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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 청도향교(淸道鄕校) 명륜당 상량문(明倫堂上樑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4+KSM-XI.1651.4782-20120630.Y121060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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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시문류-상량문
내용분류: 경제-토목/건축-상량문
작성주체 청도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작성시기 1651
형태사항 크기: 25 X 3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 문중소개
현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교길 36

안내정보

1651년 청도향교(淸道鄕校) 명륜당상량문(明倫堂上樑文)
1651년에 청도향교에서 명륜당을 중수하는 상량식을 하면서 작성한 명륜당상량문이다. 이 글은 원래 1651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본문은 그 원본이 아니라 1684년에 원본을 베낀 글을 후대에 중수공사를 하면서, 새로 발견하여 옮겨 놓은 글로 추정된다. 이 상량문의 내용에 의하면, 청도향교1630년에 대성전의 이건(移建)공사를 하였는데, 어떠한 이유에선지 그 22년 뒤인 1651년에 이르러, 겨우 명륜당의 중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상량문의 내용은 명륜당의 이건경위를 설명하는 부분과 청도향교의 발전을 축원하는 대들보노래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건 경위의 서술 부분에서는 청도가 역사가 오래된 문헌의 고장이라는 점을 먼저 기술하고, 당시의 청도군수이재(李梓)가 정치를 잘했다는 점을 우선 언급하였다. 다음으로 명륜당이 지어진지 오래되어 비바람의 침범을 받고 있으므로, 이 건물을 중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청도유림의 소망이었다고 하였다. 청도군수이재가 이러한 유림의 소망을 알고서 명륜당의 중수를 추진하니 중수공사가 매우 빠르게 진척되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대들보노래에서는 청도향교의 입지 환경을 찬양하면서, 이처럼 지세 좋은 곳에 명륜당을 지어 놓았으니, 이곳이 앞으로 학문의 터전이 되어 공자님의 수제자들처럼 뛰어난 학자들이 나타나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말미에는 상량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이 수록되었다. 청도군수이재, 도유사이동어, 장의곽홍습, 도감이광복, 손필달, 도색이필신등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승려로써 참여한 이로 현흡, 선욱, 탄균등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651청도향교에서 명륜당의 상량식을 하면서 작성한 明倫堂上樑文
내용 및 특징
1651청도향교에서 명륜당의 상량식을 하면서 작성한 명륜당상량문이다. 이 상량문의 발견경위는 다소 복잡한 듯하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전체 상량문의 내용은 청도군수李梓 재임시에 작성된 것이 분명하나 문장 말미에 첨부된 두 줄의 설명문을 보면, 숭정후57년(1684년)에 통훈대부아무개가 베껴놓은 글을 갑인년(1734년)에 다시 옛 터에 놓아두었다고 했으니, 그 발견의 경위를 보면 1651년 상량식 때 작성된 상량문을 1684년에 발견하여 베껴놓고 그 자리에 두었는데, 1734년 중건공사 때에 발견되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 상량문 전문은 발견시점과 상관없이 1651년 상량식 때의 정황으로 추정된다.
본 상량문에 의하면, 청도향교1630년에 大成殿의 移建이 있었고, 그 22년이 지난 1651년에 明倫堂을 移建하면서 이 上樑文을 짓는다고 하였다. 상량문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두 부분이란 우선 명륜당의 이건경위와 이건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명륜당의 연혁서술부분과 상량후의 앞날을 기원하고 축하하는 대들보노래(兒郞偉歌)부분이다. 연혁서술부분에서는 淸道가 영남지역의 중심고을 중 하나로서 문헌이 풍부하며 역사가 오래된 지역임을 먼저 언급하고, 당시 淸道郡守李梓가 정치를 잘하여 사람들의 인망을 얻었음을 우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현임관리의 교화가 잘 이루어지는 이때, 향교 건물이 오래되어 낡고 비가 샜으므로 보수와 수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儒林의 여망을 淸道郡守李梓가 잘 알고, 明倫堂의 重修工役을 추진하니 당시 儒林의 여망과 부합하여 일이 빠르게 진척되었다. 이에 明倫堂의 상량식을 진행하게 되어 즐비한 건물의 골조들이 우뚝 서게 되었다. 대들보노래 부분에서는 먼저 청도향교의 지세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仁者가 나올만한 곳임을 찬미하고, 명륜당은 성인의 교화를 실천하는 곳이므로, 이곳에 재주 많은 선비들이 많이 모여 학문을 연마함으로써 孔門의 首弟子처럼 뛰어난 학문성취를 이루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 1684년에 당시 通訓大夫아무개가 이 글을 베꼈다는 기록과 이 글을 1734년 옛터에 그대로 두었다는 내용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으며 또 1651년의 상량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명단들이 기록되어 있다. 주요 참석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淸道郡守李梓, 都有司李東立+欠, 掌議郭鴻習, 都籃李光復,孫必達, 都色李必信, 木手僧玄洽, 先郁, 重建都色金潤洽 , 木手僧坦均, 差使黃分上
자료적 가치
이 상량문은 1651明倫堂 重修工役 당시의 상량문으로 추정된다. 전문의 내용은 바로 그 당시 지어진 상량문의 내용이지만, 후대에 실제 원문 그대로가 발견되어 그 내용을 고스란히 베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淸道郡守 李梓 였으며, 재임 중에 이 重修工役을 마무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주요 참석자의 명단에 玄洽, 先郁, 坦均등 승려들의 法名이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屬寺의 승려들을 工役에 동원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남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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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651년 청도향교(淸道鄕校) 명륜당 상량문(明倫堂上樑文)
明倫堂上樑又有此文故謄書
崇禎三年庚午移建聖廟越二十二年辛卯始建明倫堂謹以
是歲十月十七日辛酉吉辰上樑其文曰㐲以設爲庠序學校方
恢右文之治教以禮樂詩書肆建講藝之室足以興隆世道首
宜彰明人倫盖玆嶺南中州伊西古國風淳俗美舊稱文獻之邦
物阜民安今爲敦化之邑治效旣著孰不曰爾侯之賢德教方行咸
有志吾儒之學崇祀先聖瞻廟宇之巍巍講論前經欠堂筵之
秩秩旁風上雨苟簡幾多於師生左齊右庖經營宜急於土木
固惟待時而作適此順勢而謀其各勉焉斯皆衛道之心不可
緩也乃用齊民之力工倕運智巧盡廣狹之䂓模匠石掄材總輸
長短之杞梓棟隆其吉魯闕里之渠渠堂成且華齊瓦縫之翼翼
崇儒右地庶見執經之如雲倡道前程幸逢造士之有日聲已動
於學子禮將賴於懦夫六偉斯歌雙虹以擧兒郞偉抛樑東春
意生元氣中順一理育萬物人心亦自冲瀜兒郞偉抛樑南山
萬疊生夕嵐仁者桀此截峙悠然意趣恬憺兒郞偉抛樑西瞻
魯廟奧翼齊千載尙如此一日聖賢自有階梯兒郞偉抛樑北
玉宇高瞻紫極風色滿空肅然乾坤廓玄冥域兒郞偉抛樑上
戴萬古竟天廣屬太平日月明人文至今宣朗兒郞偉抛樑下
濟濟多士仍舍學問日就月將自期當時游夏㐲願上樑之後
賢能自育後人蔚興修明五者之倫儒躋禮讓永圖萬斯之歲
道在治安崇禎後五十七年七月乙丑二十四日壬午行通訓大夫
甲子年移建上樑文膽書甲寅十一月初六日置于舊穴
李梓都有司幼學李東▣掌議幼學郭鴻習行有
司幼學崔地維朴之章都監幼學李光復孫必達
有司幼學李昶掌議幼學朴師古芮秀三都色李必
木手僧玄冾邊手僧先郁重建都色金潤冾木手
坦均差使黃分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