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97년 현풍향교 「군유대소사성폐량성지자관비공실(郡有大小祀性弊粱盛之自官備供實)」
1897년 8월 경상북도(慶尙北道) 현풍군(玄風郡) 소재 현풍향교(玄風鄕校)의 교임(校任)들이 작성한 일종의 기문(記文)이다. 현풍군수(玄風郡守) 홍필주(洪弼周)의 공로를 기리는 내용인데, 현풍향교의 교임(校任)이었던 도유사(都有司) 전(前) 감역(監役) 김희연(金熙衍), 장의(掌議) 김희계(金熙㴤), 곽종현(郭鍾玄) 명의로 작성되었다. 본 자료는 1914년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자료는 「군유대소사성폐량성지자관비공실(郡有大小祀性弊粱盛之自官備供實)」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 그대로 관의 향교 의례 지원 사실을 언급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정부의 향교 정책에 변화가 생겨, 각 고을의 크기를 나누어 향사 비용을 직접 교부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현풍군은 4등 군으로 분류되어 모두 80원(圓), 예전 화폐인 상평전(常平錢)으로는 400냥을 교부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봄과 가을 행해지는 향사(享祀) 때마다 각각 200냥을 군청에서 지급받았지만, 그 돈이 매우 부족하여 예전처럼 향사를 치르기가 쉽지 않음을 호소하고 있다.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정부는 향교 재정을 통제하여 그것을 근대식 교육기관 재정으로 전용하였고, 이는 곧 향교 재정의 위축으로 이어져 향사 거행의 어려움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현풍군의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홍필주가 현풍군수로 부임하여 향교의 어려움을 보고 자신의 봉급 가운데 50금(金)을 기부해, 향사 비용에 보충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그친 것이 아니라 봄과 가을 향사 때마다 군청에서 40금을 추가로 교부해주니, 예전의 향사 의례를 조금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칭송해 놓았다. 한말 근대화의 흐름 속에 변화된 향교 운영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