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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장기향교(長鬐鄕校) 유안(儒案)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3+KSM-XG.1618.4711-20110630.Y11103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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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선생안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유안
작성주체 장기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작성시기 1618
형태사항 크기: 35 X 37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현소장처: 포항 장기향교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안내정보

1618년 장기향교(長鬐鄕校) 유안(儒案)
본 유안(儒安)은 임진왜란 이후 10여년이 지난 1618년에 장기향교에서 작성된 교생(校生)들의 명단이다. 60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으나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하여 4명을 제외한 56명의 성명을 확인할 수 있다. 성씨별로 살펴보면 이씨가 14명이고 정(鄭)씨가 11명이며 김씨가 5명이다. 이외에도 2명이상 입록된 성씨로는 유(柳)씨 ․ 박(朴)씨 ․ 서(徐)씨 ․ 노(盧)씨 ․ 조(趙)씨 ․ 권(權)씨 ․ 전(田)씨 등이 있다. 성씨의 비율로 보아 이씨가 장의(掌議)와 유사(有司)를 맡고 있는 점은 수긍이 되나 교생의 비율이 1명에 불과한 안(安)씨가 당장(堂長)을 맡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임진왜란이 끝나자마자 향교가 중건되고 곧바로 유안이 작성된 점으로 미루어 향교가 향촌사회의 지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618장기향교에 소속된 교생들의 儒案
儒案
내용 및 특징
본 儒案은 長鬐鄕校에 출입하는 校生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으로 1618년에 작성된 것이다. 작성연도로 파악해 볼 때 현존의 유안 중에서는 연도가 비교적 빠른 것으로 생각되며, 총 60명의 교생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그 중 4명의 명단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나머지 56명의 명단이 파악가능하다. 56명의 명단을 姓氏別로 파악해보면, 李氏가 14명으로 가장 많고, 鄭氏가 11명으로 그 다음으로 많으며, 金氏 5명 ․ 柳氏 4명 ․ 朴氏 3명 ․ 徐氏 3명 ․ 盧氏 2명 ․ 曹氏 2명 ․ 權氏 2명 ․ 田氏 2명 등이 입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1명 만 입록되어 있는 姓氏로는 尹氏 ․ 崔氏 ․ 趙氏 ․ 安氏 ․ 韓氏 ․ 成氏 ․ 辛氏 ․ 孫氏등이 있다. 한편, 본 儒案에서 주요 校任들은 姓氏만 올려 서명을 하고 있는데, 堂長으로는 安氏가, 掌議로는 李氏가, 有司로는 李氏와 金氏의 서명이 있다. 安氏姓의 校生은 1명 만 입록되고 있다.(성명 安琠) 따라서 安琠이라는 성명의 校生이 堂長이 아닌가 의심되며, 이 姓氏의 校生이 거의 없는데 堂長을 맡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李氏가 掌議와 有司를 맡고 있는 점은 교생의 숫자로 보아 미루어 짐작할만한 일이다.
자료적가치
長鬐鄕校朝鮮시대 초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고, 1600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본 儒案은 향교의 중건이 이루어지고 나서 10여년 만에 작성된 것으로 堂長을 安氏가 맡고 있는 등, 校生의 비율과 校任이 일치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전란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전란 종결과 더불어 곧바로 향교 중건이 이루어지고 향교를 중심으로 하여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향촌지배와 향교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경상북도, 1991
남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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