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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甲寅年) 경상도(慶尙道) 영양현(英陽縣) 영양향교(英陽鄕校) 향교보노안(鄕校保奴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XG.0000.4776-20140630.Y141130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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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노비안
내용분류: 사회-신분-노비안
작성주체 영양현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형태사항 크기: 18 X 15.5
수량: 4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영양향교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도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갑인년(甲寅年) 경상도(慶尙道) 영양현(英陽縣) 영양향교(英陽鄕校) 향교보노안(鄕校保奴案)
조선후기 경상도(慶尙道) 영양현(英陽縣) 소재 영양향교(英陽鄕校)가 보유하고 있는 보노(保奴)의 명부이다. 보노는 교보(校保)를 다르게 이르는 말로, 국가에 역(役)을 지는 대신 향교에 투속(投屬)되어 물력(物力)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조선후기 각 향교들은 보노를 통해 재정적 기반을 확보해 나갔는데, 이것이 과도할 경우 군액(軍額)의 부족으로 인한 각종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본 자료에는 모두 4명에 달하는 보노(保奴)의 이름과 거주지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조선후기 慶尙道 英陽縣 소재 英陽鄕校가 보유하고 있던 保奴 4명의 명부
자료의 내용
조선후기 慶尙道 英陽縣 소재 英陽鄕校가 보유하고 있던 保奴의 명부이다. 자료는 「甲寅二月初八日 鄕校保奴案」으로 엮여져 있으며, 모두 4명의 保奴를 수록해 놓았다. 정확한 작성 시기는 확인되지 않으나, 영양향교에 전해지고 있는 「庚寅三月日 鄕校保奴案」을 보았을 때, 1746년 이후의 甲寅年에 작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庚寅三月日 鄕校保奴案」에 수록된 동일 인물로 林守千이 확인되며, 保奴의 정액이 40명이라는 구절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續大典』에 처음으로 제정된 규정이기 때문이다. 保奴의 이름 아래에는 거주지가 기재되어 있으며, 4명 가운데 林守千權後宗은 ‘老頉’이라 부기되어 있다. ‘老頉’ 표기는 후대 어느 시점에 保奴 보유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고령으로 제외된 사람을 표시해 둔 것으로 생각된다. 자료 말미에는 영양향교의 保奴 보유를 인준한 英陽縣監의 着官과 署押을 기재해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의 재정적 기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保奴는 향교에 投屬하여, 국가 대신 향교에 役에 상응하는 物力을 제공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甲寅年 당시 영양향교는 모두 4명의 保奴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續大典』에 규정된 4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영양향교의 保奴가 규정 보다 적은 까닭은 명확하지 않다. 조선후기 각 향교는 保奴나 校村 등의 避役村을 통해 향교 재정을 확보해 나갔는데, 이러한 양상은 軍額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각종 폐단의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영양향교의 保奴가 적은 까닭은 영양현 자체의 부족한 軍額과 연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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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갑인년(甲寅年) 경상도(慶尙道) 영양현(英陽縣) 영양향교(英陽鄕校) 향교보노안(鄕校保奴案)

甲寅二月初八日
鄕校保奴案
保奴秩
林守千上釜谷【老頉】
權後宗靑杞【老頉】
安億太竹邱
巫女悶順在唐下

[着官][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