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청도향교(淸道鄕校) 상서(上書)
1842년 청도향교에서 향교건물의 중수(重修)를 청원하기 위하여 작성한 상서(上書)이다. 본 상서의 내용에 의하면, 청도향교는 1734년에 화양읍 교촌동으로 옮겨진 뒤, 1842년에 이르기까지 근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으므로 향교내의 여러 건물들이 낡고 퇴락하여 붕괴가 염려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청도향교의 유생들이 1842년 2월 19일과 2월 20일의 두 차례에 걸쳐 청도군수에게 품목(稟目)을 올려 향교의 중수를 요청하였다. 청도군수는 이 사안에 대해 이건(移建) 문제는 추후에 논의하자는 것, 유림 전체의 공론을 모아줄 것 등의 내용이 담긴 제음(題音)을 내려 보낸다. 이러한 결정에 실망하지 않고 유생 최윤호 등은 청도향교의 중수를 청원하는 내용의 상서(上書)를 작성하여 동 20일에 경상감영에 올린다. 경상도관찰사는 향교중수의 사안을 당장 허락하지는 않고 향교건물의 손상정도를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내용의 제음을 내려 보낸다. 이는 당시 경상도관찰사였던 홍재철이 2월 15일자로 이조참판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향교중수라는 큰일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자료는 청도향교의 중수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료에 해당한다.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出版部, 1992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남민수