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년 현풍향교(玄風鄕校) 향록(鄕錄)
1621년 현풍향교(玄風鄕校)에서 작성한 향록(鄕錄)이다. 현풍은 임진왜란시 일본군의 주요 진격로였기 때문에 현풍향교 역시 당시에 소실되었다가 왜란 이후에 중건되었다. 본 향록은 1610년에 작성된 《청금록(靑衿錄)》 이후 11년 만에 작성된 것으로 《청금록》에 기록되었던 5명의 성명(김현, 곽정, 곽창후, 곽두, 곽음)이 다시 《향록》에도 기록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아마 이들이 《향록》의 작성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여겨진다. 본 《향록》은 작성 이후 계속해서 추록(追錄)이 이루어졌는데, 1636년, 1639년, 1640년, 1640년, 1647년, 1651년, 1658년, 1659년, 1666년, 1667년, 1669년, 1673년, 1678년, 1679년, 1725년, 1733년, 1736년, 1752년, 1753년, 1754년, 1769년, 1791년, 1814년, 1829년, 1851년에 계속해서 명단의 추가가 이루어졌다. 최초로 작성된 1621년의 추록명단을 보면 총 59명의 성(姓)이 기록되어 있는데, 곽씨(郭氏)가 27명으로 가장 많고, 김씨(金氏)가 20명으로 그 다음을 차지하고 있으며, 엄씨(嚴氏)와 박씨(朴氏)가 각 5명, 정씨(鄭氏)와 채씨(蔡氏)가 각 1명씩 기록되어 있다. 동년 8월의 추록자(追錄者) 명단은 6명으로 곽씨, 김씨, 박씨가 각 2명씩이다. 이처럼 현풍지역의 추록명단을 살펴보면, 현풍을 세거지(世居地)로 하는 곽씨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곽씨는 이후 계속된 추록에서도 늘 수위(首位)를 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1621년 이후의 첫 번째 추록인 1636년의 명단을 보면, 가장 많은 인원으로 곽씨(郭氏) 4명과 김씨(金氏) 3명이 기록되어 있고, 기타 엄(嚴)․라(羅)․배(裵)씨가 각 1명씩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전체 추록자 명단을 살펴 보면, 가장 많은 숫자가 입록되어 있는 곽씨와 김씨 이외에도, 엄씨(嚴氏)․박씨(朴氏)․배씨(裵氏)․나씨(羅氏)․채씨(蔡氏)․성씨(成氏)․정씨(鄭氏) 등의 기타 성씨가 1~2명씩 추록되어 나타나고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