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857년 김우동(金祐東) 「향교중수기(鄕校重修記)」
1857년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소재 현풍향교(玄風鄕校)의 중수(重修) 기록으로, 본 자료는 1914년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향교중수기(鄕校重修記)」는 1857년 현풍향교 건물을 새롭게 중수한 후, 지역 유림이었던 김우동(金祐東)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글자는 곽수곤(郭壽坤)과 성한규(成漢奎)가 작성하였다.
「향교중수기(鄕校重修記)」에는 현풍향교가 중수되는 경위와 의의가 언급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근래에 향교 건물이 퇴락하여 대성전(大聖殿)의 기둥이 기울고, 명륜당(明倫堂)과 양무(兩廡)의 창과 벽은 무너지고 부서진 상태라 하였다. 또한 의례와 관련된 각종 제복(祭服)과 기물(器物)을 잃어버리고, 삼문(三門), 포(庖), 고(庫)는 비가 새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향교의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못해 보수하지 못하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이때 새로 부임한 현풍현감(玄風縣監) 김두흠(金斗欽)이 관의 여전(餘錢)과 자신의 녹봉을 기부하여 향교 중수에 사용하게 하였다. 이에 지역 유림들도 의논을 모아 각 문중에서, 이른바 유전(儒錢)이라는 기부금을 내어 중수 비용에 보충하니, 500여 금(金)이 모이게 되었다. 이 자금으로 중수 공사가 시작되어 수개월 만에 끝나자 다시 위패를 봉안하였고, 그날 유림들이 모여 향음례(鄕飮禮)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때 본 중수기를 작성한 金祐東이 술잔을 받들고 나아가 여러 유림들에게 향교 중수를 지시한 현풍현감 김두흠의 업적을 칭송하였고, 유림들이 의논하여 이상의 경위를 기문(記文)으로 남기기로 합의했다며, 향교 중수의 경위를 밝혀 놓았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