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9년 하양향교(河陽鄕校) 첩보(牒報)
1729년 하양향교의 유생들이 당시 경상감사였던 박문수(朴文秀)에게 올린 첩보(牒報)로, 환성사(環城寺)의 속사(屬寺)문제 때문에 결국 정거(停擧 : 과거시험 볼 자격을 정지시킴)의 사태까지 빚었던 하양유생들의 상황을 재고(再考)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첩보이다. 1724 4월 하양의 유생 박서봉의 상서(上書)로 촉발된 환성사의 귀속문제는 결국 당시의 경상감사였던 김동필(金東弼)의 체직을 불러왔고,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하양의 유생 박서봉(朴瑞鳳)과 영천의 유생 양명화(楊命和)가 유배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1728년 경상도지역의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던 박문수(朴文秀)는 암행어사로 활동하면서 각지의 사정을 파악하였다. 그는 같은 해에 암행어사 임무가 끝나고 자신이 경상감사로 임명되자, 하양과 영천의 많은 유생이 많이 관련되어 있는 환성사 문제를 복잡한 문제로 인식하여, 환성사 등의 위전(位田)을 해당 관청에 귀속시키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새로운 결정은 결국 환성사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 새로운 불씨를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