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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청도군(淸道郡) 첩보(牒報)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3+KSM-XC.1843.4782-20110630.Y11106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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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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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첩보
내용분류: 정치/행정-보고-첩보
작성주체 송계백
작성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작성시기 1843
형태사항 크기: 25 X 3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청도향교 문중소개
현소장처: 청도 청도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 교촌동 청도향교

안내정보

1843년 청도군(淸道郡) 첩보(牒報)
1843년 1월, 청도군수청도향교 중수공사의 진행상황에 대해 경상도관찰사에게 보고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첩보(牒報)이다. 청도군수송계백(宋啓栢)의 첩보에 의하면, 향교중수공사에 대한 청도군수의 지시는 다음과 같다. 중수공사를 위한 유호전(幼戶錢)을 거두는 문제는 규정된 법규대로만 거둘 것이고, 법을 어기면서 가혹하게 거두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한 편, 3월 4일에는 성현들의 위패를 이안(移安)하도록 하며, 3월 9일에는 정식으로 중수공사를 시작하도록 지시하였다. 또 성현들의 위패를 이안하거나 환안(還安)할 경우, 해당부서의 관원들이 성현에게 고하는 제사를 제대로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첩보를 받아본 경상도관찰사는 이 첩보의 내용을 차례대로 전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처럼 향교중수과정의 행정적 지휘계통을 살펴보면, 향교중수의 실질총책임은 청도군수가 맡고, 경상도관찰사는 이를 지휘하고 감독했음을 알 수 있다. 본 문건은 청도향교의 중수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843년 1월, 淸道郡守淸道鄕校 重修工役의 진행상황에 대해 慶尙道觀察使에게 보고한 牒報
내용 및 특징
1843년 1월, 淸道郡守淸道鄕校 重修工役의 진행상황에 대해 慶尙道觀察使에게 보고한 牒報이다. 淸道郡守宋啓栢淸道鄕校의 重修工役日字가 잡혔다는 점과 重修工役을 위한 幼戶錢의 마련에 어떠한 잡음도 없도록 法規에 근거하여 철저히 시행하도록 하라고 지시했음을 慶尙道觀察使에게 알리고 있다. 기타 사항으로는 애당초 보고할 때 重修工役의 日字를 미리 알리지 못한 것은 郡內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날짜가 연기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까 근심했기 때문인데, 이제 3월 4일에 聖賢들의 위패를 移安하고, 3월 9일에 工役을 시작하는 것은 거의 확정된 일이라고 보고하였다. 또 移安하고 還安할 때 반드시 聖賢들의 신령에게 고하는 제사를 올리도록 하며, 이는 해당관청에서 준비하도록 하라고 이미 지시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첩보내용에 대해 慶尙道觀察使는 이 첩보의 내용을 차례대로 전파하도록 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내렸다.
자료적가치
이 문서 역시 淸道鄕校重建謄錄이라는 제목으로 合綴되어 있는 고문서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문건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의 문서전파경로가 鄕校에서 郡守로, 郡守에서 다시 觀察使로, 관청의 순서대로 계속 上申해서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郡內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렇게 차례를 밟아 전달되었던 것 같다, 아마 명령의 하달과정도 비슷한 체계를 거쳤을 것이다. 본 문서는 淸道鄕校의 중수과정을 잘 알수있는 사료이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3년 청도군(淸道郡) 첩보(牒報)
爲牒報事本郡聖廟修補日字及幼戶錢磨鍊形止牒報
使回送內收斂之際更加操飭是遣移還安俱請香祝然
後始可經紀報辭初無措語日字果將無進退之慮是隱喩更
卽詳報以爲前期轉移之地向事敎是置日字果以三月初四
日移安同月初九日始役已爲牢定是如乎移還安香祝轉
移該曹之地參量處分行下爲只爲合行云云道光二十三年
月二十九日報巡營題轉移次到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