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609년 옥산서원(玉山書院) 유생(儒生) 권응생(權應生) 등 상서(上書)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XB.1609.4713-20140630.Y145012611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권응생, 옥산서원, 경상좌병영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작성시기 1609
형태사항 크기: 28 X 22.4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24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경주 옥산서원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안내정보

1609년 옥산서원 유생 권응생 등 상서
상서의 내용을 보면 옛날 옥산서원에 소속되었던 강한필라는 이름의 노비가 전쟁을 치른 이후로 영일로 흘러들어가 사기점의 일을 도왔는데 그로 인해 그곳의 병영에 이름을 의탁하고는 몇 년이 지났다. 지난해에는 병마절도사에게 글을 올려 다시 서원에 소속시켜 여러 선비를 공양하는 일을 돕도록 하였다. 다만 그 사람 다음사리는 나이가 겨우 10살로 병영의 사기장 소속 명단에 부자라고 되어 있는데 두 곳에서 신역을 하게 하여 형편상 지탱하기 어려워 아마도 그들을 보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병마절도사가 특별히 현인을 사모하는 정성으로 그 자식을 서원에 소속을 옮기도록 하여 이 염려스러운 곳을 보호해주시면 다행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높은 식견과 현인을 존중하고 선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며 우러러 못내 황송한 마음으로 삼가 몽매함을 무릅쓰고 아뢴다고 하였다. 제음을 보면 병영에 또한 역사가 없으면 장인이 있는 것이 어려우니 과감히 그 아비의 신역을 면해주고 서원을 위해 부자를 힘써 소속시켜주라고 했다. 만약 역사가 있으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똑같이 방해가 되는 것이니 다음사리를 병영안의 기록에서 말소하고 서원에서 거두어서 사환시키라고 명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노비경영」, 『태동고전연구』17,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0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609년 11월 玉山書院 儒生 權應生 등이 兵馬節度使에게 보내는 것으로 옛날 서원 소속 下典 姜汗必이 전란이후 迎日로 들어가 兵營에 의탁해 있기에 그와 그의 자식을 모두 서원에 移屬해주길 요청하는 上書
내용 및 특징
이 상서는 1609년 11월 玉山書院 儒生 權應生 등이 兵馬節度使에게 보내는 것으로 옛날 서원 소속 下典 姜汗必이 전란이후 迎日로 들어가 兵營에 의탁해 있기에 그와 그의 자식을 모두 서원에 移屬해주길 요청하는 글이다. 병마절도사는 제음을 통해 比器店에 투탁한 강한필의 身役을 면제해주고, 그 아들 多音沙里를 營案에서 기록을 말소하여 경주부에 소속시키고 이들을 서원에서 거두어 使喚토록 하였다. 상서의 내용을 보면 옛날 옥산서원에 소속되었던 姜汗必라는 이름의 노비가 전쟁을 치른 이후로 迎日로 흘러들어가 沙器店의 일을 도왔는데 그로 인해 그곳의 兵營에 이름을 의탁하고는 몇 년이 지났다. 지난해에는 兵馬節度使에게 呈書하여 다시 서원에 소속시켜 여러 선비를 공양하는 일을 돕도록 하였다. 다만 그 사람 多音沙里는 나이가 겨우 10살로 병영의 沙器匠 屬案에 父子라고 되어 있는데 두 곳에서 身役을 하게 하여 형편상 지탱하기 어려워 아마도 그들을 보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병마절도사가 특별히 賢人을 사모하는 정성으로 그 자식을 서원에 소속을 옮기도록 하여 이 염려스러운 곳을 보호해주시면 다행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높은 식견과 현인을 존중하고 선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대하며 우러러 못내 황송한 마음으로 삼가 몽매함을 무릅쓰고 아뢴다고 하였다. 題音을 보면 兵營에 또한 役事가 없으면 匠人이 있는 것이 어려우니 과감히 그 아비의 身役을 면해주고 서원을 위해 부자를 힘써 慶州府에 소속시켜주라고 했다. 만약 역사가 있으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똑같이 방해가 되는 것이니 다음사리를 營案의 기록에서 말소하고 서원에서 거두어서 使喚시키라고 명하였다.
자료적 가치
이 상서는 옥산서원 『呈書登錄』에 수록된 것이다. 이 책은 監營兵營, 그리고 慶州府와 列邑에서 呈書한 것들이 쌓여 책을 이루고 두루마리가 뒤섞여 간직할 수 없게 되자, 呈書와 題音을 별도의 한 책으로 엮어서 추후에 참고할 典據로 삼고자 庚戌年 5월 4일에 만든 것이라고 序文에서 소개하고 있다. 庚戌년은 1730년(영조 6)으로 추정된다. 즉, 呈書가 너무 많아서 보관이 어려워지자 이를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자료들은 1589년부터 1683년까지 약 100년 동안 작성된 상서 46건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들 자료는 대부분 서원 경제와 관련된 것들로서 免稅, 分給, 免役 등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자료는 연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일부 있지만 대체로 옥산서원 초창기의 경제적 규모와 재산 형성 과정과 운영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영남지방 서원의 경제적 기반 –소수,옥산,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논총』2·3, 이수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조선후기의 서원-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32, 이수환, 국사편찬위원회, 1992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조선시대 서원과 양반, 윤희면, 집문당, 2004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노비경영」, 『태동고전연구』17, 손병규,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0
「조선후기 경주 옥산서원의 원속 파악과 운영」, 『조선시대사학보』35, 손병규, 조선시대사학회, 2005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萬曆三十七年十一月五日玉山書院儒生權應生等謹再拜上書于兵馬節
度使相國閤下伏以弊院之舊屬下典姜汗必其名者一自離亂之後流寓于
迎日比器占因以托名于營下有年矣上年呈書于鄭兵相還屬書院以資
多士供養之具第惟闕子多音沙里者年纔十歲以營下沙器匠屬案云父子而
兩處爲役勢將難支恐不能保存也伏願 閤下特推慕賢之誠移屬闕子
于書院以爲保護斯慮之地則不勝幸甚專侍明鑑尊賢愛士之心仰于
吅威無任惶悚之至謹冒昧以達△題音宮中亦無役事匠人勢難爲在
果其父免爲院屬父子歧寺如役事有妨公私同多音沙里營案
爻圈院以使喚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