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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 청도향교(淸道鄕校) 명륜당구상량문(明倫堂舊上樑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4+KSM-XI.1734.4782-20120630.Y121060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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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시문류-상량문
내용분류: 경제-토목/건축-상량문
작성주체 청도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작성시기 1734
형태사항 크기: 25 X 3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안내정보

1734년 청도향교(淸道鄕校) 명륜당구상량문(明倫堂舊上樑文)
1734년에 청도향교에서 명륜당을 중수하는 상량식을 하면서 작성한 명륜당구상량문(明倫堂舊上樑文)이다. 향교의 주요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이 있는데, 대성전은 선현들의 제사를 위한 제례공간이고, 명륜당은 유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강학공간이다. 청도향교가 원래 입지하고 있었던 화양읍 합천동(華陽邑 合川洞)은 거리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시끄럽고 향교 주의를 흐르는 반수(泮水) 역시 불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향교 이전 문제가 거론되었던 것 같다. 결국 1734년 당시에 청도군수였던 정흠선(鄭欽先)이 입지환경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시 향교터의 이전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9월 24일 대성전의 상량식이 먼저 있었고, 10월 22일에는 명륜당의 상량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본 명륜당의 상량문에 의하면, 명륜당은 중국의 법규와 규범에 맞추어 만들었으나 편액인 ‘명륜(明倫)’의 두 글자는 우리 선현의 필적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곳에서 선현의 뜻을 계승하고 후학들을 잘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성인은 백세의 스승이시고, 향교는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이라고 향교의 기능을 찬미하면서 청도향교 이건의 경과를 간략히 설명하고, 앞으로 청도유림이 무한히 발전할 것을 기원하였다. 이 상량문은 ‘구상량문’이라고 하는 제목에서 보듯이 1843년의 청도향교 중수시에 대들보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1734청도향교의 중수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자료 중의 하나이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734년에 청도향교에서 명륜당의 상량식을 하면서 작성한 明倫堂舊上樑文
내용 및 특징
1734년에 청도향교에서 명륜당을 중수하는 상량식을 하면서 작성한 明倫堂舊上樑文이다. 대성전이 성현의 제사를 모시는 신성한 廟祀공간이라고 한다면, 명륜당은 鄕校의 교육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講學공간이다. 청도향교는 원래 華陽邑 合川洞에 위치하였으나 향교의 입지환경이 대로변이었으므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매우 시끄러웠고, 향교 주위를 흐르고 있는 泮水도 불결하여 가끔 移建의 논의가 있었던 것 같다. 1734년 당시 청도군수였던 鄭欽先청도향교 입지환경의 제반 문제점을 인식하였으므로 청도향교의 移建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734년 9월 24일 대성전의 상량식이 이루어졌고, 계속해서 10월 22일 명륜당의 상량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상량문은 그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락에서는 明倫堂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명륜당의 건립은 ‘中國의 古規’를 따른 것이나, 그 편액의 필적이 우리 先賢의 필적이듯이 明倫의 堂號를 내건 것은 우리 先賢의 뜻을 잘 이어받아 後學을 교화하는 모범을 드리우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명륜당에서는 賢人들과 함께 지내며 君臣父子之道를 배우고, 東西內外를 구별하는 예의를 잘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두 번째 단락에서는 청도향교를 移建하게 된 까닭을 밝히면서, 천만다행으로 午坐의 正位에 향교터를 정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현임 군수의 공로 때문이라고 치하하였다. 이에 따라 명륜당의 건립이 이루어지게 되면, 앞으로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人材가 배출되어 청도유림의 무궁한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다. 마지막에는 ‘兒郞偉歌’를 첨부하여 청도향교 입지환경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면서, 청도유림의 鄒魯之風이 경상도 일대에서 우뚝 솟게 되기를 희구하였다.
자료적 가치
1734년의 청도향교 移建은 당시의 청도군수였던 鄭欽先이 주관하였다. 그러데 鄭欽先이 주관한 移建工役의 내용이 담겨있는 두 편의 상량문은 아마도 1843년 당시 군수宋啓栢이 향교의 중수공사를 진행할 때, 해체된 대들보 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시의 상량문을 ‘舊上樑文’이라는 제목으로 청도향교에 보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본 상량문은 1734년 향교 移建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중의 하나이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남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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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 청도향교(淸道鄕校) 명륜당구상량문(明倫堂舊上樑文)
明倫堂舊上樑文
肅明宮於新區方瞻門墻之動色移黌堂於右地聿覩棟樑之
呈材不日而成獲神之助窃惟此堂之肇設盖因中國之古䂓額
扁明倫先賢之筆蹟昭揭名以首善後學之模範備具入此室
而従遊講君臣父子之道昇其階而揖讓辨東西內外之庭此
誠名教之所關肆殿廡營建之後不可斯文或廢而齋舍以薦
以移惡濕而居幾歎舊基之靡靜避水之患幸卜新址之孔嘉
時有待焉得午坐之正位天所賜也協庚年之前兆莫非我侯之
功允爲吾黨之幸奠聖廟於百代俎豆之典愈嚴創儒宮於一
時絃誦之風將挽靑襟佾坐明三綱五常之源絳惟高開討六
經四書之旨伊西古域豈無人才之復興嶺南名州堪誇賢士
之倍出依然造道之級宛爾入德之門攝衣昇堂孰不顧名而
思義焚香拜廟宜乎盡敬而殫誠六偉乃歌雙虹以擧兒郞
偉抛樑東天作山城圍泮宮高難仰止堅難鑚見此方知聖道
弘兒郞偉抛樑西宮廈崢嶸雉堞齊活水盈科泉始達愛看鰲
影鏡中低兒郞偉抛樑南華嶽巉巌碧如藍雄踞固知藏淑氣
吾鄕幾箇是真男兒郞偉抛樑北一帶川流流不息遙望長安回
首處高樓捧日傍南極兒郞偉抛樑上營室星連奎壁朗文士竒
藻爭日月佇看庠序得涵養兒郞偉抛樑下應出河劉與深謝
稟得鰲岑磅磚氣文明將埒彼中華㐲願上樑之後聲教丕闡儒
術克明禮樂之風庶承鄒魯之俗詩書之習可回嶺嶠之名
禎後百有七年十月十九日立柱二十二日上樑郡守鄭欽先
李義耈朴性熙都有司蔣來復製 掌議朴重一孫鎭
李鰲書都色記官金汝鋼木手僧偉鑑邉手金己
庫子柳逢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