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931년 채우석(蔡禹錫) 「향교중수기(鄕校重修記)」
1931년 8월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소재 현풍향교(玄風鄕校)를 중수 한 후, 이를 기리기 위해 작성한 현풍향교 직원(直員) 채우석(蔡禹錫)의 기문(記文)이다. 본 자료는 「향교중수기(鄕校重修記)」라는 제목으로 1990년 현풍향교에서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채우석의 중수기에서는 1931년 진행된 현풍향교 중수 공사의 경위와 의의를 간략히 언급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현풍향교는 예전부터 건물이 퇴락하면 중수 공사를 거행하였는데, 이는 현풍향교에 남아 있는 각종 사적(事績)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914년 원래 현풍향교를 관할하던 현풍군(玄風郡)이 달성군에 통합되면서, 달성군이 관할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재정의 부족으로 석전례(釋奠禮)의 거행에 어려움이 있으며, 퇴락한 건물은 전혀 손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신학교(新學校) 건립에 따른 향교 재정의 위축을 지적하였다. 한말(韓末) 이후 정부는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의 운영 자금을 향교 재정에서 전용하였기에, 향교가 크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역 유림들은 의견을 모아 1931년 중수 공사를 시작하여 3개월 만에 완료하였는데, 이때 많은 유림들이 각자 자금을 기부하여 공사비용에 보태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달성군수(達城郡守)였던 신현구(申鉉求)와 여러 유림들의 노고를 칭송해 놓았다. 이와 일제강점기 향교 재정이 크게 위축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현재까지 향교의 전통과 외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지역 유림들의 각별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