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간행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 현풍향교(玄風鄕校) 『사적록(事績錄)』 수록 19세기 곽명규(郭明奎) 「순상국교궁획부전식본기(巡相國校宮劃付植本記)」
19세기 경상도(慶尙道) 현풍현(玄風縣) 소재 현풍향교(玄風鄕校)의 도유사(都有司) 곽명규(郭明奎)가 기(記)하고, 장의(掌議) 김용호(金用浩)가 서(書)한 기문(記文)이다. 본 기문은 1914년 경상북도(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으로 편입된 현풍향교에서, 1990년 필사본으로 간행한 『사적록(事績錄)』에 수록되어 있다.
기문에는 현풍향교 재정 지원을 해 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상진(金相鎭)의 공로를 기리고 있으며, 이어 이때 지원 받은 돈 100민(緡)의 운영 방도를 규정한 3개조의 절목(節目)을 수록해 놓았다. 기문에 따르면 현풍현은 작은 고을로 항상 재정이 궁핍해 현풍향교는 겨우 제례만 거행하고 있었는데, 이때 경상도관찰사 김상진이 현풍향교에 100민의 돈을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이에 현풍현의 유림들은 이 돈을 일시에 쓰는 것은 관찰사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이자를 놓아 돈을 불리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운영 방법을 3개조의 절목에 수록하였는데, 우선 관내 각리(各里)의 크기에 따라 돈을 나누어 주고 이를 이자로 불릴 것이며, 그 이자로 봄과 가을에 행하는 제향(祭享) 때의 비용으로 집행하고, 남는 돈은 강학(講學) 활동에 보충하기로 결의해 놓았다. 이러한 지방관의 재정 보조는 조선시대 향교의 중요한 재정적 기반 중 하나였다. 지방 교육과 교화에 뜻있는 지방관들에 의해 특별한 재정 보조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흥학(興學), 즉 교육 진흥이 지방관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