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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91년 현풍향교 기문(記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WZ.1891.2771-20140630.Y1411007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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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문학/저술-기
작성주체 현풍향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작성시기 1891
형태사항 크기: 38 X 27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현풍향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91년 현풍향교 기문(記文)
1891년 11월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소재 현풍향교(玄風鄕校)의 기문(記文)으로, 현풍현감(玄風縣監) 윤병(尹秉)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현풍향교의 교임(校任)이었던 도유사(都有司) 김희순(金熙純), 장의(掌議) 곽수곤(郭壽坤), 김진동(金縉東)의 명의로 작성되었다. 본 자료는 1914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본 기문에는 지난 1889현풍현감으로 부임하여 향교 활성화를 위해 녹봉 100금(金)을 기부한 윤병의 공로를 기재해 놓았다. 근래 풍속이 많이 쇠퇴하여 여러 유림들이 근심을 하고 있었지만 마땅한 방도가 없었는데, 마침 윤병이 학문의 활성화와 풍속의 교화를 위해, 지역에서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고 있던 향교에 녹봉 일부를 기부하였던 것이다. 이에 현풍향교 교임들이 윤병의 공로를 간략히 기재한 현판을 만들어 향교에 게시한 뒤, 은혜를 잊지 않는 바탕으로 삼을 것이라며 기문의 작성 경위를 본문에 밝혀 놓았다. 한편, 본 자료에서처럼 뜻있는 수령들이 기부한 자금은 조선시대 향교의 중요한 재정적 기반 중 하나였다. 특히 향교의 활성화는 수령 고과(考課) 중 ‘흥학(興學)’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수령들의 각별한 관심 하에 기부 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91慶尙道 玄風縣玄風縣監 尹秉이 興學과 敎化를 위해 녹봉을 덜어 玄風鄕校에 기부하자, 이를 기리기 위해 현풍향교 校任들이 작성한 記文
事績錄 玄風鄕校
자료의 내용
1891년 11월 慶尙道 玄風縣에 소재한 玄風鄕校 校任들이 작성한 記文이다. 기문은 당시 교임이었던 都有司 金熙純, 掌議 郭壽坤, 金縉東의 명의로 작성되었으며, 별도의 제목은 기재하지 않았다. 본 자료는 1914慶尙北道 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事績錄』은 1758년부터 1990년까지 현풍향교 운영과 관련해서 작성된 각종 글들과 문서 등을 엮어 놓은 것이다. 1891년의 본 기문은 그 중에서 열두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현풍향교 교임들이 작성한 본 기문에는 玄風縣監이었던 尹秉의 공로가 기재되어 있다. 윤병1889현풍현감에 부임한 인물로 재임 도중 興學과 敎化를 위해 현풍향교에 녹봉을 기부했던 인물이다. 본문에서는 먼저 國朝가 盛할 때 學校가 갖추어지니 敎化가 충만해지고 風俗은 醇厚해져 三代와 비교해 부끄러움이 없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가르침이 寢衰하여 세상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니, 우리 고을 현풍현이 더욱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을 선비들이 침체되는 것을 걱정하여 바로 잡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였으나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는데, 마침 윤병현풍현감으로 부임하여 興學에 뜻을 품고 고을의 풍속이 문란해지는 것을 개탄했다고 한다. 이는 향교의 재력이 凋殘했기 때문인데, 이에 윤병이 고을 사람들과 모의하여 그 폐를 바로 잡고자 100金을 내어 보태게 하였다. 자신의 녹봉 중 일부를 덜어 향교 운영 자금으로 기부한 것이다. 현풍향교 측에서는 녹봉을 기부한 윤병의 뜻이 성인을 존경하고 正道를 호위하는데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일시에 각종 처리 비용으로 써버린다면, 이것은 윤병의 뜻도 아닐뿐더러 은혜를 잊는 행위라고 하였다. 따라서 오래 쓸 수 있도록 고을에 殖利를 놓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향후 향교에 오는 사람들이 배우고 익히는데 즐거움이 있게 하고, 식사를 대접하는데 근심이 없게 하여 一鄕으로부터 점차 교화가 행해지게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자료 말미에는 이상의 공로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작은 현판을 만들어 게시해서, 향후 은혜를 잊지 않는 바탕을 삼을 것이라며, 기문의 작성 경위를 밝혀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의 재정적 기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의 재정적 기반으로는 전답, 노비, 校保, 校村, 儒錢, 그리고 官의 재정 보조 등이 있었다. 본 자료와 같이 해당 고을의 수령들이 자신의 녹봉 가운데 일부를 덜어 향교 재정으로 기부하는 것도 官의 재정 보조 중 하나였다. 이러한 기부 행위는 興學과 敎化를 위해 향교 활성화에 뜻을 둔 수령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더구나 향교의 활성화는 ‘守令七事’ 가운데 興學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考課의 대상이 되는 관계로 각별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수령이 기부한 자금은 건물 수리와 같이 일시에 쓰여 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본 자료에서처럼 고을 사람들에게 殖利하여 장기간 활용되기도 하였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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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91년 현풍향교 기문(記文)

國朝盛時學校大備是以敎化洋溢風俗醇厚可以方三代
而無愧焉夫何挽近以來其敎寢衰擧世滔滔吾
甚鄕士友常深以爲憂思耶以矯捄而不得焉今我侯
尹公秉氏莅玆數歲志切興學慨鄕俗之壞弛憫校力之
殘絀遂謀鄕人矯正其弊又捐百金錢以補之侯之意不
在乎尊聖衛道若用此爲一時處費則是非侯之志也
忘侯之惠也玆謀分植鄕里俾壽來世從此以往入是校
者有講習之樂無供膳之憂將見敎化漸行自一鄕而
可以措諸國天下則於是乎侯之惠誠大矣凡我鄕人蓋
相勗諸玆揭小板以示不忘云爾
辛卯十一月日
有司金熙純
掌儀郭燾坤
金縉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