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慶尙道 英陽縣의 鄕廳에서 牛皮價 개선을 위해 개최된 鄕會 때 난입하여 폭력을 행사한 奴令輩들의 행태를 호소하며 英陽縣監에게 올린 牒呈
[내용 및 특징]
1885년 12월 초4일 慶尙道 英陽縣의 鄕廳에서 英陽縣監에게 올린 牒呈이다. 첩정은 書目 없이 제출되었다. 모두 9명의 인사가 첩정에 참여하였으며, 성씨 다음에 署押을 기재해 놓았다. 영양현감의 着官과 署押, 그리고 본 첩정에 대한 題辭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본 첩정에서 영양현 향청이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牛皮價 개선을 위해 개최한 鄕會 때, 난입하여 폭력을 행사한 奴令輩들을 처벌해 달라는 것이다.
먼저 첩정에서는 아래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능멸하는 것은 風化의 소관이며, 三綱五倫을 부식하는 것은 官政과 관계된 바라고 전제해 놓았다. 그러면서 일전에 牛皮價 700여금을 부과한 것이 다른 고을과 비교해 봤을 때, 다시 조치할 필요가 있다며 고을 사람들이 稟報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영양현감께서 鄕會를 개최하여 官民이 서로 합의를 본 후 보고하라고 제사를 내린 적이 있음을 적시하였다. 牛皮價는 소를 도축하면서 거두는 일종의 雜稅인데, 도살과 관계없는 향민들에게 배정하여 적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던 사안이었다. 영양현감의 제사에 따라 영양현의 사족들은 지난 11월 29일 향청에서 모여 이 사안을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당일 아직 鄕員들이 모두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일련의 奴令輩들이 무리를 모아 作黨하여 난입한 뒤 폭력을 행사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좌석 위에 올라 향원들을 붙잡고 구타하였는데, 이것은 邑이 생긴 이래 전례 없는 변괴임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北二面 釜谷, 즉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가곡리에 거주하는 鄭象衡은 고을의 老成으로 이때 욕을 많이 받았으니, 一鄕의 여러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公憤하는 바임을 호소하고 있다. 거기다 牛皮價에 대해서는 다른 고을의 사례를 널리 채집해 보니, 듣지 못한 전례임을 강조해 놓았다. 이에 신속히 향회를 다시 한 번 개최하여,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니 이전처럼 변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영양현감께서 잘 보살펴 주기를 청원하고 있는 것이다.
본 첩정에 대한 題辭에는 폭력을 행사한 奴令輩들의 엄중한 처벌을 약속해 놓았다. 奴令輩들의 행태는 이전에 없던 변괴이고, 이것은 단순히 一鄕의 공분을 사는 일일뿐만 아니라, 官務의 폐단에 속하는 것이라며, 심히 괴이한 일임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주동자를 잡아 엄하게 곤장을 치겠다는 뜻으로 題辭를 내려놓았다.
[자료적 가치]
19세기 후반 지방 재정 및 행정의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먼저 본 첩정에서 문제가 된 사안은 牛皮價였다. 牛皮에 부과하는 牛皮價는 監營에 납부하기 위해 징수하는 세목으로, 원래 場稅에 속하는 것이었다. 조선후기 상품경제의 발달로 발생한 대표적인 雜稅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牛皮價는 장시에 부과하기 보다는 민간에서 徵斂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잡세로서 牛皮價를 거두어 지방 관아의 운영 자금으로 활용되었는데, 탐관오리와 아전의 착복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고을에서 정한 원래 액수보다 과도하게 징수되는 사례가 많아, 민들의 많은 불만과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던 세목이었다. 경상도 영양현의 향청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과도한 牛皮價에서 비롯된 것으로, 액수의 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첩정에서는 당시 향청의 위치와 기능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자치행정기구라 할 수 있는 향청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수령을 보좌하는 하급 기관으로 전락해 갔다. 수령은 고을에 부과되는 각종 부세를 향청 기구를 통해 정하고 징수하였으며, 향청은 그 보조를 맞추어 갔던 것이다. 영양현에 부과된 牛皮價의 조정 요구가 향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19세기 향청 기능의 일면을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본 사안과 관련하여 폭력을 행사한 奴令輩는 관아의 使令과 官奴들이다. 이들이 어떤 세력의 사주를 받아 난입하였다면, 관아와 관련된 세력 중 하나일 것이며, 그 중에서도 아전들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고을의 부세 문제를 둘러싼 재지 세력 간의 갈등이 적지 않게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이다.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朝鮮後期 地方財政硏究』, 장동표, 國學資料院, 1999
『朝鮮後期 地方統治行政 硏究』, 이희권, 집문당, 1999
이광우,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