭潤九
郭重國
裵尙祚
朴之鎔
郭處華
郭景權
郭涵
郭慶弘
嚴應光
郭慶遠
郭相垕
金澯
郭熙朝
朴之秀
嚴坤
金禹圭
金南圭
郭弼禹
成洙

成彦標
郭最堅
郭漢相
郭昌度
郭夢九
嚴圭
金弘老

辛亥三月十二日
金鼎濟
郭利九
郭弼唐
蔡達後
郭弼檀
朴之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