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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 신령향안(新寧鄕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4+KSM-WZ.1939.4723-20120630.Y124040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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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서-기타
내용분류: 정치/행정-조직/운영-향안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작성시기 1939
형태사항 크기: 27.6 X 19
판본: 석판본, 복사본
장정: 선장
수량: 2책
판식: 半郭 : 15.2×18.8㎝, 四周雙邊, 有界, 4行8字, 註雙行, 上黑魚尾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안내정보

1939년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 신령향안(新寧鄕案)
1939경상북도(慶尙北道)신녕(新寧) 지역에서 간행된 향안(鄕案)으로, 신녕은 조선말기까지 독립된 고을로 유지되다 1914년 인접한 영천(永川)과 통합된 고을이다. 조선시대 이래 신녕 지역에 정착해 있던 양반 가문 출신의 후손들이 과거 향안을 작성하던 전통을 계승하여 본 자료를 간행한 것이다. 향안은 조선시대 향촌자치기구인 유향소(留鄕所) 구성원의 명부였다. 따라서 향안에 수록되는 것은 지역 사회에서 양반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보장 받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본 자료는 크게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는 1939년 향안 간행을 주도했던 김병현(金秉鉉)의 서문(序文)과 1597년부터 1741년까지 모두 9편의 명부를 수록하였다. 모두 196명이 확인되는데, 가문별로 분류하면 안동권씨(安東權氏), 영양김씨(英陽金氏), 경주김씨(慶州金氏), 창녕조씨(昌寧曺氏), 창녕성씨(昌寧成氏), 양산이씨(陽山李氏), 경주이씨(慶州李氏), 청주양씨(淸州楊氏), 오천정씨(烏川鄭氏), 나주정씨(羅州丁氏)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조선중기 이후 신녕 지역의 여론을 주도하던 대표적인 양반 가문이었다. 한편, 하권에는 조선말기와 1901년, 1938년에 작성된 명부 3편과 권오환(權五煥)의 발문(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는 유향소가 폐지된 시기로 상권에 수록되어 있는 이전의 향안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신분제가 이미 철폐된 시점에서 과거 향안 작성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오래전부터 자리매김하고 있던 사회적 지위를 표방함과 동시에, 그 후손들끼리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향안을 작성하였고, 1939년 공식적으로 본 자료를 간행하였던 것이다.
이광우,이수환

상세정보

1939慶尙北道永川郡新寧에서 간행된 上,下 2冊의 鄕案으로 1597년부터 1938년까지 鄕員 508명의 성명을 수록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慶尙道新寧縣에서 작성되던 향안의 전통을 계승하여, 1939년 지역 유림들이 새롭게 간행한 향안이다. 신녕은 조선시대까지 독립된 고을로 존재하였지만, 1914년 인근 永川郡(지금의 慶尙北道永川市)과 통합되었다. 즉 본 신녕향안은 舊 신녕현 또는 신녕군에 거주하던 사족 가문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신녕에서의 향안은 16세기 이전부터 작성되었으며, 본 자료에는 1597년의 座目부터 수록되어 있다. 자료는 上,下 2冊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에는 1597년부터 1741년까지의 좌목을 수록하였고, 하권에는 조선말기~1938년의 좌목을 수록하여 그 성격이 상이하다.
상권의 서두에는 己卯(1939) 5월 하순에 작성된 「新寧鄕案序」가 수록되어 있다. 작성자는 본관이 英陽金秉鉉으로, 하권의 ‘舊案’ 좌목에서 확인되는 인물이다. 그의 서문에는 1939년 신녕향안이 간행되는 과정과 의의가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먼저 본 향안이 藍田呂氏鄕約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제도와 절목이 상세하다고 하였다. 향약의 규정을 유향소의 운영 규정인 鄕規와 접목시키고, 향안을 작성해 나가던 것은 조선중기 이래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 향안은 시간이 흘러 옛 종이에 좀이 먹어 훼손되었기에, 鄕父老들이 여러 차례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번 安庸洛이 고을의 邑誌를 완성하는 모임 때 향안을 수정하자고 주장을 하였으나,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근래 見山 權丈께서 자신에게 향안 修潤을 권하였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옛 향안을 정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정비된 향안은 성명을 먼저 기재한 뒤, 이어 貫鄕과 號, 그리고 누구의 자손인지를 기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만약 그것이 미상인 자가 있으면 春秋의 모임 때 의심되는 것을 물어 보완하니 統緖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김병현의 주도로 새롭게 정비된 향안은 權五煥의 건의로 곧 책자로 간행되었다. 옛 향안 정비 후, 達城寓舍에서 蓮花潭上을 찾아온 권오환이 향안을 살펴 본 후, 좀이 먹는 우려를 막기 위해 책자의 간행을 건의한 것이다. 이에 김병현龜川書院에서 여러 인사들과 논의 한 뒤, 舊案 중 ‘後承現存者’와 辛丑(1901)과 戊寅(1938)에 追入된 자를 수록하는 본 향안을 간행하게 되었다. 이중 ‘後承現存者’는 1597년부터 1741년까지 향안에 입록되어 있던 인사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초반 과거 향안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舊 신녕현 또는 신녕군 사족들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문 말미에는 이 향안이 간행됨으로써 그 자손들이 선조를 奉閱할 수 있게 잘 보존되기를 당부함과 동시에 책자의 간행이 見山翁의 둘째인 권오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찬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서문 다음부터 좌목이 수록되어 있다. 상권의 좌목은 모두 9편이다. 좌목에는 입록자의 성명이 먼저 기입되어 있으며, 이어 字, 號, 本貫, 出生 干支, 官職이나 職役, 그리고 누구의 후손인지를 세주로 기입하였다. 본관의 경우 해당 성관이나 문중 중에 가장 앞에 등장하는 인물만 기입하였고, 나머지는 그 사람과의 관계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계보가 명확하지 않아 본관과 기타 이력이 뚜렷하지 않은 자는 알 수 있는 것만 기재하였다. 1939년 본 향안 간행의 주된 목적이 과거 향안 입록자와의 계보를 뚜렷이 함으로써 과거의 명분을 계승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 할 수 있다.
가장 앞선 좌목은 萬曆 25년(1597) 丁酉의 것으로 임란 도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전란 도중 향촌 질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향안이 작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24명을 수록하였는데, 성관별로는 慶州金氏 5명, 昌寧曺氏, 安東權氏 각 3명, 烏川鄭氏, 淸州楊氏 각 2명, 英陽金氏, 羅州丁氏, 順興安氏, 昌寧成氏, 陽山李氏 각 1명 순이며, 본관 미상의 全氏 2명, 金氏와 李氏 각 1명이 있는데, 여기에는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펼쳤던 權應銖도 포함되어 있다. 안동권씨인 권응수의 후손들은 특히 신녕에서 번창하여 鄕論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안동권씨 가운데서도 권응수를 비롯한 그의 후손만 11명이 본 향안에서 확인됨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재지사족의 중앙 진출이 활발했던 16세기 후반의 좌목이라 중앙 관직 역임자 및 증직자도 다수 확인된다. 判書를 역임했던 권응수를 비롯하여 각종 文武班을 역임한 인물이 18명에 이른다. 관직 역임자의 향안 입록은 당대 향촌사회에서 향안의 권위가 높았음을 반증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좌목은 만력 28년(1600) 庚子의 것으로 15명을 수록하였다. 성관별로는 안동권씨 5명, 나주정씨 4명, 영양김씨 2명, 창녕조씨, 慶州李氏, 龜山朴氏 각 1명 순이며, 본관 미상의 전씨가 1명 있는데, 이 중 관직 역임자와 贈職者는 모두 11명이다. 세 번째 좌목은 만력 30년(1602) 壬寅의 것으로 17명을 수록하였다. 성관별로는 창녕조씨 6명, 안동권씨 3명, 청주양씨, 양산이씨, 경주김씨 각 2명, 영양김씨 1명 순이며, 관직 역임자는 10명이다. 네 번째 좌목은 만력 49년(1620) 庚申의 것으로 12명을 수록하였다. 성관별로는 창녕조씨 3명, 영양김씨. 청주양씨, 양산이씨 각 2명, 나주정씨, 창녕성씨, 경주김씨 각 1명 순이며, 관직 역임자는 모두 9명이다. 다섯 번째 좌목은 崇禎 14년(1641) 辛巳의 것으로 16명을 수록하였다. 성관별로는 창녕조씨 7명, 나주정씨 2명, 안동권씨, 구산박씨, 경주김씨 각 1명 순이며, 본관 미상의 이씨 2명과 安氏와 鄭氏 각 1명이 있는데, 이 중 관직 역임자는 모두 7명이다. 여섯 번째 좌목은 順治 4년(1647) 丁亥의 것으로 47명을 수록하였다. 성관별로는 창녕조씨 12명, 안동권씨 7명, 경주김씨 6명, 청주양씨, 나주정씨 각 4명, 양산이씨 3명, 영양김씨 2명, 창녕성씨, 구산박씨 각 1명 순이며, 본관 미상의 金氏 5명, 鄭氏 2명이 확인된다. 이중 관직을 역임하거나, 西班 遞兒職 및 특수 병종 역임자는 모두 14명으로, 이전에 비해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곱 번째 좌목은 康熙 18년(1659) 己未의 것으로 38명을 수록하였는데, 성관별로는 안동권씨 5명, 청주양씨, 나주정씨, 경주김씨, 창녕조씨 각 4명, 영양김씨 3명 창녕성씨 양산이씨 각 2명, 구산박씨 1명 순이며, 그리고 본관 미상의 김씨와 전씨 각 4명, 이씨 1명이 있다. 이중 관직이 기입된 인물은 나타나지 않으며, 서반 체아직과 품계를 기입한 인물 2명만 확인된다. 여덟 번째 좌목은 강희 60년(1721) 辛丑의 것으로 22명을 수록하였다. 성관별로는 안동권씨 6명, 창녕조씨 5명, 청주양씨 4명, 나주정씨 2명, 영양김씨, 양산이씨 각 1명 순이며, 본관 미상의 김씨 2명과 鄭氏 1명이 있다. 여기에도 관직 역임자는 없으며, 품계를 증직 받은 자 1명만 나타난다. 다만 權益衡에 대해서는 戊申(1728)난 때 신녕에서 창의한 경력을 기재해 놓았다. 마지막 아홉 번째 좌목은 乾隆 6년(1741) 辛酉의 것으로 단 5명만 입록되어 있다. 성관별로는 청주양씨 2명, 영양김씨, 창녕조씨, 구산박씨 각 1명 순이다.
이상 상권에 수록된 9편의 좌목을 종합하면 모두 196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성관이 확실히 기재되어 있는 인물들을 성관별로 나열하면 창녕조씨 42명, 안동권씨 30명, 청주양씨 20명, 경주김씨 19명, 나주정씨 18명, 영양김씨 13명, 양산이씨 11명, 창녕성씨 5명, 구산박씨 4명, 오천정씨 2명, 순흥안씨 1명, 경주이씨 1명 순이다. 그런데 조씨, 양씨, 성씨의 경우 입록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본관이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중기 이래 신녕 지역의 주요 가문을 살펴보았을 때, 창녕조씨, 청주양씨, 창녕성씨가 분명하다. 후대에 본 자료를 간행하면서 이력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본관 등을 기재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1939년 본 자료의 간행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성관 분포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좌목에 입록된 인물 중 관직, 서반 체아직을 역임하거나, 사족들을 위한 특수 병종에 소속된 인사, 그리고 훗날 증직된 인물은 모두 72명이다. 비중은 37%인데 이들 대부분이 17세기 전반까지의 좌목에서 확인되며, 17세기 후반부터는 그 비율이 두드러지게 낮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중반 이후 나타난 향안 권위의 약화와 관련되어 있다. 인조반정 이후 영남 지역 사족의 관로가 어려워지면서 관직 진출자의 입록 비율이 줄어든 것이다. 본 자료에는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문무 관직을 비롯해 별다른 이력을 기재하지 않은 인물들은 모두 幼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씨, 양씨, 성씨를 비롯하여 이력을 명확하게 기입하지 않은 인물이 다수 있다는 점, 직역의 기재 시기가 해당 인물이 향안에 입록되던 당시의 것이 아니라 최종 관직이나 사후 추증된 것을 기입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하권은 본 자료가 간행되던 1939년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시점에 작성되었던 좌목을 엮은 것으로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각각 舊案, 辛丑追案, 戊寅追案으로 구분해 놓았다. 입록자의 기재 방법은 각각의 성명 아래에 字와 출생 간지, 해당 인물의 顯祖, 현조로부터 당사자까지의 代數나 주요 입록 인물과의 가족관계, 거주지를 세주로 기재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舊案에 거론되고 있는 현조는 상권의 좌목에서 확인되는 인물들이다. 이는 근세 이후 신녕에 거주하는 상권 좌목의 후손들이 그 계보를 명확히 하고, 전통적인 사족임을 표방하고자 다시 향안을 만들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권의 첫 좌목인 舊案은 辛丑追案이 만들어진 1901년과 그리 멀지 않은 19세기 후반에 작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1901년 辛丑追案이 만들어질 때 이미 향안에 입록되어 있던 인사들을 기재한 것이며, 여기에는 본 자료의 서문을 작성한 김병현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231명이 입록되어 있는데, 이들을 성관별로 분류하면 안동권씨 51명, 영양김씨 31명, 경주김씨 27명, 오천정씨 26명, 나주정씨 24명, 창녕성씨 19명, 경주이씨 16명, 순흥안씨 11명, 양산이씨 11명, 창녕조씨 8명, 구산박씨 7명 순이다. 모두가 상권의 좌목에서 확인되는 인물들의 후손이다. 특히 순흥안씨, 경주이씨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음이 확인되나, 청주양씨는 단 1명도 입록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舊案과 그 이후의 追案을 작성하는데 있어, 양씨 가문이 간여하지 않았거나 배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901년에 만들어진 辛丑追案에는 42명을 수록하였는데, 성관별로는 나주정씨 10명, 仁同張氏 9명, 坡平尹氏 5명, 星州都氏 5명, 密陽朴氏 4명, 金寧金氏 4명, 驪州李氏 3명, 구산박씨 1명 순이다. 그런데 입록자의 성관을 살펴보면 상권의 좌목과 舊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 나주정씨와 구산박씨는 상권에서 확인되나 나머지 성관은 辛丑追案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들이다. 아울러 이 성씨들은 조선후기와 일제시대 초기에 작성되었던 신녕의 각종 邑誌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성씨들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조선말기에 신녕의 새로운 사족 가문으로 성장한 성관들을 수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권의 마지막 좌목인 1938년의 戊寅追案에는 39명을 수록하였다. 이것은 본 자료가 간행되기 한 해전에 작성된 좌목이다. 이 좌목에 입록된 성관은 晉州河氏 12명, 咸安趙氏 6명, 경주김씨 5명, 밀양박씨 4명, 醴泉林氏 4명, 南平文氏 3명, 濟州高氏 2명, 여주이씨 1명, 月城李氏 1명, 平海黃氏 1명 순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도 새로운 성관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성격은 辛丑追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좌목 다음에는 己卯(1939) 榴花節 下澣에 작성된 권오환의 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앞선 김병현의 서문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권오환1939년 이 책자의 간행을 건의한 인물이다. 그의 발문에는 본 책자의 간행 의의와 과정을 다시 한 번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발문에서는 향약이 『小學』에 있는 藍田呂氏鄕約에서 발췌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己卯群賢에 의해 그것이 널리 시행되었으며, 이어 退溪가 損益을 가하니 이는 모두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한 의도에서 실시된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우리 신녕에서도 이를 본 받아 향안이라는 것이 만들어져 宣祖 丁酉(1597)부터 英考 辛酉(1741)까지 그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했는데, 이때의 좌목이 바로 본 자료의 上卷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향안 작성은 1741년 이후 중단되었다며 아쉬워하고 있는데, 중단된 까닭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런 가운데 지난 辛丑(1901) 鄕父老들이 새롭게 舊約을 續修하려고 하였으나, 각 집안에서 알고 있는 것들이 ‘詳略不同 取捨各異’ 하기에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한탄하고 있다. 1741년 이후 오랫동안 향안 작성이 중단되다 조선말기에 그 전통을 계승하여 향안을 작성하였고, 그것을 다시 續修하려고 했으나 각 집안마다 알고 있는 그 내용이 틀려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이다. 續修를 논의한 자들은 분명 상권 좌목에 입록된 인물들의 후손으로 여겨지며, 1901년의 續修 과정에서 가문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에서야 좌목의 續修가 완료되니, 그것이 하권에 수록된 舊案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렵게 새로운 향안이 만들어졌기에, 공론을 거쳐 본 자료가 공식적으로 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族叔 權寧滿과 戚丈 김병현의 노고가 있었으니, 향후 이 향안으로 말미암아 향약의 교화가 이루어짐을 바라면서 발문을 마치고 있다.
자료 말미에는 1939년 본 자료 간행당시의 任事錄을 수록하였다. 都都監 幼學 金奎煥을 비롯하여 35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성관별로는 안동권씨 10명, 나주정씨 5명, 창녕조씨, 창녕성씨 4명, 경주김씨, 3명, 오천정씨, 순흥안씨, 영양김씨, 경주이씨 각 2명, 양산이씨 1명 순이다. 이들은 모두 상권 좌목에 수록된 인물들의 후손들이나, 상권에서 확인되는 청주양씨와 전씨, 그리고 몇몇 입록자의 후손과는 연관이 없다. 하권에 수록된 舊案 이하의 좌목에 이들 성씨가 배제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이래 향안 작성의 추이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1939년 간행된 본 자료의 상권에는 1597년부터 1741년까지의 좌목 9편이 수록되어 있다. 16세기 후반부터 시작하여 18세기 중반까지의 향안 작성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16세기 중반 이래 각 고을의 재지사족들은 향촌자치기구인 유향소 운영을 주도함과 동시에, 향안을 배타적으로 작성해 나감으로써 재지적 기반을 확고히 해 나갔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이후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신흥세력의 성장, 중앙 권력의 閥閱化에 따른 관로 진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종전과 같은 재지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질서는 흔들리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향안 작성을 둘러싼 각종 갈등이 야기되었다. 본 자료의 발문에는 1741년 이후 향안 작성이 중단 된 연유를 모르겠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폐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상권의 좌목에 수록된 성관들은 조선중기 이래 신녕 지역 향론을 주도하였던 재지사족들의 족세를 반영한 것이다. 신녕의 토성으로는 李, 朴, 丁, 史氏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嶠南誌』에는 주요 성씨로 權, 曺, 丁, 楊, 金, 李, 鄭, 安, 成氏가 있다고 하였다. 토성 대신에 타 고을 출신의 성관이 이주해 와서 향안 작성을 주도하는 재지사족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상권의 좌목에서 다수가 확인되는 안동권씨, 창녕조씨, 나주정씨, 경주김씨, 경주이씨, 영양김씨, 창녕성씨, 순흥안씨, 오천정씨 등의 가문이 여기에 해당된다.
한편, 하권의 좌목은 상권의 그것과 성격을 달리한다. 하권에 수록된 좌목 3편 중 舊案은 상권 좌목에 수록된 인사들의 후손들을 기재한 것이다. 이때의 향안 입록은 이전과 달리 유향소 운영과는 무관하였다. 1741년 이후 중단되었던 향안 작성의 전통을 계승하여, 지역 사회에서의 지위를 확인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舊案에 수록된 인물들은 모두 이전 향안 입록자의 후손들이며,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세주로 이전 향안 입록자와의 관계와 계보까지 기재해 놓았다. 그리고 상권에 수록되어 있는 청주양씨가 하권에는 단 한 명도 기재되지 않은 것은 20세기 초반 향안을 續修할 때 간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반면 1901년과 1938년 追案에는 조선시대 좌목과 邑誌에서 주요 성씨로 확인되지 않는 가문의 인물들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조선후기 이후 새롭게 신녕 지역에 이주한 가문으로 생각된다. 신분제 붕괴 후 지역 사회의 주요 가문들 간에 결속력 강화와 향안 작성의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좌목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嶠南誌』,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민음사, 1990
申正熙,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1
이광우,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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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39년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천군(永川郡) 신령향안(新寧鄕案)
新寧鄕案序
夫案徵也盖因藍田
氏鄕約而起而所以
重其事而徵其後也
知其制度節目之詳
然意者有在於斯乎
傳之久故守之重而
未免爲蠹食古紙鄕
父老爲是慨歎者累
矣往者安君庸洛
邑誌落成之會恢修
正之論而事遂寢焉
見山權丈畀余以修
潤之責爲後日計終
不敢辭謹按舊本刪
之以一名疊出增之
以貫鄕表號又書其
某爲某之子某爲某
之孫而或有未詳者
則置之以付春秋闕
疑之義於是乎各有
統緖足爲觀感因奉
置塵案一日權君五
達城寓舍訪余
於蓮花潭上而索其
案曰此而不刊則又
有蠹患盍及時圖之
余樂而從之遂設會
龜院因衆論而附
舊案中後承現存者
又附辛丑戊寅追案
之人規模井井案目
具完噫古今者時也
不朽者案也謹守者
人也安知異日各家
子孫奉閱是案者不
後於今日敬慕者耶
請序而印布者誰即
權君權君乃見山翁
之第二肖也
己卯五月下旬
金秉鉉謹序
新寧鄕案錄
萬曆二十五年丁酉
鄭景禧【字善源號雪川烏川
】 【次諄孫官禦侮將軍】
金鶴齡【字雲路慶州人農隱緘】
【后】
鄭彥琛【字仲玉烏川察訪次誠】
【孫參奉
金世堅【字確夫英陽監司處利】
【子官部將
丁萬年【字子經羅州觀察使夢】
【吉后官引儀
全夢斗【字天賚】
安汝諧【字和叔順興人鶴松齋遇坤】
【曾孫官僉樞
李殷【字殷卿】
金天福【字大綏生癸未號求庵
人農隱緘后】
全夢龍【字慶雲官僉知
李英蕃【字茂叔陽山人忠簡公承】
【須曾孫官僉知
金鳳齡【字德路慶州人農隱緘】
【后】
成勲【字忠卿生乙未號義軒昌】
【寧人參議德龍子官訓鍊
副正
權應銖【字仲平生丙午號白雲齋】
安東人持平挒玄孫官】
判書贈贊成封花山】
【君諡忠毅公】
金瀷【字彥混生辛巳號松窩
人茅亭應時子贈參】
【判】
曺景和【字諧仲生戊戌昌寧人林】
【塘繼祖玄孫官察訪
曺景順【字柔仲生壬寅察訪景和】
【弟贈軍資監正
曺景溫【字汝慄號林溪林塘繼祖】
【玄孫贈參判
楊泗【字浩源】
楊洙【字道源】
金荆瑞【字士應慶州人農隱緘】
【后官訓鍊主簿
金應錄【字宜叟官軍資奉事
權應銓【字子平生戊申號桐湖忠】
【毅公應銖弟官僉使
權應心【字仲星生甲寅號日省持】
【平挒玄孫官虞侯贈】
兵參
萬曆二十八年庚子
丁萬瑞【字天瑞羅州觀察使夢】
【吉后官奉事
曺景弘【字汝恢】
全三樂【字寡悔】
權應錘【字汝平生丁未號智山忠】
【毅公應銖從弟官僉正
朴璜【字大振龜山人龜山君碩】
【輔后官訓鍊奉事
金夢龜【字汝休生乙巳號華棲
世堅子參奉
權德時【字子中】
丁應伯【字景淸號夢軒引儀萬年】
【子官僉知
權應箕【字生參判應心】
【弟官僉正
權德成【字成卿官訓正
金夢黿【字汝徵華棲夢龜弟官

丁應叔【字景儉號敬窩僉知應伯】
【弟】
權應平【字仲叟生丁巳號東巖忠毅公應銖弟官訓正贈】
參判
丁應琚【字京美生丙辰號莪溪
夢祥后官禁府都事
李蘊秀【字汝實號稼隱慶州人司】
【果玉三后官訓鍊院正
萬曆三十年壬寅
李得祿【字善綏生丁卯僉知英蕃】
【子官中樞
金得禹【字鼎而生辛亥號鶴巖天】
【福子官嘉善】
李夢得【字景說資憲得祿弟官判】
【官】
曺舳【字公濟官軍資奉事
權致廉【字介叔官訓鍊院正
曺艤【字弘濟】
權蓂【字祥甫僉使應銓子官訓】
【鍊奉事】
金成翕【字伯和生華棲夢龜】
【子】
金日柱【字汝擎生丁卯參判瀷】
【子】
曺以仁【字愛甫官訓導
楊日新【字滎伯官佐郞】
曺舶【字若濟生辛巳察訪景和】
【子】
曺航【字宜濟生癸未號蘭塢林】
【溪景溫子官僉知
楊復新【字榮仲】
權遘【字亨叔生己丑忠毅公應】
【銖子參奉
曺士任【字任重】
楊又新【字滎叔】
萬曆四十九年庚申
成績【字禹卿生壬子號慕窩
鍊副正勲弟參奉
丁文衒【字士老參奉萬瑞子官
鍊奉事
金知翕【字仲和生奉事夢黿】
【子官訓導
曺舫【字以濟】
曺艎【字能濟林溪景溫子官

曺以立【字卓甫】
楊克新【字滎叟官訓導
楊乃新【字滎彥】
李時郁【字文伯號蒼庵判官得祿】
【子官僉正
金澍【字汝叔生甲申號稼庵嘉】
【善得禹子官戶曹佐郞
金時翕【字爾和生戊寅號守岡華】
【棲夢龜子官察訪
李暘郁【字文甫生庚子號復齋僉】
【正時郁弟官僉樞
崇禎十四年辛巳
朴夢呂【字公望奉事璜孫官
鍊奉事
丁希聖【字克念僉知應伯子官

鄭于蕃【字衛叔】
安應仁【字大滎】
曺艧【字信濟】
曺士儆【字敬重官察訪
權胤【字繼甫生號閒叟智】
【山應錘子】
曺士侃【字直甫官僉知
李珏【字潤汝官察訪
金湜【字子俶生丙戌號穡庵嘉】
【善得禹子官中樞
李琢【字汝溫】
曺士俊【字秀甫生辛亥航子官】
察訪
丁遵聖【字克敬】
曺士倜【字毅甫】
曺士佶【字美甫】
曺永夏【字君述】
順治四年丁亥
權山重【字仁甫生丙辰號華齋
遘子官大護軍
金兌吉【字德潤僉知鶴齡孫官

曺汝忠【字翼哉生癸丑{舟+日}子官】
察訪
權山峍【字君仰】
楊時沃
鄭宗誠
金鐧【字汝堅號蒙泉訓導荆瑞】
【子官訓導
金尙思訓導知翕子官察訪
金潝
楊以元
丁好說【字汝弼察訪希聖子】
曺汝信【字直哉生丁巳察訪汝忠】
【弟】
曺士儞【字愼甫】
鄭宗詻
李東碩【字而壯生壬辰僉樞暘郁】
【子】
楊以亨
權山峻【字極甫生壬戌大護軍山】
【重弟官副護軍
丁以植【字會輔生丙寅羅州
夢祥后】
曺用夏【字和述官司果】
成濬【字淸遠生甲子參奉績】
【孫】
金尙健【字生察訪時翕】
【子】
曺振夏【字公述】
李東彥【字而顯生丙寅東碩弟】
金南【一字一卿嘉善得禹孫】
權山厚【字載甫生丁卯護軍山峻弟】
【忠義衛】
權尙行【字義瞻生丙辰號松川】
【胤子忠翊衛】
丁喜說【字子弼應叔孫】
金兌義【字而肅訓導鐧子官察】
【訪】
丁惟聖【字德甫生甲寅參奉萬瑞】
【孫】
金南重【字雲卿生戊辰嘉善得禹】
【子】
曺光夏【字善承生壬午昌夏弟】
朴振韓奉事夢呂孫】
權山甫【字相周生己巳忠義衛山】
【厚弟忠義衛】
權尙律【字景瞻生戊午號玩湖】
【忠翊衛尙行弟官護軍】
曺是周【字公伯】
金南爀【字赫卿生庚午號南窻嘉】
【善得禹孫】
曺漢弼【字賚予】
金宗孝【字行初】
李東元【字而幹時郁子官察訪
曺士倬【字卓甫官察訪
曺宋弼【字錫予】
楊時韑
金珏【字晦伯】
曺士傑【字傑甫】
金起溶【字士澄】
曺慶夏【字善伯】
金璟【字晦仲】
康熙十八年己未
權斗【衡字子仰生己卯副護軍山】
【峻子】
楊以【沂】
丁遇說【好說弟】
金玭【字晦叔生戊辰日柱孫】
丁以均【字平仲生己巳羅州人參】
【判夢祥后】
權機
成潤【字天一生庚午號普南】
【濬弟】
成爾松【字汝直生辛未號泥庵
勲曾孫】
權震衡【字子長生癸未華齋山重】
【子官副護軍
李慶獻【字子獻】
金南寶【字寶卿嘉善得禹孫】
全以恬
朴起韓【字汝興奉事夢呂孫通政】
曺就夏【字仲述】
曺尙周
金㺾
金璡【字晦卿生甲戌日柱孫】
李東韺【字而輝生丙寅東碩弟】
曺昌夏【字繼善士俊子】
全亨吉
權濟衡【字子安生甲午忠義衛山】
【甫子】
金聲遠
李成春【字天章生丁丑東元子】
全亨樂
金宗柱【字生訓導知翕】
【孫】
楊以湜
曺興夏【字善述】
金鳴遠
金廈柱【字國擎察訪時翕孫】
楊以浹
丁彥衡【字仲魯生辛巳號夢亭惟】
【聖孫】
權審衡【字正卿生乙未忠義衛山】
【厚子】
全亨業
金南煜【字郁卿嘉善得禹孫】
金聲始
金碩柱【字察訪尙思子】
楊時宜
丁彥相【字仲瞻生癸未彥衡弟】
康熙六十年辛丑
權復衡【字子休生戊戌號義川官】
副護軍濟衡弟】
金元柱【字丕擎華樓夢龜曾孫】
鄭啓周
楊以灝
楊以汶
曺世文
曺世彬【字平伯生乙酉察訪汝忠】
【子】
權益衡【字子謙生辛丑義川復衡】
【弟戊申義兵將】
權行九
曺基夏
權聖一【字生己巳參判應心】
【玄孫】
金達遠
曺禎夏
楊萬枝
李廷規【字元方生丙寅東彥子】
曺漢一
權成九
權泰一【字生己酉號春暎僉】
【正應箕玄孫贈將仕郞】
楊以演
丁敏道【字士行號南溪喜說子】
金聲彥
丁時格【字晦伯羅州人忠靖公應】
【斗后】
乾隆六年辛酉
楊時璨
朴啓韓【字汝光奉事夢呂孫】
金宇柱【字生訓導知翕】
【孫】
曺以夏
楊以浚
新寧鄕案上
新寧鄕案下
戊寅六月日
權錫儀【字永仲生甲寅義川復衡】
【六世孫居甲峴
成樂明【字致道生戊午爾松六世】
【孫居大川
安琥鍊【字聲振生己未僉樞汝諧十一】
【世孫居梧洞
成樂皥【字舜瑞生庚申濬七世】
【孫居花洞
金奎煥【字明國生壬戌南赫八世】
【孫居生川
權周洛【字文吾生壬戌義川復衡】
【七世孫居甲峴
鄭鎭洪【字禹範生壬戌參奉彥琛】
【十一世孫居陵溪
權寧植【字聖大生壬戌副護軍震】
【衡八世孫居甲峴
丁學庸【字完仲生壬戌以均七世】
【孫居孝里
丁元祖【字敬章生癸亥喜說六世】
【孫居槐亭
權羲洛【字元八生甲子義川復衡七世】
【孫居甲峴
金履祿【字德三生甲子玭六世】
【孫居漢川
權錫璊【字國都生乙丑聖一五世】
【孫居上楸
金宅鎬【字象三生乙丑日柱十世】
【孫居漢川
朴泰完【字希道生乙丑奉事璜】
【十二世孫居沙川
安龜鍊【字泳根生丁卯僉樞汝諧】
【十一世孫居梧洞
丁永夏【字錫祚生戊辰敏道七世】
【孫居槐亭
金在厚【字德可生戊辰察訪時翕】
【八世孫居蓮溪
金永鎬【字而可生戊辰察訪尙欽】
【九世孫居巖底
丁斗夏【字成七生戊辰以植八世】
【孫居孝里
金斗元【字英玉生戊辰荆瑞九世】
【孫居老方
金履潤【字建祚生戊辰玭六世】
【孫居漢川
鄭致千【字道仲生己巳參奉彥琛】
【十世孫居陵溪
權重沔【字周京生庚午濟衡六世】
【孫參奉甲峴
金正鉉【字深源生庚午奉事夢黿】
【十世孫居巖底
丁德翰【字華俊生庚午莪溪應琚】
【七世孫居孝里
金熙峻【字益三生庚午玭七世】
【孫居漢川
鄭鎭彥【字聖達生庚午雪川景禧】
【十一世孫居中里
朴泰根【字文俊生庚午奉事璜】
【十二世孫居沙川
丁基南【字極老生辛未敏道八世孫】
【居槐亭
李根在【字允賢生辛未僉樞暘郁】
【十世孫居沙川
安鶴鍊【字光吾生辛未僉樞汝諧】
【十一世孫居梧洞
成樂璡【字應瑞生辛未濬七世】
【孫居花洞
安希洛【字順協生辛未僉樞汝諧】
【十二世孫居梧洞
成基祐【字景三生辛未爾松八世】
【孫居大川
權廷洛【字正夫生壬申副護軍震】
【衡七世孫居甲峴
權寧圭【字三叟生壬申周洛從子】
【居甲峴
鄭鈺【字平執生壬申雪川景禧】
【十一世孫居生川
權銖洛【字聖守生壬申泰一六世】
【孫居巖基
金潤鉉【字成汝生癸酉察訪尙欽】
【八世孫居巖底
鄭鎭性【字時範生癸酉參奉彥琛】
【十一世孫居陵溪
權寧國【字士咸生甲戌副護軍震】
【衡八世孫居甲峴
成基煥【字明善生甲戌爾松八世】
【孫居大川
金宅漣【字聖珍生甲戌玭八世】
【孫居漢川
成基仁【字聖壽生乙亥爾松八世】
【孫居大川
丁相七【字德規生乙亥彥衡六世孫】
【居新興
權寧模【字而可生丙子義川復衡】
【八世孫居甲峴
曺秉健【字聖實生丙子僉知航九】
【世孫居賢臯
曺秉哲【字平中生丙子訓導艎】
【九世孫居月旨
權寧玟【字亨淑生丙子護軍尙律】
【九世孫居鶴旨
鄭淵奎【字成憲生丙子鎭洪從姪居陵溪
權景洛【字益彥生丁丑泰一六世孫居巖基
權泰熙【字敬文生戊寅廷洛從弟】
【居甲峴
李炳禹【字明五生戊寅東碩八世】
【孫居沙川
金鎭浩【字道吉生戊寅璡八世】
【孫居漢川
李炳克【字章玉生戊寅東碩八世】
【孫居沙川
李英在【字燦一生戊寅僉正時郁】
【十世孫居沙川
權相右【字乃文生戊寅護軍尙律】
【九世孫居鶴旨
丁基任【字重遠生己卯基南從弟】
【居槐亭
成鳳慶【字舜九生己卯濬八世】
【孫居花洞
李炳祚【字禹三生己卯東彥八世孫】
【居沙川
丁學夏【字益三生己卯敏道七世孫】
【居槐亭
丁學明【字敬瑞生己卯以均七世】
【孫居孝里
權常洛【字武汝生己卯參判應平】
【十世孫居中里
金錫濟【字九大生己卯日柱十一】
【世孫居漢川
李碩熙【字亨中生己卯稼隱蘊秀】
【九世孫居新基
成樂九【字舜則生庚辰潤七世】
【孫居花洞
權忠洛【字周甫生庚辰副護軍尙】
【律八世孫居鶴旨
權達植【字德浚生庚辰忠翊衛尙】
【行九世孫居鶴旨
金鎭根【字成彥生庚辰璡八世】
【孫居漢川
金大鉉【字羲瑞生辛巳察訪尙欽八世】
【孫居蓮溪
曺秉泰【字穆汝生辛巳秉健弟居】
賢皋
金在烋【字源可生辛巳在厚弟居】
蓮溪
曺永煥【字應三生辛巳察訪汝忠】
【九世孫居孝旨
丁學大【字敬珉生辛巳學明弟居】
孝里
成基升【字敬夫生辛巳爾松八世】
【孫居老方
安潤鍊【字文善生辛巳鶴鍊從弟】
【居梧洞
金潤鍾【字敬元生辛巳南赫十世】
【孫居生川
權壽洛【字五兼生辛巳參判應平】
【十世孫居中里
鄭鎭鎬【字周京生辛巳參奉彥琛】
【十一世孫居陵溪
權龜洛【字文善生辛巳參判應平】
【十世孫居中里
成大潤【字明久生壬午爾松八世】
【孫居大川
金贊鉉【字達元生壬午察訪尙欽】
【八世孫居蓮溪
金錫鉉【字沅五生壬午察訪時翕】
【九世孫居德山
金宅洪【字禹祥生壬午玭八世】
【孫居漢川
權熙洛【字文伯生壬午龜洛從弟】
【居中里
成滿慶【字泰若生癸未樂明從子】
【居大川
鄭鎭穆【字文可生癸未雪川景禧】
【十世孫居生川
丁基聖【字仁仲生癸未敏道八世】
【孫居槐亭
金壽鉉【字德五生癸未察訪時翕】
【九世孫居德山
金宅海【字允若生癸未玭八世】
【孫居漢川
權規洛【字允正生甲申濟衡七世】
【孫居甲峴
金準鉉【字應規生甲申察訪時翕】
【九世孫居蓮溪
權寧世【字可顯生甲申寧模從弟】
【居甲峴
鄭鎭坤【字賢慶生甲申參奉彥琛】
【十一世孫居陵溪
成基碩【字明玉生甲申基煥弟居】
大川
權寧台【字鳳汝生乙酉義川復衡】
【八世孫居甲峴
金鍾植【字應遠生乙酉察訪尙欽】
【十世孫居巖底
權寧出【字士善生乙酉副護軍尙】
【律九世孫居鶴旨
李炳浩【字伊玉生乙酉僉樞暘郁】
【九世孫居沙川
鄭鎭五【字應三生乙酉雪川景禧】
【十一世孫居梅山
權東洛【字文夏生乙酉熙洛從弟】
【居中里
曺善煥【字克秀生丙戌光夏八世】
【孫居孝旨
金昌鉉【字而大生丙戌察訪尙欽】
【八世孫居蓮溪
成基滎【字明進生丙戌爾松八世】
【孫居大川
金仲熙【字道源生丙戌玭七世】
【孫居漢川
安龍洛【字明彥生丙戌僉樞汝諧】
【十二世孫居梧洞
鄭淵徹【字君憲生丙戌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丁元旭【字賢普生丁亥以植九世】
【孫居孝里
金永璡【字成進生丁亥察訪尙欽】
【九世孫居蓮溪
丁基銑【字祥五生丁亥敏道八世】
【孫居槐亭
成基日【字明夫生丁亥基升弟居】
老方
丁基英【字致玉生丁亥敏道八世孫】
【居槐亭
丁在鳳【字進五生丁亥喜說七世】
【孫居槐亭
安軫洛【字明旭生丁亥僉樞汝諧】
【十二世孫居梧洞
金聲峻【字振玉生丁亥玭七世】
【孫居漢川
李秉鎬【字明叟生丁亥訓鍊院正
【蘊秀十一世孫居雲山
金齡澤【字庸執生戊子主簿荆瑞】
【十世孫居生川
權寧柱【字極初生己丑義川復衡】
【八世孫居甲峴
權寧雨【字舜祚生己丑護軍尙律】
【九世孫居鶴旨
權浩植【字國明生己丑壽洛從子】
【居中里
朴泰浩【字恭三生己丑泰根從弟】
【居沙川
權寧滿【字璟五生庚寅義川復衡】
【八世孫居甲峴
金秉鉉【字子庸生庚寅大鉉弟居】
蓮溪
曺喜元【字景重生庚寅汝信十世】
【孫居孝旨
金永燮【字光五生庚寅察訪尙欽】
【九世孫居蓮溪
李永在【字敬輔生庚寅成春八世】
【孫居沙川
鄭鎭河【字希瑞生庚寅雪川景禧】
【十一世孫居沙川
鄭淵鶴【字賢五生庚寅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金宅中【字允執生庚寅日柱十世】
【孫居漢川
丁在球【字文珂生庚寅彥衡八世】
【孫居新興
權寧達【字敬執生庚寅常洛從子】
【居中里
金明峻【字榮水生庚寅玭七世】
【孫居漢川
丁南鎭【字致三生庚寅昌寧時格】
【十世孫居蓮溪
李祁鎬【字周慶生庚寅秉鎬弟居】
雲山
金尙峻【字文可生辛卯玭七世】
【孫居漢川
權龍植【字元七生辛卯壽洛從子】
【居中里
成舜慶【字君弼生壬辰潤八世】
【孫居花洞
金相悳【字善卿生壬辰澍八世】
【孫居生川
丁基炳【字永淑惟聖八世孫居新興
丁學辰【字建中以植七世孫居孝里
權泰旭【字明震生壬辰護軍尙律】
【八世孫居鶴旨
權寧龍【字重執生壬辰參判應平】
【十一世孫居中里
金永珀【字武伯生癸巳察訪尙欽】
【九世孫居蓮溪
金滎煥【字明余生癸巳南赫八世】
【孫居生川
丁基壽【字聖必生癸巳敏道八世】
【孫居槐亭
安大洛【字周善生癸巳僉樞汝諧十二】
【世孫居梧洞
鄭鎭沃【字盛執生癸巳雪川景禧】
【十一世孫居生川
權重鍊【字吉叟生甲午參奉重沔】
【弟居甲峴
金武鉉【字子卿生甲午贊鉉弟居】
蓮溪
金受鉉【字應天生甲午察訪尙欽】
【八世孫居蓮溪
成基祜【字德賢生甲午爾松八世】
【孫居大川
金澤鉉【字允一生甲午察訪時翕】
【九世孫居蓮溪
安柄五【字行之生甲午僉樞汝諧十三】
【世孫居梧洞
權泰煥【字致檢生甲午尙行十世】
【孫居鶴旨
鄭淵斗【字賢八生乙未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權寧玉【字元五生乙未龍植弟居】
中里
李準鎬【字善甫生乙未訓鍊院正
【蘊秀十一世孫居雲山
李昶鎬【字晟初生乙未秉鎬從弟】
【居雲山
成和鏞【字華瑞生丙申基煥從弟】
【居大川
李鍾玉【字善夫生丙申成春九世】
【孫居沙川
權重均【字平叔生丙申參奉重沔】
【弟居甲峴
金庸澤【字文叔生丙申兌義八世】
【孫居生川
權寧守【字敬五生丁酉護軍尙律】
【九世孫居鶴旨
權五仁【字樂日生丁酉寧達從子】
【居中里
李在福【字德兼生丁酉訓鍊院正
【蘊秀十世孫居新基
金圭澤【字敬執生丁酉齡澤從弟】
【居生川
李在鈺【字賢寶生丁酉訓鍊院正
【蘊秀十世孫居雲山
權泰奭【字元卿生戊戌義川復衡】
【七世孫居甲峴
權寧燦【字子明生戊戌廷洛從姪】
【居甲峴
曺奎舜【字遇翊生戊戌察訪汝忠】
【十世孫居孝旨
鄭鎭慶【字君七生戊戌參奉彥琛】
【十一世孫居陵溪
金萬洙【字進五生戊戌鐧八世】
【孫居生川
安燾洛【字天可生戊戌僉樞汝諧】
【十二世孫居梧洞
丁忠夏【字德順生戊戌應叔十世】
【孫居槐亭
鄭相宇【字伯瑠生戊戌參奉彥琛】
【十三世孫居陵溪
李在浩【字根宣生戊戌訓鍊院正
【蘊秀十世孫居新基
李楨鎬【字成玉生戊戌訓鍊院正
【蘊秀十一世孫居雲山
成在鏞【字文可生己亥爾松九世】
【孫居大川
金廷佾【字基玉生己亥南赫九世】
【孫居生川
權祥洛【字士淑生己亥參判應平】
【十世孫居中里
權五義【字樂三生己亥五仁弟居】
中里
權五善【字德敏生庚子副護軍震】
【衡九世孫居甲峴
金永兌【字明善生庚子察訪時翕】
【十世孫居德山
安京洛【字舟汝生庚子僉樞汝諧】
【十二世孫居梧洞
金河濟【字瑛元生庚子日柱十一】
【世孫居漢川
鄭淵根【字舜五生庚子鎭洪從子】
【居陵溪
李學鎬【字聖悅生庚子訓鍊院正
【蘊秀十一世孫居雲山
丁奎錫【字明序生庚子昌寧時格】
【九世孫居蓮溪
朴璋植【字春慶生庚子奉事璜】
【十三世孫居沙川
鄭淵坤【字德汝生辛丑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金九鉉【字剛叟生壬寅昌鉉弟居】
蓮溪
李得埰【字祺垠生壬寅東碩九世】
【孫居沙川
李洵鎬【字明玉生壬寅秉鎬弟居】
雲山
朴文植【字應七生壬寅起韓七世】
【孫居沙川
金乃鉉【字應文生癸卯準鉉弟居】
蓮溪
李祺鎬【字浩文生甲辰訓鍊院正蘊秀十一世】
【孫居新基
李碩鎬【字大卿生甲辰訓鍊院正
【蘊秀十一世孫居雲山
權五相【字國弼生乙巳義川復衡】
【九世孫居甲峴
權五潤【字德弼生丙午寧國從子】
【居甲峴
金洛鉉【字鴻彥生丙午贊鉉弟居】
蓮溪
權五潤【字德弼生丙午寧國從子】
【居甲峴
金洛鉉【字鴻彥生丙午贊鉉弟居】
蓮溪
金斗鎬【字星七生丙午鐧八世】
【孫居生川
權五熙【字汝皥生丙午審衡九世】
【孫居甲峴
金世鉉【字子顯生丙午秉鉉弟居】
蓮溪
鄭鎭守【字周伯生丙午參奉彥琛】
【十一世孫居陵溪
鄭淵祐【字子珍生丙午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李源友【字德彥生丙午秉鎬從姪】
【居雲山
權寧珪【字禹成生丁未錫儀從孫】
【居甲峴
金龜鉉【字應瑞生丁未準鉉弟居】
蓮溪
金可鉉【字而瑞生丁未察訪尙欽】
【八世孫居蓮溪
李奭鎬【字周輔生丁未秉鎬從弟】
【居雲山
鄭淵勃【字德見生戊申淵根弟居】
陵溪
丁奎壽【字元一生戊申昌寧時格】
【九世孫居槐亭
金永哲【字明可生己酉察訪時翕】
【十世孫居蓮溪
鄭淵郁【字舜八生庚戌淵根弟居】
陵溪
權上洛【字養浩生辛亥聖一六世】
【孫居上楸
成南慶【字善余生辛亥爾松七世】
【孫居大川
鄭淵濶【字于景生壬子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鄭淵碩【字順益生壬子參奉彥琛】
【十二世孫居陵溪
金重植【字遠可生癸丑察訪尙欽】
【十世孫居巖底
曺奎鎭【字善明生甲寅世彬九世】
【孫居孝旨
朴敬植【字敬夫生甲寅奉事璜】
【十三世孫居沙川
朴仁植【字應五生甲寅根泰從弟】
【居沙川
鄭光熙【字而鮮生乙卯雪川景禧】
【十四世孫居沙川
金萬濟【字君慶生乙卯玭九世】
【孫居漢川
李仁在【字德中生丙辰東彥九世】
【孫居沙川
金永益【字子兼生丁巳察訪時翕】
【十世孫居蓮溪
權五湜【字景桓生戊午副護軍尙】
【律十世孫居鶴旨
金萬植【字錫祚生壬戌察訪尙欽】
【十世孫居蓮溪
以上依舊案
李震夏【字敬長生庚戌驪州人龜】
【山君璠后居星谷
尹相基【字進淑生己未坡平人縣】
【監仁后居德山
張斗永【字景瑞生庚申忠莊公思】
【儉后居新里
丁大秀【字華如生壬戌羅州人觀】
【察使夢吉后居大里
丁祺燮【字衡淑生丙寅羅州人進】
【士興教孫居大里
丁仁燮【字舜予生丁卯羅州人】
【觀察使夢吉后居大里
丁禹燮【字道源生己巳羅州觀】
【察使夢吉后居大里
丁在燮【字璇七生庚午羅州人觀】
【察使夢吉后居大里
金鍾演【字應五生卒未金寧人忠】
【毅公文起后居生川
丁羲燮【字聖淑生辛未羅州人祺】
【燮從弟居大里
張基漢【字士洪生壬申仁同
使命虎后居花亭
尹鳳玉【字文賢生癸酉相基從子】
【居德巖
朴宰幹【字乃現生癸酉密陽人】
【忠貞公審問后居沙川
丁泰燮【字元瑞生戊寅羅州人觀】
【察使夢吉后居大里
尹鎭玉【字文瑞生己卯鳳玉弟居】
德巖
張太永【字明可生己卯仁同人判】
【官汝載后居花亭
韓宗武【字應天生己卯淸州人夷】
【襄公明溍后居武巖】
朴彩幹【字亨魯生己卯密陽人忠】
【貞公審問后居生川
李源植【字德明生壬午驪州人龜】
【山君璠后居星谷
張斗奉【字應三生壬午仁同人參】
【奉四維后居花亭
金鍾一【字應三生壬午金寧人忠】
【毅公文起后居生川
朴錫幹【字德和生甲申密陽人忠】
【貞公審問后居生川
尹慶玉【字明善生乙酉坡平
仁后居德巖
金鍾祿【字聲振生乙酉金寧人忠】
【毅公文起后居生川
都相玟【字成玉生丙戌星州
以俞后居佳川】
尹煥玉【字致文生丁亥坡平人縣】
【監仁后居德巖
丁奎運【字五鉉生丁亥羅州
察使夢吉后居大里
張永起【字周賢生戊子仁同人僉】
【使命虎后居花亭
都成浩【字明淑生庚寅星州
以俞后居佳泉
都畿浩【字成瓚生庚寅星州人判】
【官以俞后居花城
張斗容【字敬敷生庚寅仁同
使命虎后居花亭
張洛騏【字應夏生壬辰順天人進】
【士晋奎曾孫居新里
金鍾玉【字應八生壬辰金寧人忠】
【毅公文起后居生川
都相重【字成元生甲午星州人判】
【官以俞后居佳泉
李熙教【字學汝生丙申驪州人龜】
【山君璠后居星谷
朴禹幹【字明洙生丙申密陽人忠】
【貞公審問后居生川
丁斗鎭【字聖建生戊戌羅州
察使夢吉后居大里
都相建【字聖鶴生庚子星州人判】
【官以俞后居佳泉
丁昌鎭【字武一生壬寅羅州
察使夢吉后居大里
朴晩院【字士仲生乙巳奉事璜】
【十五世孫居柳川
張洛球【字孟元生乙巳順天人忠】
【莊公思儉后居新里
張楨鎬【字武顯生己未仁同
【官汝載后居花亭
以上辛丑追案
金鼎錫【字文瑞生乙丑慶州人農】
【隱緘后居新基
金炳斗【字聲五生己巳慶州人農隱】
【緘后居新基
河永鎬【字而道生壬申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河己朱【字元杓生壬申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趙鏞文【字應三生丙子咸安人貞】
【節公旅后居富山
河萬守【字致玉生丙子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林綠洙【字士彥生戊寅醴泉人襄】
【平公自蕃后居新基
河明潤【字克峻生戊寅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河龍洙【字順五生戊寅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河大錫【字善一生己卯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李廷植【字順源生庚辰驪州人文】
【靖公璠后居梅山
黃鎭坤【字善五生庚辰平海人錦】
【溪俊艮后居月谷
高聖煥【字誠濟生壬午濟州
碩仝后居梨洞
林鶴洙【字鎭益生壬午醴泉人襄】
【平君自蕃后居新基
高在元【字元淑生壬午濟州
碩仝后居梨洞
文永燮【字士眞生壬午南平
興範后居蘇逸
朴相奎【字寄玉生甲申密陽
參贊鬱仁后居論谷
林柄植【字鎭洙生甲申醴泉人襄】
【平公自蕃后居新基
李圭泰【字德化生乙酉月城
湖后居蓮亭
金基郁【字致雲生丙戌慶州人農】
【隱緘后居新基
文永昌【字武景生丙戌南平
興範后居蘇逸
趙鏞元【字德七生丁亥咸安人貞】
【節公旅后居富山
河德守【字明淑生丁亥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河德允【字辰彥生戊子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朴鎔淳【字景伯生丁亥密陽
參贊鬱仁后居論谷
朴錫奎【字賢玉生戊子密陽
參贊鬱仁后居論谷
林滿洙【字誠老生己丑醴泉人襄】
【平公自蕃后居新基
趙鏞達【字明淑生庚寅咸安人貞】
【節公旅后居富山
朴鎔達【字子玄生庚寅密陽
參贊鬱仁后居論谷
金聲根【字振餘生壬辰慶州人通】
【訓應國后居琴湖
趙鏞洪【字在洪生壬辰咸安人貞】
【節公旅后居富山
河萬述【字生癸巳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文學穆【字泰弼生甲午南平宣】
【傳興範后居蘇逸
河漢柱【字龍柱生乙未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金基赫【字相善生戊戌慶州人農】
【隱緘后居新基
河海水【字明淑生戊戌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河命安【字永秀生甲辰晋州人文】
【孝公演后居新寧
趙局濟【字聲遠生己酉咸安人貞】
【節公旅后居當山
趙鏞皓【字元皓生壬子咸安人貞】
【節公旅后居富山
以上戊寅追案
新寧鄕案下終

朱子嘗賢呂藍田
鄕約採入於小學
中而我東己卯羣賢
取以行之於一國退
陶先生又爲之損益
之以爲勸懲之要領
古君子化民成俗之
意深且切矣吾鄕鄕
案自宣祖丁酉
英考辛酉而止文
獻無徵姑未詳當時
廢興之由而其散出
於諸家之藏者非但
敗紙爛草不足徵信
於來後詳略不同取
捨各異識者多恨之
往在辛丑鄕父老爲
是之慨將續修舊約
而巧値世故殆未能
廣吁可惜也見今天
綱斁絕人心渙散鄕
無善俗世乏良材粗
可以挽回世道收拾
鄕規者莫此若也倘
或遷稽過時則窃恐
後之視今猶今之視
昔也如余鹵蔑無似
安能當是役而鄕責
鄭重亦推辭他不
得遂與族叔寧滿
戚丈金秉鉉氏合商
編摩正門戶而增間
架付之手民以成一
部敦案其於勸德業
交禮俗規過失之方
或有小補而自好者
能觀過而知仁也歟
己卯榴花節下澣
安東權五煥謹跋
新寧鄕案任事錄
都都監幼學金奎煥
都監鄭鎭洪
權錫璊
安龜鍊
都都廳幼學權寧國
都廳丁永夏
金熙峻
鄭鈺
權寧模
公事員幼學丁基南
安鶴鍊
曺秉哲
權景洛
編輯都監幼學金大鉉
權規洛
曺善煥
編輯有司幼學成鳳慶
李炳祚
權常洛
丁學明
曺永煥
校正都監幼學曺秉健
成大潤
校正有司幼學金準鉉
丁元旭
權寧雨
整單幼學成樂九
權重鍊
總務幼學權寧滿
李在福
寫本幼學權達植
李秉鎬
監印幼學丁洛禹
成在鏞
金廷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