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및 특징]
17세기 후반 慶尙道寧海府仁良里 출신의 인사들이 결성한 계 조직 관련 자료이다. 인량리는 조선중기 이래 여러 사족 가문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동리로 유명하다. 각 가문별로 유력한 인사들이 계를 결성하였고, 상호 간 상부상조를 통해 결속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하였다. 본 자료는 「蘭亭錄」이름으로 엮여져 있는데, 王羲之가 蘭亭에서 친우들과 시를 짓고 음유하기 위해 결성하였던 稧를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자료가 엮여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좌목에 수록된 李徽逸(1619~1672)의 沒年, 가장 어린 白暄(1645~1724)의 生年, 그리고 追錄된 규정 가운데 ‘戊申(1668)貿販’이라는 구절로 보아 1669~1672년 사이에 본 계와 자료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 자료는 규정과 좌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앞에는 吉禮와 凶禮 때의 상호부조 규정 9개조를 수록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吉禮. 一, 사위와 며느리를 받아들일 때에는 白酒 각 1盆, 乾魚 각 1尾, 혹은 鷄와 稚 가운데 1首를 거두어 보낸다. 경사와 본인 아내를 맞아들일 때도 동일하다. 凶禮. 一, 부모와 자신, 아내의 상사에는 각기 布 1疋을 부조한다. 5년 동안 取利한 후, 備給하는데, 33尺을 한도로 한다. 一, 契員이 만약 永感했다면 처와 부모상은 親喪에 의거하여 부조한다. 만약 처와 부모가 없으면 장자와 장녀 상사 때, 이 의례에 따라 부조한다. 만약 상사가 없다면 스스로 원하는 만큼 計給해 준다. 一, 장례 때에는 白酒 각 1盆. 一, 장례 때 山役은 奴를 하루 동안 보내어 赴役케 한다. 一, 喪葬과 大小祥은 護喪所의 원근을 계산하지 않고 致奠한다. 一, 길례와 흉례 등에 수합하는 것이 규정에 미치지 못하면 上罰로 다스린다. 一, 契中에 有司 1년 마다 서로 교체할 때에는 米布를 일일이 傳受한다. 一, 봄과 가을의 節日에 講信을 한다. 이상의 규정은 흉례, 그 중에서도 상례와 장례 때의 상호부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조 규정 다음에는 과실로 처벌 대상이 되는 행동들을 정도에 따라 永削, 上罰, 下罰로 분류해 놓았다. 永削은 契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행동들로 不孝와 不睦, 사사로이 서로 음해하는 행위, 패악한 언행과 행동, 米와 布를 지키지 않는 것, 길례와 흉례 때에 돌보지 않는 것 5개조가 해당된다. 上罰은 맡은 임무를 능히 수행하지 않는 것, 약조를 행하지 않는 것, 술에 취해 망령되이 서로 힐난 하는 것이 해당되며, 이때의 처벌은 淸酒 1盆을 내 놓는 것이다. 下罰은 白酒 1盆을 내야 되는 것인데, 계의 말을 함부로 전하는 것, 아무 까닭 없이 참가하지 않는 것, 수합하는 것이 성실하지 않는 것이 해당된다.
좌목에는 모두 20명이 수록되어 있다. 입록자의 성명과 字를 기재해 놓았는데, 성명 바로 아래에는 당사자의 署押이 확인된다. 기재는 나이 순서로 되어 있다. 이들을 성씨별로 구분하면 李氏 7명, 朴氏 5명, 南氏 4명, 白氏 3명, 權氏 1명 순이다. 이들은 인량리에 거주하는 載寧李氏, 永川李氏, 大興白氏, 咸陽朴氏, 英陽南氏, 安東權氏 등의 가문 출신 인사로, 여기에는 재령이씨 가문 출신으로 17세기 후반 영남학파를 대표했던 인사인 이휘일도 포함되어 있다.
追錄은 본 계 운영과 관련하여 추가로 제정된 규정으로 모두 9개조이다. 追錄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一, 利木은 계 외에 지급하지 않는다. 一, 계의 木은 양 유사가 각기 20疋 식으로 분장하여 取利한다. 一, 보존하는 木은 契中에서 함께 표시하여 견고히 봉하고 取利하지 않는다. 一, 봄과 가을 강신 때에 보존하는 木 5疋, 粗는 4斗 식으로 計用한다. 一, 喪布는 보존하고 있는 2疋로 상환한다. 一, 강신하는 날에 傳與한다. 一, 板價는 보존하고 있는 木 10疋로 하는 것으로 규정으로 삼으며, 戊申(1668)부터 貿販한다. 運板價는 때에 따라 높고 낮음을 정한다. 一, 稧有司와 別定有司는 힘써 貿板한다. 一, 板子는 每員이 한 번씩 돌아가며 마련한다.
[자료적 가치]
17세기 후반 영남지역 향약 시행의 한 추이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영해부인량리는 경상도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반촌이다. 흔히 인량리를 8개 성씨, 12종가가 거주하는 동리라고 칭하고 있는데, 載寧李氏, 英陽南氏, 安東權氏, 大興白氏, 務安朴氏, 咸陽朴氏, 善山金氏, 新安朱氏, 平山申氏, 野城鄭氏 등의 가문이 여기에 해당되며, 본 계의 좌목에 확인되는 인물들도 이 가문에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인량리는 조선중기 이래 경상도 지역의 주류였던 退溪學派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본 좌목에서 확인되는 이휘일이 그 대표적인 인사이다.
이에 따라 본 계의 규정도 退溪가 일전에 제정하였던 향약 규정을 준수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 예로 吉禮와 凶禮 때의 규정은 퇴계의 거주지였던 慶尙道禮安縣溫溪洞에서 일족들 간의 상부상조를 위해 시행한 溫溪洞契의 상호부조 규정을 간략히 추린 것으로 생각된다. 계원의 자기규제와 과실에 대한 처벌을 위해 제정한 규정 역시, 예안현 留鄕所의 「鄕立約條」를 간추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둘 모두 퇴계가 제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