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 玉山書院 儒生 崔弘濬 등이 密陽에 있는 서원 屯畓을 불법으로 점유한 潘國海에 대한 처벌을 巡察使에게 요청하는 上書
내용 및 특징
이 上書는1627년 玉山書院 儒生 崔弘濬 등이 密陽에 있는 서원 屯畓을 불법으로 점유한 潘國海에 대한 처벌을 巡察使에게 요청하는 글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반국해라는 인물은 1625년에 이미 같은 문제로 옥산서원 측과 시비가 있었던 자였다. 당시의 판결은 옥산서원의 요구대로 진행되었지만 반국해는 이를 돌려줄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옥산서원과 밀양은 멀리 떨어져 있으며 판결을 내린 관찰사 또한 遞任되었던 것이다. 또한 반국해는 청도 이서면에 집성하고 있던 岐城潘氏 일족으로서 유생들과 같은 士類에 속하였다. 그러하기에 옥산서원이라 해도 물력을 동원한 강제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웠으며 이에 관청의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이다.
최홍준 등은 옥산서원의 屯畓이 密陽 땅에 자리하고 있는데 창고에 들어갈 곡식 열에 아홉은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屯田을 차지하고 농사를 짓는 자를 조사하니 淸道에 거주하는 潘國海라는 자가 집이 그 근처에 있어 멋대로 해마다 점령하고 스스로 私田이라 여겼다고 한다. 이에 유생들은 이러한 사유를 李巡察使에게 아뢰었고, 순찰사는 密陽府使에게 이를 조사하라는 關文을 보내어 문서에 의거해서 처리하였었다. 또한 옥산서원에서는 한 유생을 국해에게 보내어 나란히 密陽府에 나아가 量田案을 살펴보도록 하였는데, 앞에서 말한 전답 아래에 玉山書院의 屯畓이라고 장부에 적혀 있었다고 한다. 밀양부사가 이러한 사유를 순찰사께 급히 보고하고, 서원의 屯畓을 속이고 점령한 죄를 엄히 다스리고 국해를 꾸짖고는 "서원의 屯畓을 속이고 점령하다가 이제 드러나 형벌을 받는 것이니, 차후에 다시 속이고 점령하게 되면 죄가 마땅히 지금 형벌의 배가 될 것이다"라는 판결을 내리고는 방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국해는 이후에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차지하고서 돌려주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 5년 동안 그러했으며, 監司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학궁의 屯畓을 점령하고 경작하니 또한 중한 죄라고 하였다. 이에 순찰사가 이러한 뜻을 살펴서 국해를 감옥에 가두고 그 죄를 다스리고 屯畓을 돌려주게 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다고 하였다. 순찰사는 제음에서 국해의 일은 아주 해괴하여 실정을 자세히 조사하여 밝히고 서류를 받들어 올릴 것을 당일에 밀양부사에게로 關文을 보내었다. 이후의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와 비슷한 내용의 상서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옥산서원측의 요구대로 사건일 마무리 된 것으로 짐작된다.
자료적 가치
이 상서는 옥산서원 『呈書登錄』에 수록된 것이다. 이 책은 監營과 兵營, 그리고 慶州府와 列邑에서 呈書한 것들이 쌓여 책을 이루고 두루마리가 뒤섞여 간직할 수 없게 되자, 呈書와 題音을 별도의 한 책으로 엮어서 추후에 참고할 典據로 삼고자 庚戌年 5월 4일에 만든 것이라고 序文에서 소개하고 있다. 庚戌년은 1730년(영조 6)으로 추정된다. 즉, 呈書가 너무 많아서 보관이 어려워지자 이를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자료들은 1589년부터 1683년까지 약 100년 동안 작성된 상서 46건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 자료는 대부분 서원 경제와 관련된 것들로서 免稅, 分給, 免役 등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연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일부 있지만 대체로 옥산서원 초창기의 경제적 규모와 재산 형성 과정과 운영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노비경영」, 『태동고전연구』17,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0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