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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청도향교(淸道鄕校) 중건기문(重建記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4+KSM-XG.1843.4782-20120630.Y121060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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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중수기
내용분류: 경제-토목/건축-중수기
작성주체 청도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작성시기 1843
형태사항 크기: 25 X 3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문중소개
현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안내정보

1843년 청도향교(淸道鄕校) 중건기문(重建記文)
1843년 6월10일, 청도향교장용한이 향교중수의 과정에 대해 서술한 중건기문(重建記文)이다. 중건기문의 내용에 의하면, 청도향교는 8차례의 이사를 거듭하여 현재위치에 들어섰으나, 이곳도 시일이 지나면서 비바람의 침범을 받아 부득이 수리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 되었다. 때마침 청도군수송계백공이 부임하면서 중수논의가 빨리 진행되어 3월부터 대성전중수공사가 시작되었다. 중수공사의 총책임자는 송계백공이 맡아서 주관하였고, 실무의 총책임자로는 김재곤이 임명되었다. 중수하는 날, 대들보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이를 읽고 필자는 선현들의 깊은 숭덕심에 감동받았다. 이에 장용한이 중수의 과정을 간략하게 기록한다고 하였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843년 6월10일, 청도향교장용한이 작성한 重建記文
내용 및 특징
1843년 6월10일, 청도향교장용한이 향수중수의 과정에 대해 서술한 重建記文이다. 본 重建記文의 내용에 의하면, 청도는 원래 東方의 鄒魯之鄕을 자부하는 유서깊은 고을인데, 이 고을에 설치된 향교는 무려 8번의 이사를 거친바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리에 있는 향교건물들도 오랜기간동안 風雨의 영향을 받아 지붕과 담 등이 허물어져서 수리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향교란 한 지방의 교육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유림의 중심지이므로 향교의 건물을 무너질 듯 허술하게 방치할 수가 없다. 이에 건물의 중수를 위한 향론이 때마침 발의되었고, 시의적절하게 宋啓栢공이 청도군수로 부임하게 되어 중수공사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리하여 1843년 3월에는 大成殿의 중수를 위한 상량식이 있었고, 金馹孫선생의 10대 후손인 金再坤이 건물 중수의 책임자로 활약했다. 중건하는 날, 대들보를 살펴보니 예전의 상량문이 발견되어 선현들의 깊은 사려에 감동받았으며, 이에 중건의 사적에 대해 간략히 기록한다고 하였다.
자료적가치
본 중수기문은 대성전 중수공사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쓴 듯하며, 장용한이 중수과정에서 선현들의 상량문을 발견하여 감동을 받아 중수과정에 대해 기록한다고 하였다. 청도향교의 중수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3년 청도향교(淸道鄕校) 중건기문(重建記文)
重建記文
道州之學粤自剏建至于八遷而始得其地終焉允臧卽是
基也噫磨以歲月閱以風霜幾至數百年之久而上棟下宇風
打雨灑東膠西序月漏星滲家弦而戶誦冠儒而服儒者祗
聖廟而齋欝躋倫堂而發歎儘出於秉彛之天也矧吾海東卽
小中華嶠南亦古鄒魯昔我鄕父老營建之議峻發於百世之上
而未遑之事迄及於百世之下惜乎慕聖崇德之議倍切於
後生措事區劃之方亦過於末學而春秋迭代歲月遷就邇來
亦有年而以至今日者抑或有晦顯而然歟夫校宮之移建與
重葺果何等重大盖匪自下士林之擅斷實由在上君子之軫
念則亦豈無有待而然耶際玆聖鑑之照遠何幸賢侯之莅
邇願腆寇君之借來何叔度之暮士曰時哉而繼發父老之議
民曰樂哉而皆有子來之心則上之所好下必従之而因以重建
之議焉輿論不岐詢謀僉同協兆卜吉乃上之卽位九年癸卯
春三月壬子日也然則伯恭之重葺濂院實慕賢之誠季通之修
葺精舍亦尙德之道也於此觀之則濂溪風月得呂氏而重光
精舍紅綠遇蔡氏而增輝則况吾鄕大聖之廟吾夫子尊崇
之地諸賢哲陟降之所仍舊貫而輯之倣古制而修之者才不
借於異代美罔專於前人恭惟僉執事慕效尊師尙德之心靡
不極力殫誠物議多之惟幹事賢勞者卽濯纓金先生十代
再坤甫也夫何經緯勿密了不煩民而攻事又何䋲墨不頗靠
不閱月而訖功昔在成化乙巳夏蕫役之日先生重修學記之
文炳若丹靑而燎然在後人心目則事簡功倍豈有古令之異哉
觀昔日是校之美見令日是校之修則亦世趾美於不盛且偉哉使
章甫坐黌堂者皆存心如此則庶有補於國家風化之盛而實
有得於家庭尊崇之業也且前日豫瘼之件生三用二之節目亦
在完揭之中則此豈非公用之一大條理而匹休於今日之事也哉
方此重建之日奉閱舊蹟吾前代幹事兒郞之文昭載樑上心
窃感有矣懇以述先之意請記余不敢以不文辭畧陳其巴鼻
以記追感之心倂寓景慕之意云爾聖上卽位九年癸卯夏
六月上澣蔣龍漢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