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부터 1832년까지의 추록된 문서로 좌수 1인, 도감 1인, 별감 2인이 착명한 풍기지역 경로안
자료의 내용
을묘년(1795) 4월 12일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여 임진년(1832) 4월 17일까지 총 9차례에 추록된 경로안이다. 입록된 인물들과 풍기향교에 소장된 여타의 향안 등을 통해서 명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촌사회에 꾸준히 남아있는 성관 및 인물들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입록은 성명과 字號, 출생년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추록되는 과정에 있어 경로안의 인물들의 성명 윗부분에 ‘仚’자를 넣어 당시 생몰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서에는 跋文이나 完議 등의 부기된 사항이 없어 어떠한 성격과 목적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다만 대부분의 인물들이 18세기 초반에 작성되어진 향안에 입록된 인물들이 대다수이고, 문서가 작성된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경로안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작성된 것으로 보아 풍기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일종의 ‘耆老案’의 성격을 가진 문서로 보인다.
을묘년(1795)에 55명을 시작으로, 병진년(1796), 무오년(1798) 각각 3명, 경신년(1800), 임술년(1802) 각각 10명, 계해년(1803), 신미년(1811) 각각 5명, 기묘년(1819) 8명, 임진년(1832) 36명이 추록되어 총 9차례 135명이 기록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향안 등에 나타나는 인적구성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보이는 향안의 인적구성을 살펴보면 黃氏와 李氏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향안에 있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입록자를 보여왔던, 金, 權, 韓氏를 비롯하여 蔡, 朴, 南, 安씨 등이 일정 수 입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통상적으로 향안에 입록되는 일반적인 향원 입록 기준인 세습과 신분이라는 기준에 의거하였으므로 신분상 하자가 없고, 기존 입록자의 후손으로 자격을 제한하는 보통의 그것이 반영되었을 것인데 대표적 성씨인 황, 이씨의 혈연적 관계가 고령이라는 보편적인 상황에 있어 특수하게 반영되었던 것으로 보여질만한 것은 없으므로, 풍기지역에 평균연령이 보편적이라면 성씨에 상관없이 고령 분포와 성관의 분포는 차이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당시의 풍기지역의 경로안과 일반적 향안의 비교를 통해 재지사족의 또 다른 변화양상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황, 이씨의 가계가 특별히 평균연령이 현저히 낮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경로안에 있어 두 성관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추록을 하고나서는 座首 1명, 都監 1명, 別監 2명의 착명을 하여 경로안의 작성 및 관리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료적 가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풍기지역의 연로한 인물들에 대한 별도의 기록을 남긴 문서로서, 입록된 인물들이 기록된 향안과의 비교를 통해서 경로안으로 이어지는 구성원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족들의 풍기지역에서의 정확한 생몰이나 거주양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후기 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民音社, 1990
『嶺南士林派의 形成』, 李樹健, 嶺南大學校 出版部, 1979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2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1차 작성자 : 윤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