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영양향교(英陽鄕校) 통고문(通告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4+KSM-XF.1909.4776-20120630.Y1211309917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고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고
작성주체 영양 영양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향교길 22-16
작성시기 1909
형태사항 크기: 19 X 16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영양향교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향교길 22-16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양 영양향교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향교길 22-16

안내정보

영양향교 통고문
본 자료는 1909영양 영양향교에서 고자(庫子=고지기)에게 보낸 통고문으로 빚 錢 74兩 5戔 1分을 아직 알리지 않은 고로 섬촌원의 밭 8두락지를 잠시 팔려하나 향중의 뜻을 살펴보니 하나 같지 않음으로 전에 향교에서 매입한 토지에 대한 문서를 환수하여 보낼 것이며, 밭을 팔았던 집의 문기를 찾아 가져오라 하고 있다.
위의 문서를 보면 당시 영양 영양향교가 상당량의 빚을 지고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 토지를 매매하고자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자료만으로 당시 토지를 팔고자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서가 작성된 1909년 당시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이 신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기로 성균관을 비롯한 향교에 대한 지원은 거의 단절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1907년 향교의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졌고 1908년에는 학무국내 하위부서에 향교업무를 다른 부대업무로 처리하였다. 이로 인해 아무런 지원없이 성균관 및 향교는 무관심과 방치속에 그 기능을 점차 잃어가게 되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차 열악한 상황에 처해졌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 영양 영양향교는 향교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교전의 방매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향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저하는 이 시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 문서는 위와 같은 당시 영양 영양향교의 열악한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慶北鄕校資料集成』(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박소희,이수환

상세정보

1909英陽鄕校에서 庫子(=고지기)에게 보낸 통고문
[내용 및 특징]
본 자료는 1909영양 영양향교에서 庫子(고지기)에게 보낸 통고문이다. 통고문에서 영양 영양향교는 빚 錢 74兩 5戔 1分을 아직 알리지 않은 고로 剡村員의 田 8두락지를 잠시 팔려하나 鄕議를 살펴보니 하나 같지 않음으로 전에 향교에서 매입한 토지에 대한 문서를 환수하여 보낼 것이며, 밭을 팔았던 집의 문기를 찾아 가져오라 하고 있다.
먼저 문서에서 교중이 상당량의 빚을 지고 있으며 토지의 매매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의 자료에서는 토지를 방매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연유를 알 수는 없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09년 당시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향교에 대한 지원이 거의 단절된 상황이었다. 이미 1907년 향교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어졌으며, 1908년에는 학무국내 하위부서에 향교업무를 다른 부대업무로 처리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성균관 및 향교는 무관심과 방치속에 점차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차 열악한 상황에 처해졌으며 이러한 상황 하에 영양 영양향교는 향교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교전의 방매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향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저하는 이 시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자료적 가치]
본 자료가 작성된 당시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이 점차 신식교육으로 대체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종래의 성균관 및 향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중단되고 이에 따라 향교는 점차 열악한 상황에 처해가고 있었다. 당연히 경제적 어려움 또한 가중되었다. 영양 영양향교 또한 당시의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점차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의 해결을 위해 校田을 방매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문서는 당시의 영양 영양향교의 재정정 상황을 간접적이나 알 수 있게 해준다.
『慶北鄕校資料集成』(3),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編, 경상북도, 1991.
『朝鮮後期 鄕校硏究』, 尹熙勉, 일조각, 1989.
박소희,유기선

이미지

원문 텍스트

영양향교(英陽鄕校) 통고문(通告文)
庫子處
以債錢七十四兩五錢一分未報之故
剡村員田八斗落只姑賣矣
見今鄕議不一故前賣文記
還收以此告于買田宅文記覓
來爲可
戊申八月初七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