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의흥향교(義興鄕校) 간행 『의흥교록(義興校錄)』 수록 1935년 황진성(黃鎭晟) 「의흥교록서(義興校錄序)」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5+KSM-WZ.1935.4772-20130630.Y131120100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향교지
작성주체 황진성, 의흥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작성시기 1935
형태사항 크기: 28.6 X 18.9
판본: 석판본
장정: 선장
수량: 1책
판식: 半郭 : 15.0×18.6㎝, 四周雙邊, 有界, 10行20字, 上二葉花紋魚尾, 上下白口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현소장처: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안내정보

의흥향교(義興鄕校) 간행 『의흥교록(義興校錄)』 수록 1935년 황진성(黃鎭晟) 「의흥교록서(義興校錄序)」
1935년 3월 하한(下澣) 경상북도(慶尙北道) 군위군(軍威郡) 소재 의흥향교(義興鄕校)에서 간행한 『의흥교록(義興校錄)』의 서문(序文)이다. 의흥향교는 조선시대 경상도(慶尙道) 의흥현(義興縣)의 향교이며, 서문 작성자는 당시 군위군수(軍威郡守)였던 황진성(黃鎭晟)이다. 서문은 『의흥교록』의 가장 서두에 수록되어 있다. 서문 본문에는 『의흥교록』의 간행 의의와 더불어, 『의흥교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역대 교임 명단을 높게 평가해 놓았다. 이 교임 명단이 역대 의흥향교 교임 교체 기록인 「교임상체록(校任相遞錄)」인 것이다. 본문에는 이러한 자료의 편찬이 옛 사실을 징험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며, 옛 기송(杞宋)의 고사(故事) 등을 인용하여 의의를 높게 평가하였다.
이광우,이수환

상세정보

1935慶尙北道 軍威郡 소재 義興鄕校에서 『義興校錄』을 간행하자, 그 의의를 칭송하며 작성한 軍威郡守 黃鎭晟의 序文
[내용 및 특징]
1935慶尙北道 軍威郡 소재 義興鄕校에서 『義興校錄』가 편찬될 때, 당시 軍威郡守였던 黃鎭晟이 작성한 序文이다. 황진성1934군위군수로 부임한 인물로, 그의 서문은 『義興校錄』 가장 서두에 「義興校錄序」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해당 서문은 1935년 3월 下澣에 작성되었는데, 『義興校錄』 간행의 의의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놓았다. 특히 『義興校錄』에 수록된 「校任相遞錄」, 즉 의흥향교 역대 교임 명단의 정리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서문에서는 먼저 하잘 것 없는 일이라도 기록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夏나라의 후예이지만 징험할 것이 없다는 杞나라의 예를 들어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것의 중요함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義興嶠南, 즉 嶺南의 71 고을 중 하나로, 염치를 숭상하고, 예의를 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풍속을 삼고 있음을 칭송하고 있다. 또한 단정한 선비들이 향교에서 활동하며 이러한 풍속이 이루어진지 500년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인재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어 백성들의 교화가 이루어졌으니, 향교 진흥은 쉴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때마침 의흥향교의 校長 洪淵會가 향교의 부진함을 염려하여 여러 인사들과 역대 향교 교임을 역임한 인사들의 행적을 정리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홍연회의흥향교의 首任인 直員을 역임하고 있던 인물이며, 행적을 정리한 것은 본 자료에 수록되어 있는 「校任相遞錄」이다. 『義興校錄』에 본 서문을 이어 수록된 홍연회의 서문에 따르면, 훼손이 심한 향교의 옛 자료를 고증하여 「校任相遞錄」의 정리를 완성하게 되었다며, 본 서문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는 역대 교임 명단의 정리 경위를 간략하게 언급해 놓았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지역 사림들이 바라던 바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 卷頭에 나에게 어떠한 말을 첨부하기를 청하니 졸렬하지만 외람되이 본 서문을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서문 말미에는 『論語』에서 孔子가 말한 "文獻이 만일 충분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취하여 내 말을 증명할 수 있다"를 인용하여 홍연회 등의 노력을 다시 한 번 칭송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자료적 가치]
근대식 교육 기관의 설립과 신분제 폐지 등의 사회적 변화로 향교의 권위가 크게 떨어진 20세기 이후, 향교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지역 유림들의 활동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향교는 갑오개혁 이후의 근대화 정책과 韓末 일제의 향교 통제 정책에 따라 크게 퇴락하게 되는데, 그런 와중에도 의흥향교처럼 향교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각 지역의 유림별로 전개되고 있었다. 20세기 초반 이후 경상북도 군위군에 편입된 옛 慶尙道 義興縣 유림들은 역대 교임안을 새롭게 정리하면서 옛 전통을 되살리려 한 것이다. 그런데 『義興校錄』에 수록되어 있는 인사들은 옛 경상도 의흥현 지역을 대표하던 재지사족들이었다. 따라서 본 자료의 정리에는 20세기 이후 사족 중심의 향촌지배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그 후손들이 전통적인 사족 가문의 후예임을 표방하려는 의도도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1935년에 慶尙北道 軍威郡 소재 義興鄕校에서 간행한 『義興校錄』의 一에서 二까지 「義興校錄序」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義興校錄』, 義興鄕校, 1995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2
이광우,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의흥향교(義興鄕校) 간행 『의흥교록(義興校錄)』 수록 1935년 황진성(黃鎭晟) 「의흥교록서(義興校錄序)」

義興校錄
錄錄所事也事而無錄則所謂杞不足徵也錄可己
義興大嶠七十一之一也爲俗尙廉恥重禮義
崇聖校端士趣以贊晟世五百年菁莪柞棫之化曷
不休哉洪校長淵會氏慨宿韻之難挽慮來維之不
振歷敍校宮經任者皆當世勅行之望也添付人物
風士皆一州往蹟之實也編旣成以一州士林之意
要予存一言于卷端以予之暫守玆土也顧予湔劣
何足鳧鴈於江湖哉第其所錄皆可傳一事也夫子
之言曰文獻若足則吾能取之以徵吾言矣今淵會
氏處一州文獻之主錄其所事豈偶然己哉遂感而
書之
昭和十年乙亥三月下澣知郡黃鎭晟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