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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758년 김광태(金光泰) 「대성전중수상량문(大成殿重修上樑文)」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6+KSM-WZ.1758.2771-20140630.Y14110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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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경제-토목/건축-상량문
작성주체 김광태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작성시기 1758
형태사항 크기: 38 X 27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현풍향교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상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안내정보

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758년 김광태(金光泰) 「대성전중수상량문(大成殿重修上樑文)」
1758년 9월 13일 중수(重修)된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소재 현풍향교(玄風鄕校)의 상량문(上樑文)으로, 본 자료는 1914년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글은 당시 현풍현감(玄風縣監)이었던 김광태(金光泰)가 작성하였다. 상량문은 어떠한 형태의 집을 지을 때, 연월일시(年月日時)와 축원문(祝願文), 좌향(坐向) 등을 표시한 글로, 본 상량문에는 현풍향교 대성전의 중수 경위가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원래 지금의 위치에 현풍향교가 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다른 위치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바람에 퇴락이 심하였고, 현풍현감 김광태와 지역 유림들이 의논한 결과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서, 원래의 위치에 새로 옮겨 짓는 것으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본 자료는 그때 중수한 건물 가운데서도 선현(先賢)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의 상량문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758慶尙道 玄風縣 소재 玄風鄕校의 大聖殿을 重修한 후, 중수 경위와 의의를 기록한 玄風縣監 金光泰의 上樑文
事績錄 玄風鄕校
자료의 내용
1758년 9월 13일 慶尙道 玄風縣 소재 玄風鄕校의 大聖殿을 중수한 후, 당시 玄風縣監이었던 金光泰가 작성한 上樑文이다. 본 자료는 1914慶尙北道 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事績錄』은 1758년부터 1990년까지 현풍향교 운영과 관련해서 작성된 각종 글들과 문서 등을 엮어 놓은 것이다. 1758년의 「大成殿重修上樑文」은 그 중에서 두 번째로 수록되어 있다.
「大成殿重修上樑文」을 작성한 김광태1755년부터 1760년까지 현풍현감으로 있으면서 현풍향교의 중건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현풍향교 대성전도 중건 대상 중 하나였다. 기존 위치에 있던 향교가 퇴락하여 현재의 위치로 향교를 이건하게 되었는데, 그때 대성전도 옮겨지어졌던 것이다. 「大成殿重修上樑文」에는 대성전 중수의 경위와 의의가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먼저 향교를 세운 전통은 옛 적 선현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이기에, 國都의 宗廟에서 州縣에 이르기까지 건립되어 孔子를 비롯해 顔子, 曾子, 子思, 孟子와 같은 성인, 周敦頤, 程頤程顥, 張載, 朱熹와 같은 유현들을 모시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현풍향교의 경우 여러 해 동안 비바람에 들보가 꺾이고 훼손되었으며, 단청이 벗겨져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 하였다. 이에 지역 유림들과 뜻을 모아 향교의 위치를 옮기기로 결정하여, 현재의 위치에 대성전을 옮겨지었다. 원래는 현재의 위치에 있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건물이 소실되자, 향교를 옮겨지었으나 비바람으로 인한 퇴락이 심해, 다시 임진왜란 이전의 위치로 옮겨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량문 후반부에는 대성전 중수의 의의를 언급한 뒤, 정성껏 대성전을 보존하기를 당부해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향교 운영에 있어 관권과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가 조선시대 지방 공립교육기관이었던 만큼, 해당 고을의 지방관들도 향교 운영에 관심이 많았다. 현풍향교도 이러한 수령들의 각별한 관심 속에 중수되었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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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758년 김광태(金光泰) 「대성전중수상량문(大成殿重修上樑文)」

大成殿重修上樑文
聖人有繼往開來之功百世師也玆當殿于
仗以
學宮爲崇德立敎之耶三代共之可無章甫
之重新仰惟夫子之道嗟聖德合天地而爲

之善項未有生民以來故廟享自國都以至
夷夏之所尊宮墻數仞宗廟之美誰窺
州縣而皆誤庠序千秋俎豆之禮斯在
之配食久矣典章之岡愆亦甹我
濂洛關閩之竝躋煥乎儀丈之可述就不仰
箕邦儒賢之從杞顧廟字多歷歲年
聖朝治敎之大明而棟梁積被風雨
丹靑剝落奚但屋漏之難禁肆多士之合議潔
結構摧傷亦綠殿基之欠穏就故址而改修長
性明粢攀御祝四有告念國初始建於佇
龜短筮叶人謀而無疑伊兵後移設於地
區厖惟美矣吉地治基想百神之共衛瞻尼
耶不其誤歟良辰命匠喜庶民之爭趍挹風
岫而悅接沂水豊山九九松是斷何滅抯㣣之
臺而如聞淵琴點瑟奕奕楹有閑無讓班㒇之
村本石難聚幾勞心上之經營是謂戌之不
作鼚鼓不勝卽育眼前之突凡若有待于今

日彈誠極欽崇之方疏幽蘭於戶墉地關天
時度勢忝古今之制架丈杏於椽率翬飛鳥
開東西廡昔無而今有位次載安誾誾刋侍
革韋布士朝綺而暮歌居處爰得肅肅靈儀
之始舊入門周施關里堂之金石想見文風從
之若新循階俯仰益州廟之詩禮在佇儒術自
此蔚興行看一邑中美俗聊賁短謳臾郎偉拋
今丕闡可繼百年前名賢庸助盛役瑟岳朝暉
梁東夜雨新晴春欲暮臾郞偉抛梁南
萬丈紅暄禽啼在百花中亭午層丘夏木參
風咏臺前流水在臾郞偉抛梁西秋色㕿然
天雲澹澹影相涵一株尼岑岑景位市槐疏影
炯淡泊臾郞偉抛梁小明月淸水寥影及臾
落淸溪雪哀孤松增翠色此間耶纖塵着萬
郞偉抛梁上二氣冲融相佳來臾郞偉抛梁
古日星人盡仰高高太極何昭曠混混源泉流
下物態風光佳景錢
不舍四時回幹生成化

伏願上梁之浚鳥鼠攸去儒士思皇學禮樂而不輟
山川效靈棟宇孔碩瞻禴祀而長存
戊寅九月十三日太守金光泰
戊寅西紀一七五八年英祖三四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