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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영양현(英陽縣) 포우전절목성책(脯牛錢節目成冊)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3+KSM-XC.1843.4776-20110630.Y111130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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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절목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절목
작성주체 영양현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도계리 영양향교
작성시기 1843
형태사항 크기: 32.5 X 34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영양향교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도계리 영양향교 문중소개
현소장처: 영양 영양향교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도계리 영양향교

안내정보

1843년 영양현(英陽縣) 포우전절목성책(脯牛錢節目成冊)
1843영양현에서 영양 영양향교의 향사(享祀) 경비마련을 위해 작성한 포우전절목성책(脯牛錢節目成冊)이다. 포우전(脯牛錢)이란 향교의 봄‧가을 제사에 쓰기 위한 제사용 경비를 말한다. 본 절목의 내용에 의하면, 영양현은 재정이 궁핍하여 향교의 제사 비용도 민간의 백성들에게 거두어서 겨우 마련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유년(1817)무술년(1818)관찰사의 도움으로 포우전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관찰사가 2백냥의 돈을 영양 영양향교에 포우전으로 제공하였으므로, 이 돈을 원금으로 하여 대출을 해주고 그 이자를 가지고 향교의 제사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절목의 내용에 근거하여 당시영양 영양향교 재정기반의 일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관찰사현감등 지방관의 향교에 대한 보조가 향교재정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상세정보

1843영양현에서 영양 영양향교의 봄‧가을 제례경비 마련을 위해 작성한 脯牛錢節目成冊
脯牛錢節目
내용 및 특징
1843영양현에서 영양 영양향교의 春秋釋奠 경비마련을 위해 만든 脯牛錢節目成冊이다. 脯牛錢이란 향교의 봄‧가을 제사에 쓰기 위한 제수용 경비를 말하는 것으로 향교의 의례중 제사가 가장 큰 행사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향교의 소요경비 중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본 節目에 의하면, 영양현은 재정이 궁핍하여 향교의 제사경비를 마련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丁酉年(1817)戊戌年(1818)관찰사의 도움으로 脯牛錢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에도 영양현의 살림이 여전히 옹색하여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찰사가 脯牛錢으로 2백냥의 돈을 내려 주었으므로 이 돈을 원금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이자를 받아 향교의 脯牛錢을 장기적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가난한 영양현의 백성들에게 돈을 거둘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관찰사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일의 전말에 대해 節目으로 기록해 둔다고 하였다.
자료적가치
향교의 두 가지 주요 기능은 교육과 제사이다. 교육도 물론 중요한 기능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선현들을 위해 제사지내는 기능 역시 교육못지 않게 매우 중요하였다. 그런데 향교에서 제수를 제대로 갖추고 유림들을 초빙하여 享祀를 치르려면 매우 많은 비용이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영양현처럼 궁벽한 고을에서는 享祀를 치를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관찰사가 200냥을 내려 주었으므로 영양 영양향교에서는 이 돈을 원금으로 하여 대출을 해주고 그 이자를 받음으로써 제사비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향교의 어려운 사정을 이 문건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3년 영양현(英陽縣) 포우전절목성책(脯牛錢節目成冊)
英陽縣脯牛錢節目成冊
道光二十三年十月日英陽縣脯牛錢節目成冊
爲永久遵行事本縣自是殘弊之局而依例應
公之責山積且無邑用留置之備故蔀屋錙銖之
斂尾尾鱗鱗甚至於聖廟春秋膰俎之供徵出於
閭巷愚夫愚婦之戶矣粤在丁戊年間幸賴
巡相領牛之澤收貰以爲宰牲之備然而其
在崇奉之節未免難便底道理也縣監莅玆
薄縣譬如一木不可支大厦之傾也杯水不
可救車薪之火也只自含悶矣今又棠宣
之化遠及於封丸之域軫念萬分惠金貳百其
爲英民之感頌不啻尋常而前所營劃者
則糸+爾縫夏等絶戶之還瘼而今日劃下之金則
將以銘崖不忘之意均布民間逐年斂息俾
爲牲膰之資而第念少無虧損之弊於境民
極爲便宜之道於享儀故槪悉顚末以爲
日後憑式向事
官〔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