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 하양향교(河陽鄕校) 첩보(牒報)
1724년 9월 7일,하양향교에서 영천군수(永川郡守)에게 환성사(環城寺)의 하양향교귀속을 청원하는 첩보(牒報)이다. 1724년 4월 하양향교유생 박서봉(朴瑞鳳)의 상서(上書)에서 시작된 환성사의 귀속문제는 처음에는 하양향교에 유리하게 전개되다가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유생들이 용인(龍仁)의 충열서원(忠烈書院) 및 성균관(成均館)의 유생들을 동원하여 여론을 환기하자, 급기야 9월에 이르러 하양향교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던 경상감사김동필(金東弼)이 교체되는 사태로 발전한다. 이처럼 상황이 다시하양향교에 불리하게 전개되자, 같은 향교의 유생들이 이번에는 영천군수(永川郡守)에게 환성사의 환추(還推)를 청원하는 첩보(牒報)를 올리게 되었다. 본 첩보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여전히 환성사의 하양향교귀속을 주장하면서도 예전과 달리 임고서원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삼가하면서, 다만 임고서원의 일부 유생이 이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두번째 부분에서는임고서원에서 주장하는환성사가 임고서원 속사(屬寺)의 증거라는 《포은집》의 부분적 구절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므로, 여전히 직접적 증거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환성사를 임고서원의 소속으로 하는 것은 의리(義理)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환성사의 소속문제는 결국 뜨거운 쟁점이 되어 영천과 하양의 지방관이 모두 처리하기를 기피하는 어려운 문제가 되고 말았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