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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년 경상도(慶尙道) 청도군(靑道郡) 정명구록(正名舊錄)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5+KSM-WZ.1661.4782-20130630.Y13106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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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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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향안
작성주체 청도군 향청
작성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작성시기 1661
형태사항 크기: 35 X 25.5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1책(34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안내정보

1661년 경상도(慶尙道) 청도군(靑道郡) 정명구록(正名舊錄)
1661년 작성된 경상도(慶尙道) 청도군(淸道郡)의 향안(鄕案)으로, 1599년부터 1657년까지 청도 지역 향청(鄕廳)의 향원(鄕員)으로 입록되었던 인사 180명의 명단을 수록해 놓았다. 향원은 조선시대 지방자치 행정기구라 할 수 있는 향청에서 활동했던 지역 인사들을 일컫는 것으로, 그 명부가 바로 향안이다. 조선시대 각 고을의 유력한 양반들은 유향소(留鄕所)를 중심으로 자치규약을 제정하고, 수령이 있는 관청과 협조 또는 견제하며 자신들과 고을의 이익을 반영해 나갔었는데, 향청은 대략 17세기 이후 유향소의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즉, 유향소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해당 고을의 유력한 사족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향안이었다.
『정명구록(正名舊錄)』은 제목 그대로 이전에 작성되었던 옛 향안의 향원 명단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다. 향안에 수록된 자들은 성명과 더불어 관직이나 직역(職役) 등을 기재해 놓았는데, 지역 여론에 영향력을 높이 끼쳤던 가문일수록 많은 향원을 배출하였다. 입록자 180명을 성관별로 분석하면 밀양박씨(密陽朴氏), 고성이씨(固城李氏), 경주이씨(慶州李氏), 의흥예씨(義興芮氏), 재령이씨(載寧李氏),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즉 이들 양반 가문에 의해 17세기 전반기 청도 지역의 여론이 주도되고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광우,이수환

상세정보

1661慶尙道 淸道郡 鄕廳에서 작성한 향안으로 1599년부터 1657년까지 鄕員 180명을 수록
[내용 및 특징]
1661慶尙道 淸道郡의 鄕廳에서 작성한 鄕案으로, 표제는 『正名舊錄』이다. 표제에 나타난 ‘正名’과 ‘舊錄’이라는 의미대로 이전에 작성되었던 향안을 새롭게 정리해 놓았다. 즉 『정명구록』은 1661년의 座目이 아니라 1599년부터 1657년까지 11회에 걸쳐 이루어진 청도향안 입록자 180명의 명단을 정리한 것이다. 연도 순서대로 11편의 좌목을 수록해 놓았으며, 말미에는 朴東孝의 誌를 수록하였다. 한편, 『正名舊錄』은 1712년에 작성된 『正名錄』과 함께 엮여져, 1911년 『淸道鄕案正名錄』으로 간행되었다. 『청도향안정명록』에는 두 자료와는 달리 입록자의 본관을 기재해 놓았다. 또한 근래까지 淸道鄕校에는 『정명구록』과 『정명록』을 비롯하여, 7편의 개별 향안이 전해져 17세기 청도 지역 재지사족의 동향을 살펴보는데 활용되고 있다.
좌목의 기재 양식은 먼저 입록자의 관직과 직역 등을 기재하고, 이어 성명을 수록해 놓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명구록』에 수록된 첫 번째 좌목은 萬曆 27년(1599)의 것으로 23명이 확인된다. 『청도향안정명록』을 통해 입록자의 성관을 살펴보면 固城李氏 8명, 密陽朴氏 4명, 慶州李氏 3명, 載寧李氏 2명이며, 淸道金氏, 金海金氏, 長淵盧氏, 驪興閔氏, 咸安趙氏, 그리고 본관 미상의 崔氏 각 1명 순으로 나타난다. 당시 座首와 別監은 朴誠李廷郁이다. 두 번째 좌목은 만력 28년(1600)의 것으로 밀양박씨 4명과 청도김씨, 김해김씨, 義興芮氏, 고성이씨, 全義李氏, 牙山蔣氏, 慶州崔氏 각 1명 등 모두 11명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좌수는 李洙, 별감은 박성이다. 세 번째 좌목은 만력 37년(1609)의 것으로 밀양박씨 7명, 고성이씨 2명, 여흥민씨, 竹山朴氏, 재령이씨, 경주이씨 각 1명으로 모두 13명이 수록되어 있다. 좌수는 이름 없이 崔로만 기재되어 있고, 별감은 李氏 2명이다. 네 번째 좌목은 만력 38년(1610)의 것으로 의흥예씨 1명, 原州元氏 1명만 수록되어 있으며, 좌수는 박씨, 별감은 예씨와 이씨이다.
다섯 번째 좌목은 만력 42년(1614)의 것으로 밀양박씨 3명, 玄風郭氏 2명, 고성이씨, 夏山張氏, 경주최씨 1명 등 모두 8명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 좌수는 박씨, 별감은 박씨와 이씨 2명이다. 여섯 번째 좌목은 만력 45년(1617)의 것으로 고성이씨, 김해김씨, 高靈金氏, 岐城潘氏 각 1명씩을 수록하였다. 당시 좌수는 이씨, 별감은 2명으로 모두 박씨였다. 일곱 번째 좌목은 天啓 7년(1627)의 것으로 경주이씨 4명, 고성이씨와 밀양박씨 각 3명, 제주고씨 1명 등 총 11명을 수록하였으며, 좌수는 李廷卓, 별감은 崔嶂李漑로 나타난다. 여덟 번째 좌목은 乙酉年(1645)에 작성되었는데 『정명구록』에서 최대 규모인 50명이 수록되어 있다. 성관별로는 고성이씨 17명, 밀양박씨 16명, 경주이씨와 경주최씨 각 3명, 의흥예씨와 재령이씨 각 2명, 청도김씨, 김해김씨, 義城金氏, 기성반씨, 密陽孫氏, 원주원씨, 전의이씨 각 1명 순이다. 당시 좌수는 李稑, 별감은 李珉朴東貞이 맡고 있었다. 아홉 번째 좌목은 辛卯年(1651)의 것으로 밀양박씨 5명, 고성이씨 4명, 의흥예씨 2명, 기성반씨와 安東孫氏 각 1명 순으로 모두 13명이 수록되어 있으며, 좌수는 朴東惟, 별감은 1645년과 마찬가지로 박동정이민으로 확인된다. 열 번째 좌목은 乙未年(1655)의 것으로 모두 23명이 입록되었는데 밀양박씨 9명, 경주이씨 3명, 의흥예씨 2명과 본관 불명의 孫氏 2명, 현풍곽씨, 청도김씨, 김해김씨, 의성김씨, 원주원씨, 고성이씨, 경주최씨 각 1명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당시 좌수는 朴東悌, 별감은 金鐵堅李光弼이다. 열한 번째 좌목은 丁酉年(1657)의 것으로 고성이씨 8명, 밀양박씨 7명, 현풍곽씨 2명, 청도김씨, 김해김씨, 고령김씨, 전의이씨, 하산장씨 각 1명 순으로 모두 22명을 수록하고 있다. 당시 좌수는 朴東老, 별감은 孫樹䉨朴東傅로 나타난다.
이상 『정명구록』에 수록된 180명을 성관 별로 나열하면 밀양박씨 58명, 고성이씨 46명, 경주이씨 14명, 의흥예씨 8명, 현풍곽씨, 청도김씨, 김해김씨, 재령이씨 각 5명, 기성반씨, 원주원씨, 전의이씨 각 3명 제주고씨, 고령김씨, 의성김씨, 여흥민씨, 하산장씨 각 2명, 장연노씨, 죽산박씨, 밀양손씨, 안동손씨, 아산장씨, 함안조씨 각 1명과 본관 불명 성씨 3명으로 확인된다. 성관 비중으로 보아 청도 지역에서 밀양박씨의 族勢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성관은 16세기 이래 청도 지역의 대표적인 사림 가문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가문이다.
입록자의 관직과 직역 등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幼學이지만, 유학의 입록 비중은 시기적으로 약간씩 차이가 난다. 180명 입록자 중 유학은 90명으로 50%를 차지하고 있는데, 입록 시기별로 그 비중을 살펴보면 1599년 30%, 1600년 64%, 1609년 23%, 1610년 50%, 1614년 75%, 1617년 25%, 1627년 45%, 1645년 40%, 1651년 62%, 1655년 83%, 1657년 59%이다. 전반적으로 17세기 중반에 가까워질수록 유학이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비록 고위관직을 역임한 인물은 좌목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17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임란공신에 녹훈되거나 지방관과 무관직을 역임했던 인물들이 입록되어 있으며 명예직과 忠義衛와 같은 병종 등 다양한 관직과 직역 등이 나타났지만, 후기로 갈수록 유학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료 가장 말미에 수록된 誌는 辛丑年(1661)에 박동효가 작성한 것으로 『정명구록』의 작성 경위를 언급해 놓았다. 박동효는 또 다른 향안인 『정명록』에 通德郞이라는 품계를 가지고 1661년 좌목에 수록된 인물이다. 誌에 따르면 榮川李候가 재임한지 5년이 되던 해 여름, 향중에서 別會를 열어 새로운 입록자들에 대한 좌목을 작성하고 이를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榮川李候는 당시 淸道郡守를 역임했던 李燦漢으로, 그는 1656년부터 1661년까지 5년간 청도군수를 역임하였다. 당시 ‘正名’된 좌목은 ‘在世之員’의 원칙에 따라 작성했다고 나타나 있다. 실제 1661년 향안의 입록자는 『정명구록』 보다 많았음을 암시한다. 이어 1661년 당시 좌수였던 李球의 노고로 이상의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며 그를 기리며 誌를 마치고 있다. 이구 역시 『정명록』에서 확인되는 인물이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鄕案 작성의 추이와 17세기 전반기 청도 지역 재지사족들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향안은 조선중기 이후 재지사족들 중심의 향촌지배질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배타적인 향안 작성을 통해 사족들은 지방자치행정 기구인 留鄕所(이후의 鄕廳) 운영을 주도해 나갔던 것이다.
『정명구록』 입록자의 성관을 분석하면 전반적으로 土姓 보다는 이주한 재지사족의 세가 강한 고을임이 확인된다. 청도의 토성으로는 申, 金, 白, 李, 曺氏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후 향안에는 김씨만 수록되어 있으며, 그나마 입록자도 10여 명에 불과해 본관지에서의 族勢가 그리 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밀양박씨, 고성이씨, 경주이씨, 의흥예씨, 재령이씨, 김해김씨 등 이주 성씨의 족세가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가문은 17세기 이전 혼인과 복거 등을 통해 청도에 移居한 사족 가문이었는데, 이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전후 士林의 형성과 맥을 같이한다. 김해김씨 출신의 金馹孫은 무오사화 당시 대표적인 사림으로 피화를 당했던 인물이며, 16세기 전반기 활약한 밀양박씨의 朴河淡朴河澄 등도 청도 지역 사림 세력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본 향안에 입록된 인물들은 이들의 후손이거나, 혼인 등을 통해 중첩된 인척관계를 맺은 가문으로 16세기 사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가문 출신인 것이다.
『嶠南誌』,
『淸道鄕案正名錄』, 1911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민음사, 1990
申正熙, 嶺南大學校 大學院 博士學位論文, 1991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釜大史學』22, 張東杓, 釜山大學校史學會, 1998
이광우,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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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년 경상도(慶尙道) 청도군(靑道郡) 정명구록(正名舊錄)

正名舊錄
僉正李白新
習讀朴誠
僉知李礬
僉知李礱
朴光亨
幼學崔泗源
閔參
盧慶濬
郡守金克裕
進士金致三
幼學趙成麟
僉正朴譚
忠義李洙
李潜
息城君李雲龍
忠義李濂
李澈
幼學李廷翰
李廷郁
忠義李濟
幼學朴詳
忠義李淑
幼學李廷卓
萬曆二十七年【座首朴誠別監李廷郁
幼學金遇錘
縣監朴慶傳
幼學蔣思孝
僉知朴慶胤
幼學崔汝峻
高嶸
朴誠
參奉李璣玉
幼學芮夢辰
朴馚
同知李湍
萬曆二十八年【座首李洙別監朴誠
幼學李景春
參奉朴瑍
同知朴瑄
參奉朴炯
同知朴璨
朴璘
奉事朴珽
幼學李廷翼
閔止孝
縣監朴瑀
僉知李漑
參奉朴瑾
忠義李瑺
萬曆三十七年【座首崔別監李李】
萬戶元士彪
幼學芮廷馧
萬曆三十八年【座首朴別監芮李】
幼學郭永鎭
張翼參
郭永錫
奉事朴琡
幼學朴璜
崔嶂
朴珪
禦侮將軍李玹
萬曆四十二年【座首朴別監朴李】
內禁衛潘國海
忠義李潭
幼學金善慶
僉知金尙輝
萬曆四十五年【座首李別監朴朴】
僉知高崙
生員李瓛
幼學李稹
李稑
李秤
朴東秀
李穰
忠義李光仁
通德郞朴東孝
忠義李頊
宣務郞朴東悌
天啓七年【座首李廷卓別監崔嶂李漑
幼學朴希章
僉知李宗明
縣監李儼
幼學崔逈
朴璣
忠義李{王+殿}
訓導崔建
幼學金胤先
孫績
參奉李重慶
僉知朴東徵
幼學潘溶
忠義李瑜
萬戶芮用周
幼學朴東賢
崔遠
金濈
朴東徵
芮撝謙
朴東信
朴東老
通德郞朴東欽
監察李琬
忠義李光宇
幼學朴東維
忠義李琯
李琛
李珉
宣敎郞朴東貞
宣務郞朴東溫
參奉李光義
從仕郞元斗興
幼學金鐵堅
朴東益
忠義李琰
李光元
李光禮
李珩
李光弼
幼學朴之荗
忠義李球
李玏
幼學朴東卨
李重毅
李尙毅
宣務郞李處毅
承仕郞朴東稷
忠義李璈
李珠
宣務郞朴東柱
乙酉年【座首李稑別監李珉朴東貞
幼學潘潤
朴東耈
朴東緯
忠義李光軫
幼學朴之慶
同知孫千一
忠義李瑢
李光世
幼學朴東傳
芮俊民
忠義李光斗
幼學朴衛漢
芮碩蕃
辛卯年【座首朴東維別監朴東貞李珉
幼學孫樹䉨
僉知金軷
幼學朴乃章
芮慎謙
金潝
孫錫
僉使金友仁
幼學朴自章
崔慶章
朴東章
李恒毅
朴東耋
朴東奭
府使朴始漢
忠義李光星
幼學朴東昱
朴寅漢
李惟毅
郭鴻翰
朴屛漢
芮碩薰
元萬始
李好毅
乙未年【座首朴東悌別監金鐵堅李光弼
幼學金轉
郭鴻習
張克浚
金漾
郭壽嶔
朴經漢
朴佑漢
忠義李光啓
李光國
李光復
李天耈
幼學朴昌漢
朴賔漢
金重夏
忠義李光廷
進士朴泰漢
忠義李光謙
李光鼎
李光晋
幼學朴東彦
李祐徵
朴瑞漢
丁酉年【座首朴東老別監孫樹䉨朴東傳
榮川李候之莅此邑五載之夏諭
于鄕中設別會新進之擧冊以錦藏
之櫃使之題名此實古今罕有之盛
事在世之員旣參於此而曾仙父老則
獨不登錦冊斯豈無有所歉乎座
李君【球】採察鄕意粧以錦冊歷
考前後年月而書諸名偕藏于櫃
其尊重鄕中之道更振今日而死生
咸沐仁候之澤庸有極乎嗚乎
休哉
辛丑歲後學朴東孝謹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