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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901년 현풍향교 「여제당중건기(厲祭堂重建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WZ.1901.2771-20140630.Y1411007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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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경제-토목/건축-중수기
작성주체 현풍향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크기: 38 X 27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현풍향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901년 현풍향교 「여제당중건기(厲祭堂重建記)」
1901년 8월 경상북도(慶尙北道) 현풍군(玄風郡)에 소재한 여제당(厲祭堂) 중건(重建) 공사를 마친 후, 현풍향교(玄風鄕校) 교임(校任)이었던 도유사(都有司) 엄주대(嚴柱大), 재임(齋任) 곽응곤(郭應坤), 박정진(朴珽鎭) 명의로 작성된 기문(記文)이다. 본 자료는 1914년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기문에는 현풍현의 여제당을 중건 할 때, 봉급을 덜어 공사비용에 보탠 현풍군수(玄風郡守) 하재구(河在鳩)의 공로를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여제(厲祭)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제사를 받을 수 없는 여귀(厲鬼)에게 올리는 제사를 일컫는데, 여제당은 그 여제를 봉행하는 장소다. 고을마다 설치되어 있었으며 보통 해당 고을의 향교가 제의를 담당하였고, 각종 운영비용도 향교 재정에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현풍군의 여제당 중수 공사도 현풍향교 주도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되며, 현풍군수 하재구가 봉급을 덜어 중수 공사비용에 보탬으로써 관심을 표명하였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901慶尙北道 玄風郡의 厲祭堂을 重建한 뒤, 玄風郡守 河在鳩가 봉급을 덜어 공사비용에 보탠 사실을 기리기 위해, 玄風鄕校 校任들이 작성한 記文
事績錄 玄風鄕校
자료의 내용
1901년 8월 慶尙北道 玄風郡 소재 厲祭堂을 중건한 후 작성한 記文이다. 玄風鄕校의 校任이었던 都有司 嚴柱大, 齋任 郭應坤, 朴珽鎭 명의로 작성되었다. 본 자료는 1914慶尙北道 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事績錄』는 1758년부터 1990년까지 현풍향교 운영과 관련해서 작성된 각종 글들과 문서 등을 엮어 놓은 자료다. 1901년의 「厲祭堂重建記」는 그 중에서 열네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1901년의 「厲祭堂重建記」에는 여제당을 중건할 때 기부를 한 玄風郡守 河在鳩의 공로를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기문에서는 먼저 여제당이 국가 郊兆의 遺制이고 山川 營榮의 餘儀이기 때문에, 네 계절마다 供享하는 절차를 행하며, 잘 보존해 왔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 棟宇가 점타 퇴락해 가고 있었는데, 마침 현풍군수로 부임해 온 하재구가 여제당을 중건할 때 자신의 봉급을 덜어 공사비용에 보탰다며, 그 공로를 칭송해 놓았다.
자료적 가치
향교의 사회 교화적 기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마다 社稷祭, 城隍祭, 祈雨祭, 그리고 厲祭가 거행되고 있었다. 이들 제의는 고을마다 특징은 있으나 보통 향교가 관리하였는데, 이들 祭儀에 유교식 의례를 적용함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하고, 백성들의 인심을 위무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제의 기구에는 별도의 재물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채, 향교 재정에서 일부를 전용하여 제의 비용과 관리 비용으로 집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뜻있는 지방관들은 향교 운영뿐만 아니라 여제당과 같은 제의 장소 관리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본 자료에서 하재구가 자신의 봉급을 기부한 행위는 이러한 조선시대 수령의 관행이 한말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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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901년 현풍향교 「여제당중건기(厲祭堂重建記)」

厲祭堂重建記

夫是堂也國家郊兆之遺制山川營榮之餘儀而千載
慰妥之耶四時供享之節也陶陽或無愆仗之失民物使
無侵瀆之弊歲滋久棟宇漸頹何幸河侯在鳩來守是邦
捐廩蠲費修緝斯堂神道復明
上之五年辛丑仲秋日
都有司嚴柱大
齋任郭應坤
朴珽鎭
高宗三八年光武五年一九0一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