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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 옥산서원(玉山書院) 유생(儒生) 진사(進士) 정학(鄭壑) 등 상서(上書)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XB.1633.4713-20140630.Y145012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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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옥산서원, 경상감영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작성시기 1633
형태사항 크기: 28 X 22.4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24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안내정보

1633년 옥산서원 유생 진사 정학 등 상서
을사(1605)년에 순찰사 류영순(1552-1630)이 옥산서원의 형편이 어렵다고 여기어서 장기에 배 한 척을 제급해 주고는 선비를 기르는 자금으로 삼으라 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오래되어 배가 파손되자 서원이 스스로 두 척의 배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배를 장기에 거주하는 덕산진금 등으로 하여금 그것을 주관하게 하였는데, 그 사이에 각 아문과 고을 수령의 침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임 관찰사가 현인을 존중하고 선비를 사랑하는 성대한 마음에서 특별히 세금을 면제하라고 명령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장기의 지세와 영일의 경계에 걸친 하수의 세금으로 그 배들을 보존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전의 사례에 의거하여 두 현에 관문을 보내시어 침범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순찰사는 사연을 숙고해본 후 지세를 내지 말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노비경영」, 『태동고전연구』17,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0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633玉山書院 儒生 進士 鄭壑 등이 長鬐의 地稅와 迎日의 水路稅로 인해 선박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前例에 의거하여 免除해 주길 巡察使에게 요청하는 上書
내용 및 특징
이 상서는 1633玉山書院 儒生 進士 鄭壑 등이 長鬐의 地稅와 迎日의 水路稅로 인해 선박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전례에 의거하여 免除해 주길 巡察使에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본문을 보면 乙巳(1605)년에 순찰사 柳永詢(1552-1630)이 옥산서원의 형편이 어렵다고 여기어서 長鬐에 배 한 척을 題給해 주고는 선비를 기르는 자금으로 삼으라 했다고 한다. 이후 세월이 오래되어 배가 파손되자 서원이 스스로 두 척의 배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배를 장기에 거주하는 德山進金 등으로 하여금 그것을 주관하게 하였는데, 그 사이에 각 衙門과 고을 수령의 침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前任 觀察使가 賢人을 존중하고 선비를 사랑하는 성대한 마음에서 특별히 세금을 면제하라고 명령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장기의 地稅와 迎日의 경계에 걸친 하수의 세금으로 그 배들을 보존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이전의 사례에 의거하여 두 縣에 關文을 보내시어 침범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순찰사는 사연을 숙고해본 후 지세를 내지 말라고 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상서는 옥산서원 『呈書登錄』에 수록된 것이다. 이 책은 監營兵營, 그리고 慶州府와 列邑에서 呈書한 것들이 쌓여 책을 이루고 두루마리가 뒤섞여 간직할 수 없게 되자, 呈書와 題音을 별도의 한 책으로 엮어서 추후에 참고할 典據로 삼고자 庚戌年 5월 4일에 만든 것이라고 序文에서 소개하고 있다. 庚戌년은 1730년(영조 6)으로 추정된다. 즉, 呈書가 너무 많아서 보관이 어려워지자 이를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자료들은 1589년부터 1683년까지 약 100년 동안 작성된 상서 46건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 자료는 대부분 서원 경제와 관련된 것들로서 免稅, 分給, 免役 등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연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일부 있지만 대체로 옥산서원 초창기의 경제적 규모와 재산 형성 과정과 운영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노비경영」, 『태동고전연구』17,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0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崇禎六年四月日 儒生進士鄭壑等上書于 巡相國閤下伏以頃在乙巳巡相柳公
弊院爲無形題給長鬐船一隻以爲養士之資矣及其歲久而船破則自院備得二
隻船使長鬐德山進金等主之而其間不無各衙門及主倅之所侵故自前使相
特令完護玆豈非尊賢愛士之盛意也今以長鬐之地稅延日之料水將不得保
存伏願 閤下依前移文于兩縣而使之勿侵千萬幸甚無任祈懇之至謹冒昧
以達 △背關觀察巡察使爲相考事背書呈文內辭緣相考地稅勿捧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