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5년 옥산서원 유생 정극후 등 상서
본문을 살펴보면 옥산서원의 둔답이 밀양에 있으나 그 열에 아홉은 잃고 농사를 짓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가을에 처음으로 조사를 해보니 청도에 거주하는 반국해라는 자가 서원 소유의 땅을 몰래 감추고서는 해마다 멋대로 경작해 왔던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그 땅을 즉시 돌려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옥산서원의 유생에게 큰 소리로 욕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옥산서원의 유생이 반국해와 같이 밀양부에 들어가 직접 전지를 측량한 문서를 살펴보니 옥산현록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사가 공문서를 내어주었다. 사실이 이러하니 진실로 즉시 서원으로 돌려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아직도 경작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가 경우 없이 하는 짓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이에 순찰사가 청도군에 관문을 보내어 밀양부사에게로 죄수를 옮기게 하여 먼저 그 죄를 다스린 연후에 둔전을 서원에 돌려주시면 다행이겠다고 하였다. 이에 순찰사는 제음을 통해 서원의 전답과 그곳을 점거한 반국해가 거짓 문서를 핑계로 돌려주지 않는 것을 조사하여 문서에 의거하여 처리하도록 했다. 이후 관찰사가 상고하는 일을 위하여 배서하여 글을 이서해 왔는데 판결문 내용은 서원의 전답인지 여부를 조사하여 상고한 것을 문서에 의거하여 처리하였다고 한다. 이는 반국해가 점유한 밀양의 둔전을 옥산서원 측에 돌려주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노비경영」, 『태동고전연구』17,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0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