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영양향교(英陽鄕校) 통고(通告)
1897년 영양 영양향교에서 고종(高宗)의 러시아 영사관 피신을 반대하고 국가위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환궁을 해 주기를 조정에 청원하는 내용의 통고문(通告文)을 경상도일대의 유생들에게 전파하였다. 본 통고문의 내용에 의하면, 고종(高宗)이 러시아영사관에 피신한지 1년이 다 되어가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열강 각국이 이권쟁탈에 혈안이 되는 등, 국가의 체통이 말이 아니므로 선혜청에 소회(疏會)를 설치하여 임금의 환궁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린다고 하였다. 아울러 국모(國母)가 비참하게 희생된지 3년이 지났으니 신하된 도리로 반드시 이 원수를 갚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내용의 통고문을 경상도일대의 유생들에게 전파했는데 상소의 우두머리로는 조성황(趙性黃)‧조성훈(趙性薰)‧채광묵(蔡光黙)등이 역할을 맡았고, 도청(都廳)의 책임자로는 정회규(鄭會圭)가, 상소문의 소요 경비관계를 책임지는 장재(掌財)의 책임은 이민석(李敏錫)과 이범석(李範錫)등이 맡았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