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청도향교(淸道鄕校) 상서(上書)
1842년 10월, 청도향교에서 향교건물의 중수(重修)를 촉구하기 위하여 경상감영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본 상서의 내용에 의하면, 청도향교의 유생들이 1842년 2월 19일과 2월 20일의 두 차례에 걸쳐 청도군수에게 품목(稟目)을 올려 향교의 중수를 요청하였다. 당시 청도군수는 이 사안에 대해 이건(移建) 문제는 추후에 논의하자는 것, 유림 전체의 공론을 모아줄 것 등의 내용이 담긴 제음(題音)을 내려 보냈다. 이에 청도향교의 유생들은 향교중수를 청원하는 내용의 상서(上書)를 작성하여 다시 경상감영에 올렸다. 당시 경상도관찰사였던 홍재철은 2월 15일자로 이조참판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향교중수라는 큰일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향교손상의 사정을 보고해서 올리라는 결정문만을 보냈다. 이리하여 청도향교의 중수문제는 몇 달 동안 진전 없이 논의만 무성하였다. 중수문제가 계속 지연되자, 초조해진 유림들은 9월초부터 다시 향교중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올려 보낸다. 마침내 10월 7일 상서를 본 경상도관찰사이경재(李景在)는 향교중수에 드는 재원과 그 조달방법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 문서는 청도향교의 중수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료에 해당한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