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慶尙北道義城郡에 소재한 比安鄕校에서 활동하던 유림들이 유풍을 계승하기 위해 결성한 儒稧의 序文과 규약, 그리고 계원의 명단인 座目을 엮어 놓은 자료
[내용 및 특징]
일제강점기 慶尙北道義城郡의 比安鄕校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儒林들이 결성한 儒稧 관련 자료이다. 본 자료는 다른 향교 자료와 더불어 비안향교에 보관되어 왔으나 지금은 유실된 상태이다. 비안향교는 조신시대까지 慶尙道比安縣에 소재한 향교였다. 그러나 비안군이 1914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義城郡과 통합됨에 따라, 자연스레 비안향교도 경상북도의성군에 소재하게 된 것이다. 지방제도 개편에 따른 비안군의 폐합으로 비안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림의 활동도 위축되게 되었다. 이에 1944년 舊 비안군 지역의 유림들이 儒風을 진작시키고 향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유학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儒稧를 결성한 것이다. 본 자료는 이 유계의 결성경위와 의의를 언급한 序文, 제 규정인 節目, 계원의 명단인 座目이 차례대로 수록되어 있다.
서문은 「儒稧序」라는 제목으로 엮여져 있는데, 찬자의 성명은 명기되어 있지 않다. 서문에서는 먼저 어려운 위기가 있을 때 人情이 합할 수가 있는데, 이는 같은 배를 탄 吳나라와 越나라가 한 집안처럼 함께 하는 것과 같으니 하물며 鄕人과 儒林이 다를 바가 있겠냐고 하였다. 비안군과 의성군이 合郡된 후 廢郡된 비안군의 文廟에 대하여 撤享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무리 가운데서는 이에 동조하는 이도 있었고 관리들의 압박도 있었으며 심지어 문묘 건물에 대한 매각의 이야기도 나왔기 때문에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지역의 2~3인이 ‘守禮廢羊’의 뜻을 보이며 문묘 건물의 매각에 반발하였으며, 부득이한 매각을 대비하여 私奉을 위한 자금을 모아 契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때 마침 文翁이라는 자가 군에 와서 임시로 復享을 했기에, 계의 결성은 잠시 미루어졌다. 하지만 文翁이 군을 떠난 후 道가 어그러지게 되었으니, 옛적 孔子가 司馬桓魋에게 봉변을 당하고 陳나라와 蔡나라에서 고난을 겪었던 모습과 비슷하다 하였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기에 유림들이 모여 의논을 하였고, 契를 더욱 확대하여 10,000圓에 달하는 자금을 모았으니, 이를 바탕으로 春秋享禮의 비용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契의 꾸준한 유지를 바라며 서문을 마치고 있다.
유계의 규정인 節目은 8개조로 주로 자금의 운영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一, 本契의 명칭은 儒契라 한다. 一, 本契의 목적은 문묘의 유지이다. 一, 本契名金은 300圓 이상으로 한다. 一, 契金便利는 會中에서 유사를 택하여 담당케 한다. 一, 契會 일자는 음력 정월 15일, 7월 15일로 정하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는다. 一, 이자는 임시 회중으로 결정한다. 一, 만약 계에 들어오려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契會日에 협의한다. 一, 관리의 책임은 典校에게 일임한다.
좌목은 유계의 계원 명단이다. 성명과 출생 간지, 字, 그리고 본관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좌목에는 모두 34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입록은 1944년 7월부터 1947년까지 7회가 이루어졌다. 최초 좌목은 甲申(1944) 7월 18일 것으로 9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어 甲申 7월 29일에 8명, 乙酉(1945) 4월 15일 7명, 乙酉 10월 20일 5명, 乙酉 12월 30일 1명, 丁亥(1947) 윤2월 20일 3명, 丁亥 10월 20일 1명의 추록 기록이 나타난다. 입록자의 성관별 분포를 볼 때, 順天張氏, 密陽朴氏, 丹陽禹氏 각 3명, 迎日鄭氏, 比安朴氏, 安東金氏, 草溪卞氏 각 2명으로 나타나며, 淸風金氏, 善山金氏, 大興李氏, 淸州韓氏, 密陽孫氏, 慶州孫氏, 咸昌金氏, 信川康氏, 全州李氏, 慶州李氏, 金海金氏, 宣城金氏, 金寧金氏, 安東勸氏, 淸道金氏 각 1명씩 입록되어 있다. 과거 비안 지역에서 편찬된 읍지의 수록 주요 성씨가 고르게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료적 가치]
비안군은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의성군과 통합되었다. 행정구역이 통합됨으로써 종전 비안향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유림 조직에도 영향력을 끼쳤다. 비안향교의 문묘가 철향됨으로써 지역 유림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비안 지역의 유력한 유림들은 자금을 마련하여 향교에서의 享禮 지속을 위해 儒契를 결성하게 되었다. 즉, 본 자료는 행정구역의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변화가 극심하게 진행되던 20세기 중반 전통적인 유림 조직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比安邑誌』,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민음사,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