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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83년 현풍향교 「여제당중수기(厲祭堂重修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WZ.1883.2771-20140630.Y141100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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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경제-토목/건축-중수기
작성주체 현풍향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작성시기 1883
형태사항 크기: 38 X 27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현풍향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83년 현풍향교 「여제당중수기(厲祭堂重修記)」
1883년 2월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에 소재한 여제당(厲祭堂) 중수 공사를 마친 후, 현풍향교(玄風鄕校) 교임(校任)이었던 도유사(都有司) 김도운(金道雲), 장의(掌議) 김재신(金在信)김귀현(金龜鉉) 명의로 작성된 기문(記文)이다. 본 자료는 1914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기문에는 현풍현의 여제당을 중수 할 때, 녹봉을 덜어 공사비용에 보탠 현풍현감(玄風縣監) 조종운(趙鍾雲)의 공로를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제사를 받을 수 없는 여귀(厲鬼)에게 올리는 제사를 여제(厲祭)라고 하는데, 여제당은 그 여제를 봉행하는 장소다. 고을마다 설치되어 있었으며 보통 해당 고을의 향교가 제의를 담당하였고, 각종 운영비용도 향교 재정에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현풍현의 여제당 중수 공사도 현풍향교 주도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되며, 현풍현감 조종운이 녹봉을 덜어 중수 공사비용에 보탬으로써 민심을 위무하려 했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83慶尙道 玄風縣의 厲祭堂을 修葺한 뒤, 玄風縣監 趙鍾雲이 녹봉을 덜어 공사비용에 보탠 사실을 기리기 위해 玄風鄕校 校任들이 작성한 記文
事績錄 玄風鄕校
자료의 내용
1883년 10월 慶尙道 玄風縣에 소재한 厲祭堂을 중수한 후 작성한 記文이다. 玄風鄕校의 校任이었던 都有司 金道雲, 掌議 金在信金龜鉉 명의로 작성되었다. 본 자료는 1914慶尙北道 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事績錄』은 1758년부터 1990년까지 현풍향교 운영과 관련해서 작성된 각종 글들과 문서 등을 엮어 놓은 것이다. 1883년의 「厲祭堂重修記」는 그 중에서 열한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厲祭堂重修記」에는 여제당을 중수 할 때, 녹봉을 덜어 공사비용에 보탠 玄風縣監 趙鍾雲의 공로를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본문에 따르면 현풍현의 여제당은 오랫동안 퇴락하였으나, 경황이 없어 제대로 수리를 못하고 있던 실정이라 하였다. 그런 가운데 작년, 즉 1882년에 새로운 현풍현감으로 조종운이 부임해 왔고, 자신의 녹봉을 덜어 여제당 중수 공사비용에 보태니, 공사가 끝난 후 지역 사람들이 모두 감격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조종운의 공로를 간략히 기문으로 남겨 堂上에 揭示하게 되었다며, 중수기 작성의 경위를 간략히 밝혀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의 사회 교화적 기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각 고을에는 향교의 釋奠祭를 비롯하여 官이 관리하는 祭儀로 社稷祭, 城隍祭, 祈雨祭, 그리고 厲祭가 있었다. 석전제는 평상시 향교의 校任들이 준비하고, 奉行 때에는 교임과 지역 유림들이 獻官으로 임명되어 제의가 행해졌다. 그러나 다른 祭儀의 경우 고을마다 차이는 있지만, 제의를 준비하기 위한 재물이 마련된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 해당 고을의 향교가 의례를 주관함으로써, 유가적 의례를 적용함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인심을 위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현풍현의 여제를 봉행하는 여제당 중수 공사를 현풍향교가 주관하였던 것이며, 현풍현감이 녹봉을 덜어 그 운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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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83년 현풍향교 「여제당중수기(厲祭堂重修記)」

厲祭堂重修記
勝王高閭得公而新修岳陽名樓遇勝子而重建則必徛乎人
而豈非其時歟本邑厲祭堂年久頹圮不遑修葺矣何幸
昨年趙侯鍾雲來守是邦捐廩添輔鳩材修葺堂貌更新
神道有感人情皆賀則豈非徛人而俟時乎略記事實以備

不忘而揭于堂上
光緖九年癸未十月日
高宗二十年西紀一八八二年
都有司金道運
掌儀金在信
金龜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