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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 장기향교(長鬐鄕校) 향안(鄕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3+KSM-XG.1627.4711-20110630.Y11103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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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장기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작성시기 1627
형태사항 크기: 25 X 37.4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포항 장기향교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포항 장기향교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안내정보

1627년 장기향교(長鬐鄕校) 향안(鄕案)
1627장기향교에서 작성된 향안(鄕案)이다. 향안이란 양반사족들의 명단을 기록한 명부인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향교의 중요성이 쇠퇴하고 신분질서가 흐려지면서 교생안의 중요성이 점차 약화되자 양반사족들이 새롭게 만든 자신들의 명부인 것이다. 본 향안은 1627년 최초로 작성된 후, 165616581669년에 추가로 명부가 작성되었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씨․오씨․황보씨 등의 성명이 많이 입록되어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627년에 장기향교에서 작성된 鄕案
鄕案
내용 및 특징
본 문서는 1627년에 장기향교에서 작성한 향안이다. 최초의 작성연도가 1627년(天啓7年,인조5년)6월이라고 기재되어 있긴 하지만, 기재된 인명의 앞에 모두 ‘仙’자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록한 사람은 명단에는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1627년이라면 임진왜란이 끝난 지 불과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정묘호란이 발발했던 해이다. 장기현은 청나라 군대가 침입한 지점에서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어느 정도 심리적 영향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림양반들은 흔들리는 향촌의 지배를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이 향안을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향안이 작성된 이후, 1656(丙申年,효종7)․1658(戊戌年,효종9)․1669(己酉年,현종10년)년에 계속해서 추가로 명단이 입록되었다. 최초로 작성된 1627년에는 李氏가 5명, 徐氏가 4명, 皇甫氏가 2명, 吳氏가 2명, 安씨가 2명, 鄭氏가 1명 입록되어 있다. 따라서 유안과 마찬가지로 향안에서도 장기현에서 李氏가 큰 세력을 가졌음이 확인된다. 그리고 특이하게 徐氏가 李氏 다음으로 많이 입록되어 있다. 그러나 1658년의 향안에서는 吳氏가 5명이나 입록되어 있음에 반해, 徐氏가 2명만 입록되어 있으므로 鄕中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료적가치
본 향안의 명단을 살펴보면 임란․정묘․병자호란 이후, 향교가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향촌지배에서 향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來姓인 李氏는 유안에도 많이 입록된 성씨인데 장기현에서 크게 문중의 역량을 떨쳤음을 알 수 있다. 士姓이었던 吳氏는 유안에는 많이 나타나지 않지만, 향안에는 적지 않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점으로 보아 장기현에서 여전히 세력 있는 문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17세기 이후의 향촌사회에서도 향안의 명단이나 향교의 교임 등이 각 가문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27년 장기향교(長鬐鄕校) 향안(鄕案)

鄕案
天啓七年六月日品官坐目
李訥
徐克仁
安順天
李大任
徐大榮
吳僩
李尙馪
皇甫浻
吳俔
皇甫淳
李景瑜
李景球
徐處精
徐後謙

行縣監 〔手決〕
安應天
鄭仁鸞
丙申九月日
皇甫逸
金俊民
得潔

〔手決〕
戊戌四月日
李景玘
吳廷亮
皇甫纘
吳廷稷
李景珩
吳廷益
吳廷說
吳廷信
李國柱
徐惟遠
徐益遠

行縣監 〔手決〕
己酉二月日
鄭興業
李曄
吳廷卨
李晤
李宗震
吳廷奭
皇甫紀

行縣監 〔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