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 영양 영양향교에서 養士廳의 운영을 위해 만든 養士廳節目.
養士廳節目
내용 및 특징
1724년 영양 영양향교에서 養士廳의 운영을 위해서 만든 養士廳節目이다. 18세기 中期 이후가 되면, 書院의 확장과 기타 私立書齋등의 등장으로 인해 공교육기관인 향교의 위상이 날로 쇠퇴한다. 그나마 祭享의 기능이 겨우 유지되고 있어 在地士林에 대한 영향력이 완전히 쇠퇴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방교육기관으로서 유지되던 향교의 기능은 사실상 상실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실정을 개탄한 뜻있는 士林兩班이나 地方官의 노력에 의해 기능을 잃은 향교나 서원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시설로 養士齋의 건립이 모색되었다. 향교를 대신하여 나타난 이 새로운 교육시설은 일반적으로 養士齋라는 명칭을 가장 폭 넓게 사용하였고 이외에 興學堂등의 명칭을 많이 사용하였다.
본영양현의養士廳節目도 그 설립경위는 養士齋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영양현의 향교나 서원이 物力이 피폐하여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궁벽한영양현의 인재양성이 더욱더 곤경에 빠졌으므로 前英陽縣監 姜公이 발의하여 별도로 養士廳을 설립하였다는 내용이 본문에 기재되어 있다. 養士廳은 기존의 향교와 서원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서 별도로 설립한 학교였으므로 그 운영상의 節目이 비교적 엄격하였다. 다음에 養士廳의 몇 가지 節目을 예로 들어본다. 1.邑中의 유생들은 매년 가을과 겨울의 6개월간은 매월 1일과 15일을 지정하여 訓長에게 강의를 들을 일. 1.매년 봄과 여름에 한번 모이면 本廳에서 20일을 한도로 기한을 정하여 製述의 문장을 지을 일. 1.養士의 본뜻은 문장의 句讀와 문장을 익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몸과 행실을 닦아 名敎에 죄를 얻지 않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養士의 실질에 부응될 것이니 유생들은 이 뜻을 잘 알아서 각자가 노력하고 삼가할 일. 1.매월 1일 강의를 들을 때는 모든 유생이 衣冠을 바르게 하고 행동거지를 근엄하게 하며, 구두점을 정밀하게 끊어 그 문장의 뜻에 통달하며 단정하고 공경스런 모습으로 글을 읽되, 용모나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고 공부를 정밀하게 하지 않는 자는 訓長이 輕重에 따라 처벌할 일. 이와 같은 몇 가지의 節目을 살펴보더라도 상당히 엄격한 규율이 요구되었음을 알 수있다. 養士廳의 책임자로는 都監과 有司를 두었는데 이들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1.本廳에는 都監과 有司 한 명씩을 두어 錢穀을 주관할 때 출납하게 할 일. 1.都監과 有司는 향교와 서원에서 청렴하고 지도력이 있을 뿐 아니라 인망이 있는 사람을 후보로 뽑고 관청에서 帖을 내어 정할 일. 1.都監과 有司는 1년마다 교체할 일.
자료적가치
養士廳의 출현은 서원과 향교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官學과 私學의 쇠퇴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울러 在地士林의 鄕村支配가 또 다른 한계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養士廳은 조선후기에 출현하여 새로운 교육성과를 이루어낼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그러나 미처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도 전에 近代新式學校의 출현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