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慶尙道 英陽縣 소재 英陽鄕校에서 개최된 耆老會 때 참여한 耆老 36명의 명부
丙辰五月端陽日 耆老會錄
[내용 및 특징]
1856년 慶尙道 英陽縣 소재 英陽鄕校에서 개최된 耆老會의 명부이다. 해당 명부는 ‘丙辰五月端陽日’, 즉 1856년 5월 5일에 작성된 것이다. 표제는 ‘丙辰五月日端陽日 耆老會錄’이며, 耆老會 참여 인사와 관련자 이름만 수록했을 뿐, 序文이나 기로회 개최 및 명부 작성 경위를 밝히는 글은 별도로 확인되지 않는다. 개최 장소도 명확하지 않은데 임원의 職任과 유사 자료의 소장 현황으로 보아 영양 영양향교에서 개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영양 영양향교에는 본 자료를 비롯하여 『老人勝會錄』, 『鄕校耆老會話錄』, 『居接時堂上會話錄』이라는 표제가 붙은 18~19세기 때의 기로회 명부 세 편이 함께 소장되어 있어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
본문의 명단은 성명을 기재한 후, 그 아래에 세주로 해당 인물의 字와 출생 간지를 기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미에는 임원들을 기재해 놓았다. 본 기로회 명부에 수록된 耆老는 모두 36명으로, 최고령자는 1776년 丙申生으로 81세인 趙居洛이며, 최연소자는 1797년 丁巳生으로 60세인 趙復運 외 5명이다. 연령대로는 80대가 1명, 70대가 8명, 60대가 27명으로 나타난다. 기로회 참여 인사 가운데 63세의 吳正燮은 ‘時山長’으로 기재되어 있어, 당시 어떤 院祠의 首任임을 표시해 놓았다. 수록자 36명을 다시 성씨별로 나열하면, 趙氏가 19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吳氏 6명, 鄭氏 4명, 南氏 2명, 李氏 2명, 具氏 1명, 權氏 1명, 尹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자료 말미에는 5명의 임원을 기재하였는데, 耆老들과 마찬가지로 이름 아래에 字와 출생 간지를 세주로 명기하였다. 이중 가장 앞에 있는 趙彦宅은 별도의 校任이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吳正規 이하 3명은 都監, 마지막 趙載凞는 掌議로 기재되어 있다. 이 시기 영양 영양향교 교임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명확하지 않으나, 趙彦宅은 향교의 首任, 掌議인 趙載凞는 副任, 都監 3명은 기로회 개최를 위해 차정된 인사로 추정된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 운영의 일면과 19세기 영양현 재지사족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시대 지방에서의 耆老會는 수령이나 향교 주도로 고을 내 연로한 인사를 초청하여 연회를 베푸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이는 유교적 윤리 의식에 입각하여 향촌 내 질서를 확립함과 동시에 耆老들을 공경하는 의식을 베풀어 향촌 교화를 표명하려는 의도였다. 이로 인해 경상도 영양현도 영양 영양향교를 중심으로 고을의 기로회가 개최되었던 것이다.
한편, 본 자료에 수록되어 있는 36명의 기로들은 당시 지역 내에서 어느 정도의 명망을 가지고 있던 인사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영양현 邑誌의 人物條와 영양 영양향교 소장 『執綱錄』에 교임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즉 기로회의 참여자를 많이 배출한 가문일수록 영양현 내 영향력이 큰 가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본 자료에 수록된 기로 중 가장 많은 성씨는 趙氏로, 이들은 영양현의 대표적인 사족 가문인 漢陽趙氏이다. 그 외 咸陽吳氏, 英陽南氏 등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英陽郡誌』, 英陽郡誌編纂委員會, 1970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2
이광우,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