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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기영회계축(耆英會稧軸) 부동경계첩(附同庚契帖)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3+KSM-XG.1721.4721-20110630.Y11415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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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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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계문서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작성시기 1721
형태사항 크기: 38 X 28
판본: 복사본
장정: 선장
수량: 1책(12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214-1

안내정보

1721년 기영회계축(耆英會稧軸) 부동경계첩(附同庚契帖)
기영회계(耆英會契)와 동경계(同庚契)의 계축(契軸)이다. 기영회계는 정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하고, 나이 70세가 넘은 신하 7명이 중종(中宗) 연간에 결성한 계이며, 동경계는 1486년에 출생한 서울 지역의 유력한 자제들이 20세가 되던 1506년에 결성한 계로, 두 계 모두 구성원 간에 우애를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 계축은 기영회계에 가담하였던 임유겸(任由謙)정수강(丁壽崗), 동경계에 가담하였던 임권(任權)정옥형(丁玉亨)의 후손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임유겸임권, 정수강정옥형은 부자 관계로 그 후손 중 일부가 지금의 경상북도영주 지역에 세거하면서,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애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1721년 임씨의 후손인 임봉거(任鳳擧)봉화 출신의 유학자 권두경(權斗經)에게 계축을 보여주게 되었고, 두 가문의 오랜 우애를 칭송하는 권두경의 글을 수록하면서 계축이 새롭게 마련되었다.
이광우

상세정보

中宗 연간 결성되었던 耆英會契와 1506년 결성된 同庚稧의 契軸으로, 慶尙道榮州에 거주하던 두 계의 任由謙, 丁壽崗, 丁玉亨, 任權 후손들이 선조들의 우애를 계승하기 위해 1721년에 權斗經의 跋文과 識를 첨부하여 제작
耆英會契軸 附同庚契帖
七老耆英會稧軸, 成化丙午同庚稧軸
[내용 및 특징]
古來로 우리나라에서는 구성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큰 일이 있을 때 상부상조를 위한 각종 契 조직이 결성되어 왔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에는 선비들 간에 우애를 다지기 위한 각종 契會가 열리기도 하였다. 1721權斗經이 跋文을 쓰고 識한 「耆英會契軸 附同庚契帖」도 16세기 전반에 성된 계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耆英會契軸 附同庚契帖」은 耆英會契와 同庚契에 참여했던 豊川任氏(任由謙, 任權)와 羅州丁氏(丁壽崗, 丁玉亨) 후손 중, 지금의 경상북도영주 지역에 세거하던 후손들의 주도로 제작되었다. 계축은 耆英會契軸과 同庚契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영회계축은 계원 명단, 서문, 詩, 발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경계축은 계원 명단, 立議, 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기영회계축은 中宗 연간 致仕하고 耆老所에 들었던 일곱 신하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七老耆英會稧軸’이란 제목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앞에는 七老인 安潤德(1457~1535), 高荊山(1453~1528), 李陌(1455~1528), 任由謙(1456~1527), 丁壽崗(1454~1527), 趙元紀(1457~1533), 李自堅(1454~1529)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며, 字와 당시의 관직명이 이름 아래에 차례로 명기되어 있다. 7인의 생몰년으로 보아 기영회계는 1527년 무렵에 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명단 다음에 수록된 계축의 서문은 기영회계의 일원으로 문장이 뛰어났던 이자견이 작성하였다. 서문에는 기영회계의 결성 목적과 의의가 간략하게 나타나 있다. 우선 서문에서는 과거에 급제한 후 三朝에 걸쳐 두루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영예로운 관직에 오른 후 致仕하게 된 영예로움을 언급해 놓은 후, 老臣을 우대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어 준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이어 七老가 여생 동안 우애를 다질 수 있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으니, 먼저 2월의 화창한 날에 안윤덕의 華筵이 열렸다며, 그때의 화려했던 풍경을 묘사해 놓았다. 華筵은 고형산, 이맥, 임유겸, 정수강, 이자견, 조원기의 순서대로 열렸다고 서문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다. 서문 다음의 詩는 李荇(1478~1534)이 작성하였는데, 동일한 내용이 이행의 문집인 『容齋集』에 「七老契會圖」라는 제목의 七言古詩로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七老의 영예가 ‘동산의 사부(東山謝傅)’와 ‘영양의 학사(瀛洲學士)’에 부럽지 않다며 칭송하고, 그들의 업적과 七老의 모임을 기리는 내용이다.
기영회계축의 발문은 奉化酉谷 출신의 유학자 權斗經1721년에 작성하였는데, 기영회계축이 새롭게 제작되는 과정이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어느 날 同庚契의 친구인 任鳳擧가 題名된 두 폭의 큰 종이를 자신에게 보여주며 “이것은 우리 집안 선조의 兩世에 걸쳐 만들어진 契軸이다. 집안에 대대로 보관되어 왔으나 兵亂으로 잃어버렸는데, 근래에 당시 契家의 후손인 錦城丁氏 丁道敏(字 汝政)의 집에 소장되어 있어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汝政의 선조는 參判公(丁壽崗)과 貳相公(丁玉亨)으로 우리 선조와 더불어 兩世 동안 집안끼리 交契해 오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임봉거정도민은 기영회계에 참여했던 임유겸정수강의 후손인데, 이들은 모두 지금의 경상북도영주 일대에 세거해 오고 있다. 나씨 가문에 전해져 오던 계축을 임씨 가문에서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이를 새롭게 단장하여 권두경에게 이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선조인 判書府君(임유겸)이 나머지 여섯 군자와 더불어 七老耆英會를 결성하였고 다달이 연회를 열어 우애를 다졌으며, 이자견이 이를 기록하고 이행이 기념하는 시를 지었다고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이에 당시 老臣들의 모임을 칭송하며 발문을 쓰게 된 것이다.
‘七老耆英會稧軸’ 다음에는 同庚契帖이 ‘成化丙午同庚稧軸’이라는 제목으로 부기되어 있다. 먼저 명단이 나열되어 있는데 蘇世讓, 丁玉亨, 曹漢弼, 任權, 許洽, 姜顯, 金守濬, 曹孝淵, 鄭世虎, 李認, 李弘幹, 黃汝獻, 金權, 表贇, 林鵬, 安秀岑, 權祺, 崔崇祖, 李躋, 太斗南, 申直 등 모두 21명이다. 이름 아래에는 字와 生月日이 세주로 기재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역시 세주로 과거 합격 연도 및 역임했던 최고관직이 순서대로 기재되어 있다. 21명은 모두 成化丙午(1486)생 동갑이며, 이 모임이 결성된 것은 正德元年(1506)으로, 이들이 20세가 되던 해이다. 이들 대부분은 당시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거나, 또는 서울에서 서로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의 자제들로 그들끼리의 우애를 다지기 동경계를 결성했던 것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인물은 정옥형임권으로, 기영회계에 참여했던 정수강임유겸의 아들이다. 또한 1721년까지 영주에 세거하며 계축을 보관하고 있던 정도민권두경에게 글을 부탁한 임봉거는 모두 이들의 후손으로, 두 가문은 이때까지 계축에 이름을 올린 선조들의 우애를 계승해 오고 있었다.
명단 다음에는 동경계의 立議 11개조가 나열되어 있다. 입의의 내용 대부분은 상부상조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관직에 나아간 同庚이 많은 부담을 진다는 점이다. 즉 父母夫妻의 喪 때, 祿을 받고 있는 자는 각기 正布 1필과 쌀 5두를 3일 내에 듣는 대로 부의하지만, 관직에 있는 자는 면포, 닥종이, 빈 섬, 촛불 등의 물건을 별도로 넉넉하게 부의하게 했다. 發靷 때에도 관직에 있는 자는 관청의 書吏를 보내어 영송케 했으며, 매 절기의 仲月 때에는 이들이 講信을 주도하였다. 妻父母와 兄弟의 喪 때에도 역시 넉넉하게 부의를 해야 했다. 먼저 관직에 진출한 만큼 다른 同庚보다 생활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지어 서로 간에 우애를 다졌던 것이다. 운영과 관련해서는 有司를 2명 두었고 6개월마다 교체했다고 한다. 同庚 친구들 간의 친목을 위해 결성된 만큼, 계의 규정을 어겼었을 시 처벌은 齊馬首를 행하는 정도였다.
입의 다음에는 1721권두경이 동경계첩을 보고 識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권두경은 識에서 먼저 임봉거의 말을 빌려 소세양을 비롯해 동경계 출신의 고위관직 역임자를 나열한 후, 처음에는 釋褐의 상태에서 결성되었으나 나중에 과거에 급제한 자가 17~18인이고, 廊廟에 오른 자도 4~5인이 된다며 계원들의 명성을 칭송하였다. 그리고 동경계에 이름을 올린 정옥형임권, 즉 나주정씨와 풍천임씨 양 가문은 선조의 우애를 이어 받아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 우애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識를 마치고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왕조 이후 사족들은 상호 간의 결속력과 우애를 다지기 위해 각종 契會를 조직하였다. 耆老所에 들었던 인사들에 의해 결성된 七老耆英會稧와 1486년생 동년배들끼리 결성한 成化丙午同庚稧도 사족들 간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조직된 契이다. 16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契 조직은 보급이 확산되어 가던 향약의 규정이 접목되어 감으로써, 자기규제와 상하질서를 표방하게 된다. 따라서 본 자료는 본격적으로 향약에 영향을 받기 이전, 계원 간의 상부상조와 우애를 강조하던 契 조직의 일면을 확인 할 수 있다.
『容齋集』, 李荇,
『嶺南鄕約資料集成』, 吳世昌 外, 嶺南大學校 出版部, 1986
『조선후기 향약연구』, 鄕村社會史硏究會, 民音社, 1990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21년 기영회계축(耆英會稧軸) 부동경계첩(附同庚契帖)
耆英會契軸附同庚契帖
七老耆英會稧軸
安潤德善卿參賛
高荆山靜叔賛成
李陌井父同知
任由謙叔讓判書
丁壽崗不崩參判
李自堅子固判書
趙元紀理之參賛


士生斯世難得者丈夫之身也又難得者聖明之時以難
得之身遇難得之時斯亦士之幸也吾儕少自業儒俱捷
科第歷事三朝老遇聖明一朝詣闕下謝事仍復
職如舊{止+几}特出於無遺壽耉之盛意也善卿公謹俯伏而
出颺言曰位至滎品難也年至致仕難也致仕而仍官尤
難也亦滎矣盍設宴以感聖上優老之鴻恩以娛樂稀
年垂老之餘齒使洛中高會不獨專美於前不亦可乎諸
公咸曰諾善卿公即當仲春芳菲風日晴和敞開晝堂首
設華筵聲伎滿前衆樂訇咽杯盤珍羞疊重狼藉座中諸
公喜氣浮眉作意盡歡濡首霑醉屢舞傞傞至鼕鼕鼓鳴
乃罷{止+几}平生一度擧也繼而設之者靜叔也次而設之者
井父也又次而設之者叔讓也又次而設之者不崩也又
次而粗設之者子固也理之也李自堅

七十之壽古稱稀七老之會今幸見太平氣像自有在千
載風流獨能擅東山謝傅不須論瀛洲學士何足羨少年
高步斫仙桂脚底靑雲爭後先悠悠歲月若逝波眼中幾
見桑田變崇賢重老聖人政共幸聯翩荷隆眷屛金橫
帶騁通衢一一恩光生顧眄良辰樂事豈難幷更向華
堂設淸宴白髮紅花暎雲母勸酒佳人低寶鈿話舊論今
雜悲喜倚枕從容各忘倦歌管聲高未過日照夜燭華爛
如電醉後還作少年態屢舞歌呼互相抃向來{止+几}樂非無
人例是偸閑聊自遣豈如方在富貴中赫赫功名聳紳弁
從今直至期與頥日日相從事飮膳流傅盛事定無窮盡
史慇懃掃霜絹後生拙語不自量擬續襄陽耆舊傅
李荇
同庚契友西河任鳳擧以題名大牋二幅見示曰{止+几}吾
家先祖兩世契軸家世舊蔵逸於兵亂近始得見於當
時契家後孫錦城丁道敏汝政甫家汝政之先參判
相公實與吾先祖兩世通家交契故也遂傳書幅紙將
粧軸爲傳貽計{止+几}一幅則判書府君耆英契軸盖判書
公旣七旬以年至與同輩六君子俱請致事
中宗大王惜老成之退命居位如故於是諸公感恩
眷滎遭遇約爲七老耆英會逐月相繼設宴以娛晩節
旣又題名于軸判書李公記其事容齋李公詠之以詩
實熈朝盛事也子其識之余觀七老俱以累朝宿德
名卿聲猷之竣峙位遇之光顯壽福之昌熾神氣之淸
旺時運之亨泰實有不容人力者而迺諸公幷享而兼
得之無非祖宗昌洽之會不期然而致之者挽近以
還寧復見{止+几}遂三歎而題其後
元年辛丑八月日前司諫院正言權斗經
成化丙午同庚稧軸
蘇世讓【彥謙
六月初七日
】【正德己巳別試金正國榜下三人以進士參
官至貳相

丁玉亨【嘉仲
四月初五日
】【同榜二十二人
官至貳相

曹漢弼【公亮
十二月十五日
】【正德庚午式年李膂榜下三十人以生員參

任權【士經
正月初五日
】【正德癸酉式年表憑榜下十人以進士參
官至參賛

許洽【仲和
六月初十日
】【同榜三十人以進士參
官至判書

姜顯【顯之
正月二十八日
】【正德丁丑別試許寬榜下五人以進士參

金守濬【淸源
六月初三日
】【同榜九人以進士參

曹孝淵【彥溥
八月二十七日
】【正德己卯年朴紹榜下十九人以生員參

鄭世虎【子仁
九月十四日
】【同榜二十一人以進士參
官至判尹

李認【應物
八月初三日
】【正德丁丑別試二人以進士參

李弘幹【大立
】【同榜二十一人

黃汝獻【獻之
】【正德己巳別試十人以進士參

金權【宜叔
八月初十日
】【正德丁丑別試十五人以幼學參

表贇【粹然
八月初六日
】【正德庚辰別試宋㻩榜下三人以進士參

林鵬【冲擧
八月初六日
】【正德辛巳別試趙世英榜下十人以生員參

安秀岑【思危
】【下有司

權祺【慶老
二月二十七日
】【正德己卯式年二十九人以進士參

崔崇祖【紹先

李躋【敬仲

太斗南【望而
十月初四日
】【同榜六人以生員參
官至掌令

申直【而溫
三月十二日
】【嘉靖甲申別試李效忠榜下二人以幼學參


正德元年【明武宗朝我
中宗元年
】丙寅月日
立議
一父母夫妻之喪有祿人員正布各一疋米五斗三日內
隨所聞送賻有衙門則綿布紙地空石炬燭等物從優
別賻
一成服前日齊會喪家倉卒未備事共議辦設有故未進
員則移告有司
一致奠則有衙門員共辦齊進以行
一發引日路祭有衙門員共辦遠設齊進祖送迎番軍則
壯奴一名限一日起送有衙門則書吏別定限日明領

一喪家力薄有不能自辦事有司聞見知會共力極辦
一外任人員則聞喪即時不拘議例從優致賻
一在外員處有司收合送本家無本家則因人寄送
一每節仲月有衙門員共辦講信若値良辰美景或有遠
行有司令可辦人員別行一會
一有違契議及凢齊無故不參則即行齊馬首
一有司二員六朔相遆
一妻父母親兄弟子女之喪有司通于有衙門員隨宜致
賻事
鳳擧又言{止+几}成化丙午同庚契軸者吾先祖三宰靜容
先生在諸生時與陽谷貳相蘇公世讓貳相丁公玉亨
判書許公洽判尹鄭公世虎李公弘幹任公鵬太公
斗南黃公汝獻諸名勝二十有一人同修甲契實在
德丙寅是時諸公俱未釋褐旣而相繼擢科名通仕籍
者至十七八人腰金屛上廊廟者且四五人亦盛矣
書府君旣與參判丁公同耆英契而三宰府君又與
相丁公爲同甲契兩家先祖父若子名位交遊趾美聯
武又諸家所未有{止+几}軸亦得之丁氏家並要子一言之
識余惟祖先交契講好之適爲子孫者得見於二百餘
年之後斯已幸矣況兼得父子繼好世講之迹乎況名
父賢子德烈相承忠孝相傳羽儀乎巖廊垂裕乎雲仍
使家聲彌遠而益昌者乎吾於任氏丁氏之先見之矣
任丁兩家之世契繼繼不墜而益篤前光者吾將執契
而俟之
是年月日權斗經又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