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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64년 이정두(李廷斗) 「향교창학기(鄕校倡學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WZ.1864.2771-20140630.Y141100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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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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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문학/저술-기
작성주체 이정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작성시기 1864
형태사항 크기: 38 X 27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현풍향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64년 이정두(李廷斗) 「향교창학기(鄕校倡學記)」
1864년 11월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의 수령인 이정두(李廷斗)가 작성한 기문(記文)으로, 본 자료는 1914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향교창학기(鄕校倡學記)」는 당시 현풍현감(玄風縣監)이었던 이정두가 우리나라 유학의 오랜 연원을 거론하며, 향교에서의 학문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특히 세종(世宗), 이황(李滉), 허목(許穆), 그리고 자신의 현조(顯祖)인 이관(李琯)의 사례를 들며, 우리나라 유학의 오랜 연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료 말미에는 그 방법으로 오는 봄에 『소학(小學)』 고강(考講)을 실시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64慶尙道 玄風縣玄風縣監으로 있던 李廷斗가 향교에서의 講學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작성한 記文
事績錄 玄風鄕校
자료의 내용
1864년 11월 慶尙道 玄風縣의 수령으로 있던 李廷斗가 작성한 記文이다. 본 자료는 1914慶尙北道 達城郡으로 편입된 玄風鄕校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事績錄』는 1758년부터 1990년까지 현풍향교 운영과 관련해서 작성된 각종 글들과 문서 등을 엮어 놓은 것이다. 1864년의 「鄕校倡學記」는 그 중에서 여덟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鄕校倡學記」를 작성한 이정두1864玄風縣監으로 부임한 인물로, 향교에서의 강학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본 기문을 작성하였다. 기문에서는 먼저 우리나라만이 유학의 道가 전해지고 있음을 자부하고 있다. 옛날 箕子가 8조 금법으로 교화를 하였고, 우리 왕조로 접어 들어서는 世宗 임금께서 禮樂과 法度를 정비하니, 의 道, 의 法典, 의 規模, 의 다스림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래서 道를 중시하고 斯文을 흥기하며, 士類를 배양하고 영재를 교육하니 예의염치의 풍속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 道의 융성함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많은 支派를 만들어 내었다며, 우리나라의 여러 유현을 거론하고 있다. 먼저 이정두 본인의 顯祖인 李琯(1518~1577)의 업적을 들며, 禮法과 經術에 뛰어나 宗室의 이라 불렸음을 칭송하였다. 또한 영남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李滉(1501~1570)과 그의 학통을 계승한 許穆(1595~1682)이 世稱 동방의 孔子라 불렸음도 함께 칭송해 놓았다. 그러나 근래에 민심과 士風이 날로 투박해져, 가르침의 도리가 없어지고 있음을 한탄하며, 지난 시절의 풍속을 뒤돌아보고 그것을 배우고 계승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현풍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고을의 풍속을 진작하기 위해 내년 봄 『小學』을 考講할 것이라며, 현풍의 사림 모두가 유념하고 힘쓰기를 당부하면서 기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현풍향교에서의 강학 활동을 권장하기 위해, 우리나라 유학의 오랜 전통을 거론하였고, 그 방법으로 『小學』 考講을 시행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事績錄』에는 본 자료 다음에 「鄕校小學講式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정두가 본 자료에서 예고한 『小學』 고강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본 자료는 수령이 향교에서의 강학 활동을 권장하며 작성한 기문이다. 조선시대 향교는 지방의 공립교육기관이었으며, 향교 육성은 수령 考課 중 하나인 興學과 관련된 것이어서 수령의 각별한 관심 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본 자료에서 현풍현감 이정두가 제시한 考講도 여러 수령들이 실시했던 향교 활성화 방안 중 하나였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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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64년 이정두(李廷斗) 「향교창학기(鄕校倡學記)」

鄕校倡學記
今天下貿貿焉已矣民彛物則在穹壤間如幾珠之混於泥沙
湍波激射漂蕩不定然畢竟寄托有他故失於中國存乎
四裔惟東方以禮儀稍封八敎之後冠神舊俗閱塵劫
不燮此殆天意在也恭惟我世宗莊憲大王自東方有國
於斯爲庶禮樂法度爲世文章之道也
之典之謨也之治也崇備重
道興起斯文培養士類敎育英才巍巍然禮義廉恥之
風蕩蕩乎子姫之化世稱東方焉聖神繼繼支
派詵詵有若我先祖順川君渾溪先生自有宗室未有
盛於此也禮法經術爲世模楷學非不學也言非
不言也行非不行也敎非
不敎倡道講學興起斯文扶植士風訓誨後生循循然孝

悌忠信之風皜皜乎洙泗濂洛之化世稱宗室焉惟
文純公退溪李先生實得之心法眞傳
之道統集大成於海東倡道學於嶺南敎後生於一世建
天地而不悖質鬼神而無疑俟百世而不感自東方有
道學未有盛於此時者也惟我文正公眉叟許先生
志復之至治心傳之正脈集萬古於大東倡正
學於漢北誘後生於當世通天人之性命開皇王之典謨質
百世之神明自有道學亦未有盛於此也故退溪眉叟
兩先生世稱東方夫子焉惟我東方之人冠儒冠服儒
服君君臣臣父父兄兄弟弟夫夫婦婦養老而慈幼食力而
助弱莫非我聖朝五百世崇儒重道敎育英才之
遺風亦莫非我朝先儒賢倡道講學訓誨後生之遺
化也近世人心日偷士風日簿國無學校之政鄕無設塾之
敎環顧一世經學篤行宗師表準伹聞古語實無其人後
生未學無以見儒者之風範何由師道之復古也抑時運
之叔季而然也人器之降襄而然也言念及此究設不得者
此也惟願吾黨之士自今日動靜語黙孜孜乎禮義廉恥
之道出處去就奉奉乎孝悌忠信之德以副我國家尊聖

興學之本意則豈不盛哉余莅玆縣每憂小學試講之久
廢不振矣方今春塲不遠將嚴正考講以觀士風之復古
惟我玄風士林勉乎哉是爲之記
上之元年甲子十一月日後學縣監完山李廷斗
高宗一年西紀一八六四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