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0년부터 1777년까지 慶尙道 河陽縣 河陽鄕校에서 校任을 역임한 인사들의 명단과 교체 연도를 기재한 서책
庚辰以後庚辰以後後庚戌正月初日河陽郡鄕校任事案鄕校任事案
[내용 및 특징]
1760년부터 1777년까지 慶尙道 河陽縣에 소재하였던 河陽鄕校의 校任 명단과 교체 연도를 기재한 자료이다.하양향교는 20세기 이후에 있었던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는 慶尙北道 慶山市 河陽邑에 소재해 있다. 자료의 표제에는 ‘庚辰以後庚辰以後後 庚戌正月初日 河陽郡鄕校任事案 鄕校任事案’라는 글자가 4행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행마다 다른 시기에 적힌듯하다. 다만 ‘庚戌正月初日 河陽郡鄕校任事案’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河陽郡’이라는 지명을 감안할 기재 시기가 1910년일 것으로 추정되나, 본 자료의 정확한 작성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하양향교에는 ‘甲子以後 河陽郡鄕校任事案 鄕校任事案天’이라는 任事案이 별도로 전하고 있다. 본 자료와 같은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684년부터 1759년까지의 교임 명단을 수록해 놓았다. 즉, 본 자료는 ‘甲子以後 河陽郡鄕校任事案 鄕校任事案天’를 이어 교임 명단을 수록한 것이다.
본문의 명단은 도유사와 장의를 분류하여 성명을 기입한 후, 그 아래에 교체된 干支와 ‘春夏秋冬’ 節氣를 함께 수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 자료에서 확인되는 교임은 都有司와 掌議이다. 향교의 首任으로 도유사, 副任으로 장의를 임명하는 형식은 영남의 다른 향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교임 구성이다. 그 외 色掌이나, 東齋 또는 西齋 별로 임명되는 교임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양향교의 교임은 기본적으로 도유사 1인, 장의 2인 체제로 운영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장의를 1인 또는 3인 임명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는 앞서 편찬된 任事案과 동일한 추이이다. 다만 1회에 걸쳐 別有司가 확인된다. 1771년 春과 夏에 別有司로 崔海龍이 임명되어 있는데, 향교에서 어떠한 행사가 있는 관계로 일시적으로 임명한 듯하다. 교임의 임기는 일률적이지 않다. 보통 향교에서는 교임의 임기를 1년으로 설정하고 있으나, 이것을 그대로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하양향교도 마찬가지로 1년 정도 재임하는 교임도 있지만 대부분은 1년 미만만 재임한 후 교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본 자료는 1760년을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에 기재된 교임이 1777년에 임명된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실제로는 1771년 ‘秋’까지만 교체 기록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1771년 다음에 바로 ‘丁酉秋’, 즉 1777년 가을의 기록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 자료에 기재된 마지막 교임인데, 한 동안 기록에 공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재임과 중임을 제외하고 본 자료에서 도유사 또는 장의로 임명된 인원은 모두 90명이다. 90명의 교임은 성씨별 분류가 가능한데, 입록자가 많은 성씨부터 나열하면 曺氏 8명, 許氏 8명, 朴氏 7명, 張氏 5명, 李氏 4명, 金氏 3명, 都氏 3명, 崔氏 3명, 鄭氏 2명, 徐氏 2명, 蔡氏 2명, 韓氏 1명, 申氏 1명, 尹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앞서 작성되었던 1684년부터 1759년까지의 任事案은 曺氏, 朴氏, 許氏, 李氏, 金氏, 鄭氏, 張氏, 都氏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데, 대체로 추이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張氏와 崔氏의 상대적 비중이 높아졌으며 韓氏와 申氏, 尹氏는 새롭게 나타나는 성씨로 확인된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향교 운영의 일면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시대 향교는 교육 및 교화 기능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지방 유림들이 여론을 형성하는 장이기도 하였다. 실제 조선후기 향교의 校任인 都有司와 掌議는 지방 유림의 공론을 거쳐 지역 내 유력한 인사들이 임명되었었다. 하양향교의 교임 역시, 지역 내 유력한 사족 가문 출신의 인사가 공론을 통해 임명되고 있었다. 즉, 본 자료에서 확인되는 1760년부터 1777년까지의 교임 임명 양상은 당대 하양 지역 재지사족의 동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본 任事案에서 다수의 校任을 배출한 성관은 昌寧曺氏, 河陽許氏, 蔚山朴氏 등이다. 이들 가문은 조선중기 이래 하양 지역 鄕權을 주도했던 가문으로 이 시기 하양향교의 운영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조선후기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민음사,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경성대학교 출판부, 1992
이광우,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