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경상도(慶尙道) 영양현(英陽縣) 영양향교(英陽鄕校) 교생안(校生案)
17세기 후반 작성된 경상도(慶尙道) 영양현(英陽縣) 영양향교(英陽鄕校)의 교생안(校生案)이다. 교생안은 향교에 등록된 학생의 명부라 할 수 있다. 본 교생안에는 64명의 교생이 확인되는데, 성씨별로는 김씨(金氏) 15명, 이씨(李氏) 8명, 조씨(趙氏) 8명, 남씨(南氏) 6명, 구씨(具氏) 5명, 권씨(權氏) 3명, 신씨(申氏) 3명, 안씨(安氏) 3명, 오씨(吳氏) 3명, 전씨(田氏) 3명, 정씨(鄭氏) 3명, 문씨(文氏) 1명, 박씨(朴氏) 1명, 장씨(張氏) 1명, 홍씨(洪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성관은 영양김씨(英陽金氏), 김녕김씨(金寧金氏), 재령이씨(載寧李氏), 한양조씨(漢陽趙氏), 영양남씨(英陽南氏), 능성구씨(綾城具氏), 안동권씨(安東權氏), 순흥안씨(順興安氏) 등으로, 17세기 후반 영양현 지역의 여론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재지사족 가문들이다.
한편, 향교 학생 명부의 경우 조선후기로 접어들게 되면, 명칭의 분화가 많이 이루어진다. 학문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피역(避役)이나 신분 상승의 목적으로 투속된 사족 이하의 계층이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사족들은 교생안에서 이탈하여 자신들만의 명부인 청금록(靑衿錄), 유안(儒案) 등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 작성된 본 교안은 전통적인 사족의 명부인 청금록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1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영양현이 독립된 고을의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영양향교도 이 무렵 건립되었던 까닭에, 아직 신분적인 문제와 피역의 문제로 인한 교생안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