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영양향교(英陽鄕校) 교전수세(校田收貰)
‧ 조선후기에 영양 영양향교에서 향교소유의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맡기면서 그 지대를 받은 내용을 기록한 추수기이다. 본 추수기는 맨 위에 지명을 기입하고 지명 아래에 인명을 기록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해당 인명이 몇 냥 몇 전 몇 푼의 지대를 냈는지 기입하였다. 여기에 기입된 지명으로는 원하(元下)‧ 수월(水月)‧ 도촌(島村)‧교촌(校村)‧이곡(梨谷) 등 10여 곳이 있다. 이 중,원하(元下)‧ 수월(水月) 등의 지명에는 불과 1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지만, 교촌(校村)에는 무려 24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영양 영양향교의 전답은 교촌(校村)에 가장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2냥에 못 미치는 금액을 지대로 내고 있지만 10냥의 돈을 낸 사람도 있다. 하단에 기입된 지대의 총계는 77냥 1전 2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추수기는 영양 영양향교의 경제적 기반을 설명해줄 수 있는 보충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