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안동 고산서당 통고
이 문서는 대산 이상정의 시호가 내려져서 고유제를 거행하니 제례의 혼란을 막기 위해 미리 참가자를 선정하여 알려주길 요청하는 통고이다. 이상정은 임오년인 1882년에 사문을 발전시키고 풍속을 교화한 공로가 있기에 특별히 정경을 추증하고, 동시에 시호를 내리라는 명이 있었다. 이미 1816년에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기에 이때에 이르러 다시 증직되어 이조판서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시호에 대해서는 1882년 당시 내려지지 않았다가 경자년인 1900년 2월에 의정부의정 윤용선에 의하여 다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윤용선은 이상정이 주자가 남긴 글을 독실하게 믿고 퇴계의 정학을 밝혀서 영남유림의 종장이 되었는데, 시호를 내리라는 명이 내린 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미처 겨를이 없어서 아직까지 시호를 의논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왕명이 있었음에도 시호는 바로 내려지지 않았기에 6개월이 지난 1901년에 장봉환이 재차 상소를 올려 이상정의 시호를 내려주길 요청하기도 하였다. 결국, 시호는 경술년인 1910년 5월에서야 비로소 내려졌다. 처음 이조판서로 증직된 후 28년이 지난 후였다. 시첩을 봉환받은 것은 사림의 큰 경사이기에 지체하지 않고 고유제를 했어야 함에도 갑자기 일이 생겨 알릴 겨를이 없었다. 이에 크게 지체한 것이 또한 여러 해였기에 지금의 주손의 길사일에 장차 신주의 제명을 추가하고 격식을 갖춰 4월 8일에 고유제를 거행한다고 하였다. 이에 의절에 따라 일을 행함에 다른 유생들 중에서 제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대표로 참석하는 자를 선별하여 알려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玉山書院誌』,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영남대출판부, 1992
『高宗實錄』,
이병훈,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