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慶尙道 玄風縣의 玄風縣監으로 있던 李廷斗가 향교에서의 講學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작성한 記文
事績錄 玄風鄕校
자료의 내용
1864년 11월 慶尙道 玄風縣의 수령으로 있던 李廷斗가 작성한 記文이다. 본 자료는 1914년 慶尙北道 達城郡으로 편입된 玄風鄕校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事績錄』는 1758년부터 1990년까지 현풍향교 운영과 관련해서 작성된 각종 글들과 문서 등을 엮어 놓은 것이다. 1864년의 「鄕校倡學記」는 그 중에서 여덟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鄕校倡學記」를 작성한 이정두는 1864년 玄風縣監으로 부임한 인물로, 향교에서의 강학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본 기문을 작성하였다. 기문에서는 먼저 우리나라만이 유학의 道가 전해지고 있음을 자부하고 있다. 옛날 箕子가 8조 금법으로 교화를 하였고, 우리 왕조로 접어 들어서는 世宗 임금께서 禮樂과 法度를 정비하니, 唐虞殷周의 道, 唐虞殷周의 法典, 唐虞殷周의 規模, 唐虞殷周의 다스림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래서 道를 중시하고 斯文을 흥기하며, 士類를 배양하고 영재를 교육하니 예의염치의 풍속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 道의 융성함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많은 支派를 만들어 내었다며, 우리나라의 여러 유현을 거론하고 있다. 먼저 이정두 본인의 顯祖인 李琯(1518~1577)의 업적을 들며, 禮法과 經術에 뛰어나 宗室의 孔孟이라 불렸음을 칭송하였다. 또한 영남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李滉(1501~1570)과 그의 학통을 계승한 許穆(1595~1682)이 世稱 동방의 孔子라 불렸음도 함께 칭송해 놓았다. 그러나 근래에 민심과 士風이 날로 투박해져, 가르침의 도리가 없어지고 있음을 한탄하며, 지난 시절의 풍속을 뒤돌아보고 그것을 배우고 계승해야 된다고 하였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현풍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고을의 풍속을 진작하기 위해 내년 봄 『小學』을 考講할 것이라며, 현풍의 사림 모두가 유념하고 힘쓰기를 당부하면서 기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현풍향교에서의 강학 활동을 권장하기 위해, 우리나라 유학의 오랜 전통을 거론하였고, 그 방법으로 『小學』 考講을 시행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事績錄』에는 본 자료 다음에 「鄕校小學講式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정두가 본 자료에서 예고한 『小學』 고강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본 자료는 수령이 향교에서의 강학 활동을 권장하며 작성한 기문이다. 조선시대 향교는 지방의 공립교육기관이었으며, 향교 육성은 수령 考課 중 하나인 興學과 관련된 것이어서 수령의 각별한 관심 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본 자료에서 현풍현감 이정두가 제시한 考講도 여러 수령들이 실시했던 향교 활성화 방안 중 하나였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